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다큐멘터리는 사실과 객관성 그 이상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건과 사실, 그리고 객관성이란 결국 다큐멘터리에 있어서는 출발점일 뿐, 도착점은 아니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주제의식에 의해 재구성되는 구성된 사실이요, 제한적 객관성일 뿐이다. 관점 혹은 시선의 차이에 의해 동일한 사실과 사건도 달라질 수 있으며, 결국 관객에게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일본 영화 '라쇼문'이 구성된 사실의 예를 극영화 스타일로 잘 보여준다. 만약 같은 사실, 혹은 같은 피사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여러 감독이 만든다면 '라쇼문'과 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땡큐 마스터 킴 포스터

▲ 땡큐 마스터 킴 포스터 ⓒ 스튜디오 느림보

최근 국내에 개봉된 한편의 외국 다큐멘터리가 그런 나의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땡큐 마스터킴>(원제: Intangible Asset NO.82, 감독 엠마프란츠. 2010.9.2)'. 이건 과연 한국 다큐멘터리야? 아니야? 모르겠다. 만든 이는 외국 사람들이니 외국 다큐멘터리고 그 안에 나오는 내용은 결국 한국 사람이니 한국 다큐멘터리? 법률 용어로 속지주의, 속인주의가 떠 오르는데 이 경우엔 뭘까? 당연히 외국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우리의 이야기여서 한국 독립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사이먼 바커라는 호주 유명 재즈 드러머가 우연히 한국의 무형문화재 84호(동해안 별신굿) 전수자 김석출 옹의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7년간 한국을 17번이나 방문하고 김석출 옹이 80세가 되던 해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아 온다.

 

아예 다큐멘터리 제작과 연계해서 오게 되는데 그를 도와주는 김동원씨(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예술학과 교수)의 도움으로 김석출 옹에게 연락을 취해 놓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한국 전통음악의 또 다른 명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만나는 우리 전통 음악의 고수들은 마치 김석출 옹을 만나기 전, 사이먼이 음반 속에서 들었던 우리 음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음악을 알아가는 전초전처럼 그려진다.

 

그리고 결국 김석출옹을 만나지만 그와의 만남은 그리 길지 못하게 끝나 버린다. 자신의 병을 다스리는 굿을 치르는 날, 사이먼을 만나게 되지만 3일 후 김석출옹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마치 한 셀레버러티의 기행처럼 담아낸다.

 

땡큐 마스터 킴 영문 포스터 원제가 표기되어 있는 영문 포스터

▲ 땡큐 마스터 킴 영문 포스터 원제가 표기되어 있는 영문 포스터 ⓒ 엠마프란츠

아마도 이 영화는 김석출옹과 사이먼 바커의 만남과 그들의 교감을 주제로 기획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란 원래 기획의도대로 촬영되기는 힘든 법, 공교롭게도 공인된 예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방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에게 연락된 이후로도 그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 동안 사이먼이 다른 예인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김석출옹이 사이먼에게 한국 전통음악을 알 수 있는 더 큰 기회를 제공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우리의 전통음악에 대한 인식은 '서구의 그것에 비해 대중적이지 못하고 재미가 없다' 정도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국민은 전통음악을 서구형 대중음악에 비해 접할 기회도 많이 차단되어 있다. 방송에서 국악 프로그램이 편성을 잡기 힘들거나, 전통음악 공연이 서구형 대중음악 공연에 비해 공연회수나 관객수가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음악이 덜 대단한 것이며, 덜 자랑스러운 것일까? 아니 쉽게 얘기하자. '덜 흥겨운 것일까?' 아마 이 다큐멘터리에서 여정의 주인공인 호주 드러머 사이먼 바커와 감독의 시선에 비친 한국의 전통음악, 혹은 그들이 만난 명인들의 음악과 소리 특히 김석출옹의 음악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들에게 우리의 음악은 과연 어떤 느낌을 준 것일까?

 

  사이먼 바커는 김석출옹의 연주를 듣고 연거푸 '이런 음악은 처음이야'라고 격찬을 한다. 그의 음악 뿐만 아니라 여정 중에 다른 명인들을 만나면서 한국 전통음악에 대해 더욱 깊은 찬사를 날린다. 왜 한국에서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소외 당하고 있는 음악이 사이먼에게 찬사를 연발케 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우리의 음악에 대해 이다지도 소홀한 것일까?

 

그 원인을 얘기하자면 우리의 식민지 역사와 근대화 과정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그리고...' 너무 복잡할 것 같다. 그런 원인은 누군가 논문으로 이야기 할 것이고 나는 다만 한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모든 것은 우리의 시선에 달려 있다. 우리 것을 사랑하고자 하면 좋아질 것이요 재미 있을 것이며, 홀대하고자 한다면 재미없고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게 들릴 것이다.

 

 나는 1996년 막 방송프로그램 연출일을 시작할 때 다큐멘터리 아이템을 찾기 위해 개인적으로 수중에 넣은 6mm캠코더를 들고 여기 저기, 이것 저것을 촬영하러 다녔다. 그때 송파 석촌호수 놀이마당에서 동해안 별신굿의 일종인 세존굿을 벌리고 있던 김석출옹과 그의 무리들을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의 동기는 그 음악과 공연이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이것이 우리 전통예술이며, 서구 대중음악과 공연에 밀려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진다'는 다분히 도식적이고 흔해빠진 소명감 때문이었다. 굿판의 흥은 이해될 뿐,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들의 연주 기교는 대단했지만 그 음악이 흥겹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다섯살 난 딸아이와 김덕수 사물놀이의 연희 상설무대 '판'을 보러 갔다가 딸애가 너무나 흥겨워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그 이후 안성 바우덕이 축제도 딸애를 데리고 갔다. 사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우리 음악을 접하면 접할수록 '난타'보다 '사물놀이'가 더 흥겹고 친근해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흥겨워 하는 것보다 딸아이는 훨씬 더 흥겨워하고 즐거워했다. 집에서 TV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녀석은 또래들이 조금씩 따라 하는 아이돌 혹은 걸그룹의 노래를 잘 모른다. 간혹 흥겨운 리듬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춤을 추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실제 공연을 보면서 너무 흥겨워 하는 녀석의 모습은 처음이어서 신기했다.

 

아직 동요 외에 다양한 음악이나 연주를 접해본 적이 없는 딸애는 그야말로 새롭고 신선한 시선으로 우리 음악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딸애의 반응은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물놀이가 좋아지는 현상'을 강화시켜 주고 있는 것 같다.

 

사이먼 바커와 엠마 프란츠 감독은 결국 우리 딸애처럼 새로 접하는 문화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새로운 시선, 신선한 시선을 제공하고 있다. 방송에서 다큐멘터리 소재의 빈곤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정말일까? 소재의 빈곤이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빈곤이 소재의 빈곤을 느껴지게 한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www.degadocu.com)과 동시 게재된 기사입니다. 

2010.09.28 09:55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www.degadocu.com)과 동시 게재된 기사입니다. 
다큐멘터리 땡큐 마스터 킴 김석출 사이먼 바커 엠마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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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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