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추석 다음날인 23일, 시어머니와 남편과 함께 북한산 산행을 했다. 우리처럼 산행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불과 이틀 전인 명절 전날, 그렇게 많은 비를 뿌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하늘이 맑고 예뻤다. 내가 선택한 구간은 산성매표소~태고사 계곡~대남문~문수사~구기계곡. 오래전부터 '문수사'에 가보고 싶어한 어머니 때문에 선택한 구간이다.

 

문수사(해발 645m)는 대남문(해발 683m) 지척, 25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대남문 혹은 문수사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성문쪽으로 해서 가도 되고, 비봉능선을 타고 문수봉 혹은 청수동 암문을 거쳐 가도 된다. 그리고 구기계곡 쪽으로 해서 가도 되고 북한산성 매표소에서 출발하여 태고사 계곡~행궁터를 지나 대남문까지 가도 된다.

 

사실 처음에는 응봉능선을 통해 사모바위까지 간 후, 사모바위 앞에서 점심을 먹고 비봉능선을 타고 대남문까지 갈까 싶었다. 응봉능선을 탈 경우 왼쪽으로 삼천사를, 오른쪽으로 진관사를 내려다보며 산행할 수 있는데 어머니가 좋아하는 절들이기 때문이다. 또 이틀 연속해서 가고도 또 가보고 싶던 응봉능선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74세란 연세가 염려스럽기도 했다. 남편과 지난해 추석 다음날, 그리고 올 여름에도 응봉능선에 간적이 있지만 어쩌다 가끔 산행을 하는 남편의 역량도 염려스러웠다. 대충 계산해 봐도 10㎞가 훌쩍 넘고 능선을 2개나 타는 것이기에, 혹여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너무 긴 산행 아닐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문수사에 갈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내가 아는 한 북한산의 여러 코스 중 가장 완만한 '산성 매표소~태고사 계곡~ 행궁터~대남문~문수사~구기계곡~구기분소' 길을 택한 것이다. 산성 매표소 쪽으로 올라가 구기계곡 쪽으로 내려오는 그런. 그렇다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초보들에게는 힘든 곳이다.

 

사실 이 구간은 내게 썩 낯익다. 2008년 가을에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 후 그동안 워낙 자주 갔던 구간이기 때문이다. 세세하게 다 알 수는 없지만, 어디쯤에 어떤 꽃이 피는지 대략 알 수 있을 만큼은 간 것 같다. 그러니 문수사에 어지간히 많이 간 것이다. 어머니와 문수사를 향해 가는 동안 문수사와의 첫 만남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내가 문수사에 처음 간 것은 2006년 가을이다. 순전히 어머니에게 끌려간 것이었다. 지금이야 틈만 나면 산에 가려고 엉덩이가 들썩이지만 그때만 해도 북한산은 병풍처럼, 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산처럼 그냥 배경에 불과할 뿐이었다. 산을 보면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옛날부터 있었으니 당연하게 있는 그런 정도에 불과한.

 

그 무렵, 어머니가 평소 자주 이용하던 구파발 등산용품점이 뉴타운 건설 때문에 이전, 점포정리를 했다. 그때 어머니는 내게 등산화를 비롯하여 등산티셔츠와 바지, 점퍼까지 사주시면서 "너도 이젠 건강을 위해 산을 다녀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승가사에 가자고 하셨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승가사에 가게 됐다. 어머니와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들과 조카, 초등학생이었던 딸과. 사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승가사행은 산행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아주 편안한 길을 택했었다. 승가사 일주문 근처까지 차가 가는데 그 차들을 위해 포장된 그 길로 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헉헉대며 틈만 나면 앉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승가사를 내려가는 동안 많이 아쉬워했다. 그리하여 승가사 계곡 쪽으로 내려와 승가사와 대남문(문수사)이 갈라지는 쉼터에서 쉬는 동안 "온 김에 문수사에도 갔다 왔으면 좋겠다!"고 거듭거듭 말했다. 솔직히 속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승가사 계곡쪽으로 하산 하는 동안 너무나 아찔아찔, 위험천만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계속 "문수사에 갔으면" 하건만, 아이들이 "더 이상은 가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어머니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조금만 가면 된다" "할머니 따라 가면 이따가 집에 가면서 사달라는 것 모두 사주마!" 이런 말들로 애들을 꼬드겼다. 하지만 아이들은 요지부동, 결국 더 이상은 못가겠다며 주저앉아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털썩 주저앉아 "더 이상은 못 가겠노라" 버티는 아이들을 보며 '옳거니!' 싶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문수사를 향해 걸음을 떼놓으셨다. 결국 두 녀석은 쉼터에 남고, 이도저도 못하는 나는 결국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짓궂은 오빠들과 남느니 엄마를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는지 딸도 나를 따라나섰고.

 

그런데, 막상 따라나서긴 했지만 보통 후회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바위들로 이뤄진 계단길에, 아스라한 절벽이라니! '애들 편을 들어 나서지 말걸 그랬나?' '대체 얼마나 가야 하지?' 그저 아득할 뿐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머니야 저만큼 가시건 말건 틈만 나면 주저앉고, "얼마나 가야 문수사가 나와요?"라고 낯선 사람들을 붙잡고 묻고, 조금 더 가다 낯선 사람 붙잡고 또 묻고….그렇게 드디어 문수사. 힘들지도 않은지 어머니는 문수사 굴법당서 기도를 하셨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해 의자에 주저앉아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한참 앉아 있자니 200여 미터 거리에 있다는 대남문이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어머니께 가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래 남겨두고 온 손자들 걱정을 하며 그냥 어서 가자며 재촉하셨다. 내려오는 길도 난감했다. 조금만 잘못 디디면 넘어질 것 같았다. 한발 뗄 때마다 무릎이 시큰대고 다리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신없이 후들거렸다.

 

문수사에서 구기분소까지는 2km 남짓, 힘은 죽죽 빠지고 다리는 이미 내 다리가 아닌지 오래고, 눈꺼풀은 때도 모르고 무거워지고…. 그렇게 구기분소까지 간신히 내려왔다. 어머니께서 무얼 사먹자고 했지만 그냥 집에 가자고 했다. 얼마나 힘든지 배고픈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녁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어서 집에 가 등 대고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오늘 산에 오길 정말 잘했다. 가슴이 확 트이네!"

"이젠 엄마도 동네 약수터 말고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북한산에 다녀야 겠다."

 

어머니는 산행 중 몇 번이나 산에 오길 잘했다며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고마워하면 할수록 속은 더 뜨끔뜨끔해졌다. 사실 2006년 그날 이후 어머니는 내 표정을 살펴가며 문수사에 한 번 더 가봤으면 했다. 하지만 그날 산에 질려버린지라 더 이상 산에 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등산복 일체를 곱게 포장해 넣어두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두 해나 지난 2008년 11월, 우연히 산에 한번 간 이후 산에 미쳐버리기 시작한 나는 누가 산에 가자고 하면 그저 그 사람이 한없이 예뻐 보이고 반갑고 고마울 뿐이었다. 그때 어머니 역시 내게 산에 가자고 하셨기에 어머니와 노적사 일대와 국녕사 일대 가벼운 산행을 했는데, 어머니는 그때도 "문수사에 한 번 더 가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어머니는 이후에도 틈날 때마다, 내가 산에 갈 때마다 "문수사에 한 번 더 가자. 문수사에 한 번 더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단 한 번도 문수사에 함께 가지 못했다. 어머니와 가려고 마음먹으면 어머니가 바쁘고, 어머니가 시간이 나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산행 약속이 있고, 막상 함께 가려니 이런저런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쨌거나 문수사에 그렇게 가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바람은 나몰라라, 그동안 나는 문수사에 참 많이도 갔다. 그러니 어머니가 고마워하면 할수록 속은 그만큼 뜨끔거릴밖에.

 

"어머니. 오늘 날씨 정말 좋죠? 그저께(21일) 그렇게 많은 비가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맑네요. 생각나요? 그때 애들 때문에 이곳(대남문)에 올라오지 못하고 문수사만 보고 그냥 갔잖아요. 그 이후 대남문까지 가지 못한 것이 얼마나 아쉽던지"

"그래, 날씨 정말 좋다. 오늘 산에 오길 정말 잘했다. 사실 명절 밑부터 몸이 많이 아팠거든. 그런데 산에 와서 싹 나았다. 아픈 것이 싹 가셨다. 훨훨 날아갈 것 같다. 정말 잘 왔다."

 

"어머니 내년에도 명절 다음날에는 무조건 산행을 해요."

"언제 또 올까? 너 원효봉에 안 가봤지? 다음에는 원효봉에 갈까?"

"아니 추석 다음날에는 오늘처럼 무조건 산행을 하자고요."

"…."

 

어머니는 '명절 다음날'을 '며칠 후'로 잘못 알아들으셨는지 산행 하자는 말에 반색을 하며 뒤돌아보시더니 "내년 추석 다음날"이라는 내 보충설명에 실망하시는 눈치다. 괜히 그렇게 말했나? 아차 싶었다. 그러나 난 속으로만 '그래요. 조만간 한 번 더 오기로 해요' 이 말을 삼키고 말았다. 지금으로선 가까운 날에 산행을 함께 하리라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절 며칠 전부터 먹은 것 없이 속이 개운하지 않고 먹는 족족 목에 걸리곤 했다. 때문에 차례 상을 물리자마자 열손가락을 모두 따야만 했다. 그럼에도 체기는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고 남아 있어 산행을 시작할 때까지 속이 답답했었다. 그런데 산행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며칠 동안 불편했던 체기가 모두 내려가 버린 것이다. 신기하게도.

 

"어머니, 저도 체기가 모두 내려갔네요. 산에 오길 정말 잘했어요. 그동안 비도 오고 바빠서 산에 많이 못 와서 생긴 병이었나 봐요. 조만간 다시 한 번 와요."

"그렇게 땀을 많이 쏟는데 몸 안의 독기가 견뎌나겠니? 벌써 도망 가버린 거지. 아들, 힘 좀 팍팍 내서 얼른 따라오시게. 내려가서 엄마가 막걸리 한잔 사 줄게 시원하게 먹고 가자. 이젠 너도 아무리 먹고 살기 바빠도 산에 좀 자주 다니도록 해라. 건강을 위해서 말이야."


태그:#북한산(삼각산), #문수봉(문수사), #시어머니, #산행, #명절증후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