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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규탄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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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에 이어 또다시 교육 의제를 두고 진보교육감과 정부, 그리고 진보와 보수가 한판 힘겨루기를 할 모양새다. 이번엔 학생인권조례다.

무상급식 의제에선 진보가 승리했다. 지난 6월 2일 치러진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 결과가 그걸 증명한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의 운명은 아직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의 분위기는 무상급식과 여러 모로 닮았다. 우선 무상급식처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화두를 던졌고, 의제를 이끌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지난달 17일 학생인권조례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김 교육감은 오는 10월 5일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1학기부터 경기도 내 모든 초·중·고에서 체벌과 두발 길이 규제가 금지된다. 교직원은 학생의 동의 없이 소지품을 검사할 수 없다.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에도 학생을 강제로 참여시키면 안 된다.

무상급식에 이어 이번엔 학생인권조례 '대결'

경기도만이 아니다. 진보교육감 체제인 서울·전남·전북교육청은 물론이고 장휘국 광주교육감 당선인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및 시행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와 보수 진영은 무상급식처럼 당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보수진영은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두고 "우려되는 사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반응도 학생인권조례 '발목잡기'에 나선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이 많은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교과부는 2008년 11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학교 규칙 제정 권한을 일선 학교장에게 준다는 점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8조는 "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지도·감독기관의 인가를 받아 학교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교과부의 개정안에서는 "지도·감독 기관의 지도를 받아" 부분이 빠진 채 "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에서 학교 규칙을 제정 또는 개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교과부와 해당 지역 교육청의 지도·감독 없이 교칙을 제·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교장에게 주는 것이다.

또 교과부는 지난 10일 '학교 교육력 강화와 학생 권리 신장 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회(이하 학생 권리 신장 협의회)'를 구성해 또다시 초·중등교육법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이날 논의 자료에는 구체적인 초·중등교육법 개정안도 포함됐다. 이 개정안에는 학교장이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취임식을 몇 시간 앞둔 7월 1일 오전 수원시 수일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짧은 강의를 마친 뒤 학생들의 질문을 받으며 두발 자유, 무상급식, 사교육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취임식을 몇 시간 앞둔 7월 1일 오전 수원시 수일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짧은 강의를 마친 뒤 학생들의 질문을 받으며 두발 자유, 무상급식, 사교육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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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학생의 인권보장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초·중등교육법 18조 4항은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교과부의 학생 권리 신장 협의회가 논의한 개정안에는 여기에 '토'를 달고 있다. 초·중등교육법 18조 5항을 신설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 학생의 권리 행사는 학교의 교육목적과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
② 학교의 장은 교육활동을 보장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타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18조 4항에 따른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다만, 학생 권리의 본질적인 부분은 제한할 수 없다.

즉 학생의 권리 행사는 학교의 교육목적을 따라야 하고 학교장은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등 진보 진영은 "정부가 학생인권조례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27일 정오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교육법 개악에 맞서 모든 행동을 다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교과부 "학생인권조례 발목잡기? 학교 다양화 조치일 뿐"

이들은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 18조 5항의 신설은 국제인권기준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불가침의 인권을 제한할 막대한 권력을 학교와 교장에게 쥐어주겠다는 것"이라며 "'교육활동 보장', '질서유지' 등의 이유로 학생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건 학교의 독재를 보장하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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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들은 "교과부의 개정안은 학교장에게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학칙 제정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학교장의 통제 권력을 절대화하고 있다"며 "교과부의 계획은 학생인권에 부정적인 학교장들이 교육청의 지침에 반기를 들거나 집단적 거부 행동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승수 변호사도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 개정 추진에 대한 검토의견'을 통해 "교과부 개정안의 근본적인 문제는 학생인권의 제한 여부나 제한 범위에 관한 판단을 사실상 학교장에게 백지위임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방향의 법 개정은 법치가 아닌 '인치(人治)'를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교과부는 이런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27일 "국회에 계류 중인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학생인권조례 논란이 벌어지기 이전인 2008년 11월에 제출된 것이다"며 "그런만큼 '교과부가 학생인권조례 제정 및 시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학교장에게 교칙 제정 권한과 학생 권리 제한 권한을 주는 것도 학교 다양화를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권운동사랑방,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여러 인권단체와 교육단체들은 "정부가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막기 위해 맞불을 놓고 있다"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반대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초중고등학교교장총연합회 등 보수성향의 5개 교원단체는 경기도의회의 학생인권조례안 통과에 대해 "우려되는 사태"라며 "교과부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사회적 합의안을 마련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정부 쪽 견해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처럼 팽팽히 맞서고 있는 양쪽 진영은 한동안 우호적인 여론 형성 작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논란을 두고 "학생 두발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판 대결'은 진보가 승리했다. 그렇다면 '두발 전쟁'의 승자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태그:#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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