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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물길이 지나는 금산땅 제원은 금강천리를 세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하구 기점 270km로 정확히 2/3 지점에 해당하는 상류의 끝 중류의 시작지점이라 할 수 있다. 금강은 상류인 진안 무주에서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지만 광역상수원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겐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물길이 금산의 부리면과 제원면을 통과하면서 그 아쉬움의 갈증을 달래 주기라도 하듯 천내리의 너른 벌판을 감싸고 돌며 시원한 산수를 보여주며 상류 끝의 남은 멋을 톡톡 다 털어낸다.

중봉산 부엉산과 월령산 사이의 깊은 영동의 골로 들어가기 전, (평사)낙안들과 난들(마을에서 떨어진 들판)을 태동 시킨 요동치는 물길, 그 물살이 내려놓고 간 자갈과 모래들판 그리고 천혜의 습지를 태고적부터 품고 있는 땅 천내리. 물안리의 또다른 이름격인 천내리는 뛰어난 경관과 풍요로운 생태적 자원,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금강의 자랑 중 으뜸의 반열에 속한다.

최근 습지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4대강사업에서도 습지의 훼손 및 파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금강의 습지들 가운데 천내리습지 역시  그 개발의 그물에서 비껴갈 수 없었고, 지금의 위기를 널리 알리고 해결책을 위한 노력이 시급해졌다.

이에 녹색연합의 지난 19일 금강 트레킹은 천내리를 흐르는 천내강이 왜 울고 있는지 함께 찾아가 살펴보고, 그 눈물 그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방송의 단골촬영지인 미루나무 강가에서 서로 인사나누기와 몸풀기, 천내리에 대해 설명듣는다.
▲ 강가 미루나무가 줄 지어 서 있는 금강과 봉황천합류점 부근 방송의 단골촬영지인 미루나무 강가에서 서로 인사나누기와 몸풀기, 천내리에 대해 설명듣는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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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천합류점부근은 4대강사업에서 천내지구라 명명되어 올봄 이미 포크레인으로 갈대밭을 갈아엎고 꽃밭조성을 해놓았지만, 여름이 지나면서 꽃밭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 이미 꽃밭조성사업이 진행된 천내지구를 걸으며 봉황천합류점부근은 4대강사업에서 천내지구라 명명되어 올봄 이미 포크레인으로 갈대밭을 갈아엎고 꽃밭조성을 해놓았지만, 여름이 지나면서 꽃밭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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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갈대둔치를 갈아엎고 그 위에 줄지어 야생화 모종을 심었으나 원래의 하천식생들이 먼저 올라와 꽃모종은 햇빛 경쟁에서 밀려났다. 더우기 여름 장마로 둔치가 물에 잠기면서 바둑판처럼 조성해 놓았던 꽃밭도 조성 전 하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4대강 꽃밭조성사업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조롱하듯 친절하게 일러준 구간이었다.


천내리 난들(마을에서 떨어진 들판이라는 우리말)의 자갈밭을 걸어간다. 장대한 시간 동안 물이 어루만지고 끌고와 형성된 자갈밭이고 자갈돌이 아니던가. 인간이 필요에 의해 갖다쓰는 자갈돌, 인간이 탐욕에 의해 깎아내는 자갈밭이 아니어야 한다. 이 자갈밭은 올 여름에도 불어나는 강물을 껴안아 주던 물그릇이었고, 유기물들을 걸러주던 정수터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물길이 휘어지며 내어뱉은 자갈돌들이 난들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자갈밭에도 색색의 깃발이 꼿혀있어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 물살이 내려놓고간 천내리 난들의 자갈밭 물길이 휘어지며 내어뱉은 자갈돌들이 난들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자갈밭에도 색색의 깃발이 꼿혀있어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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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들 자갈밭 가장자리엔 고운 모래가 쌓였고, 그 위엔 물가식물인 천연갈대가 가을잔치를 준비하느라 꽃이삭 피우기 바쁘다. 금강하구 신성리까지 가지 않아도 금강은 어디서고 갈대를 키울 수 있고 갈대숲길을 내어줄 수 있다.

강의 품 속으로 깊게 들어간다는 것은 강수욕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강이 품고 살아가는 각양의 생물과 무생물들을 만지고 스치고 느끼는 것, 그리하여 강의 진정한 몸체를 이해하고 몸체를 이루는 그 각각의 소중함을 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단, 강에 들 때 우리는 손님일 뿐, 강을 나갈 때까지 최소한의 즈려밟기로 주인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자갈밭을 지나 모래땅에 접어들면 무성한 갈대가 군락을 이루지만, 이 역시 사과처럼 반쪽으로 깍여나갈 위기에 있다
▲ 난들 가장자리에 형성된 어른키를 훌쩍 넘는 갈대밭 자갈밭을 지나 모래땅에 접어들면 무성한 갈대가 군락을 이루지만, 이 역시 사과처럼 반쪽으로 깍여나갈 위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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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운 모래를 이제 천내리 이후부터 대청호까지는 볼 수가 없다. 상류의 바윗돌들이 부서지고 부서져 예까지 흘러오며 저렇게 고운 모래가 되고만 녀석들이 천내리 난들에서 둔턱을 이뤘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사막의 모래언덕처럼, 물이 만들어 놓은 두툼한 모래이불 주변엔 연가시로 배부른 사마귀들이 물웅덩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그 배를 뚫고 나온 연가시들이 물웅덩이에서 춤을 춘다. 또한 환경영향평가서에도 기재되지 않은 수달의 배설물까지 천연스럽게 널려있는 것을 본다.



환경영향평가서에도 기입되지않았던 수달의 배설물을 난들 천내지구 모래톱 주변을 걸어가며 발견한다
▲ 수달의 흔적 환경영향평가서에도 기입되지않았던 수달의 배설물을 난들 천내지구 모래톱 주변을 걸어가며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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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빼어나 관광객이 몰려드는 천내리 난들의 금강변을 가시박이 점령했다. 관광 금산의 위상은 인공폭포와 같은 인위적인 경관 보다는 생태적 경관에의 관심이 깊을 때 발휘되지 않을까.
▲ 가시박이 강가를 덮고있는 천내리 풍경이 빼어나 관광객이 몰려드는 천내리 난들의 금강변을 가시박이 점령했다. 관광 금산의 위상은 인공폭포와 같은 인위적인 경관 보다는 생태적 경관에의 관심이 깊을 때 발휘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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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의 끄트머리에서 봉황천을 만나면서 난들을 일군 금강은 영동의 계곡으로 들어가며 수려한 경관을 이어준다
▲ 영동의 관문 가선리를 향해 금산의 끄트머리에서 봉황천을 만나면서 난들을 일군 금강은 영동의 계곡으로 들어가며 수려한 경관을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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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서 영동으로 향하는 68번 국도를 타고 금강우안으로 걸어간다.
발 아래 기암괴석에 부딪혀 요동치며 흐르는 금강과 둔치에 한가로이 풀 뜻는 누렁소가 한폭의 그림같은 영동 가선리의 금강
▲ 영동 가선리를 힘차게 흐르는 금강 금산에서 영동으로 향하는 68번 국도를 타고 금강우안으로 걸어간다. 발 아래 기암괴석에 부딪혀 요동치며 흐르는 금강과 둔치에 한가로이 풀 뜻는 누렁소가 한폭의 그림같은 영동 가선리의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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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속임이 없이 또 가을을 맞고 있다.
강가에서 강의 식물들을 통해 계절을 느끼는 맛도 각별하다
▲ 초가을 스크령밭 계절은 속임이 없이 또 가을을 맞고 있다. 강가에서 강의 식물들을 통해 계절을 느끼는 맛도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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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영동의 강을 멀리서 조망했다면, 이제 강의 살에 닿아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멀리 볼 땐 물 속에 한 점 같았던 바위가 가까이 와보니 40명의 엉덩이를 채우고도 남는 찹쌀떡처럼 넓은 바위였음을, 바윗돌 주변 매끄러운 돌멩이에 붙은 시커멓고 살찐 다슬기가 이렇게 많음을, 겉껍질이 오돌도돌하고 두터운 처음보는 조개가 그 희귀하다는 두드럭조개류인지를,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알 리가 없으며 손 넣어보기 전에는 느껴볼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 강에 깃대어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영동 가선리 어죽마을에서 올갱이국과 어죽으로 점심을 먹고, 장소를 바꿔 천내습지가 잘 보이는 저곡산성에 올라본다. 저곡산성은 금강초등학교에서 올라 10분 거리인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아쉽게도 금강초등학교는 이미 폐교되어 달리 운영되고 있는데, 금강 400km 주변에서 유일하게 같은 이름을 갖고 있던 학교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치겠다고 영동에서 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금산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이에 금산군수 권종이 600의 적은 군사로 대응하며 지략을 꾀한 곳이 저곡산성이요. 강깊이를 가늠 못하게 상류 마달피에서 황토를 풀어 시간을 끌고자 했던 곳이 바로 저곡산성 아래 닥실나루였다. 비록 몰지각한 아낙이 치맛단 걷고 여울을 건넘으로해서 왜군에게 패했고, 연이은 금산전투에서 중봉 조헌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700의 군사가 장렬히 순직하게 된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저곡산성에서 보는 천내습지는 우안의 산림생태계와 강 중앙까지 이어진 너른 갈대습지가 자연스레 연결되어 보기드문 장관을 연출한다. 멀리서 봐도 크고 작은 둠벙들이 갈대와 버드나무 숲 사이로 확연한 걸 보면, 천내강 생태계의 자궁으로 가히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현장은 제원다리부터 포클레인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제방보축을 하고 있고, 습지초입의 버드나무 군락은 이미 벌목된 지 오래라 머리 깎인 민둥산 같고, 포클레인의 거침없는 기세가 천내습지 코 앞에서 잠시 멈춰있지만 언제라도 하얀 제방의 띠가 파고들어 올 기세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제 그렇다면 천내습지 심장부로 깊이 들어가보자. 도대체 무엇이 어떻기에 이것이 습지라고 하는 것이고, 그 습지가 어떻기에 울고 있다는 것인지. 허옇게 혀를 내민 보축제방을 밟고 가는 것보다는 마을길 골목을 지나 뒷산 낮은 언덕을 넘어 천내습지로 도달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공사중인 진흙제방 위를 걸어서가 아닌, 천내3리 마을골목을 지나 뒷산을 넘어 천내습지로 들어간다.
▲ 마을담길을 따라 천내습지로 공사중인 진흙제방 위를 걸어서가 아닌, 천내3리 마을골목을 지나 뒷산을 넘어 천내습지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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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숲길, 농로길을 따라 힘들이지 않고 오래지 않아 당도한 천내습지. 모두가 한동안 할 말을 잃는다.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듯 정적 속에 잠자고 있는 습지. 물 가장자리에서 정 중앙을 향해 성장하는 습지 같기도 하고, 물이 빠졌다 불었다 하면서 미지형을 그리는 습지 같기도 한 이곳은, 금강 속 또 하나의 우주인 듯 멀리서봐도 분명했던 천내강의 자궁, 생명의 자궁 그것이었다.

진둠벙(긴둠벙의 방언)과 각시둠벙 등 태고적부터 있어 온 천내습지 안의 둠벙들
▲ 천내습지의 진둠벙 진둠벙(긴둠벙의 방언)과 각시둠벙 등 태고적부터 있어 온 천내습지 안의 둠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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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내습지를 거슬러 올라가며 오프로드가 낸 길을 따라 걸어간다. 쓰레기가 사람 눈높이까지 걸려 장마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가늠하고, 제주의 곳자왈을 연상할 만큼 버드나무군락이 빽빽한 가운데 그 위로 덩굴식물이 무둥을 타 하늘도 덮어버린 어둠 속 정글을 맛 본다. 늪에는 사람 소리에 놀라 뛰어드는 뭇생명들의 움직임이 바쁘고, 진흙에 찍힌 고라니 너구리 발바닥이 사람 발자국에 뒤덮힌다.

원시와 자연, 참으로 어울리는 모습을 천내습지에서 발견한다. 우리의 소리와 인기척, 그져 방문 자체가  미안할 정도다.

강 건너 용화리로 건너가기 위해 천내습지를 벗어나고 있다
▲ 천내습지에서 강으로 강 건너 용화리로 건너가기 위해 천내습지를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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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내습지를 거슬러올라가면 맞은편 용화리를 이어주는 여울이 있다. 타던 여름볕도 맥을 못추는 늦여름이지만, 여울에 발 담구니 아직은 시원하다.

금강 트레킹이 강을 따라 걸으면서 강을 느끼고 강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라면, 그 중 여울 건너기는 강의 속내를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백미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발바닥에 전해오는 자갈돌의 통증과 규조류의 매끈함, 종아리를 스치는 물살의 어루만짐, 때로는 차가운 수온이 파고드는 뼛속 아리는 고통과 물흐름에 혼미해져 몸 가누기에 정신 차려야 하는 긴장감. 강은 오감 이상을 동원 시키는 체험의 장이고, 무한한 감수성을 배양하는 감성의 공장이라 가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천내습지를 벗어나 강 건너 용화리까지 여울을 건너간다.
금강트래킹에서 경험하는 강의 선물, 여울건너기. 발바닥으로 느끼는 짜릿한 고통이야말로 강의 숨결을 영원히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 아닐까
▲ 용화리 여울 건너기 천내습지를 벗어나 강 건너 용화리까지 여울을 건너간다. 금강트래킹에서 경험하는 강의 선물, 여울건너기. 발바닥으로 느끼는 짜릿한 고통이야말로 강의 숨결을 영원히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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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내리 일원에서 무모한 꽃밭조성사업의 교훈을 얻었고, 경관 생태 보호지역으로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위기에 봉착한 난들 천내지구와 천내습지 저곡지구를 두루 둘러 본 하루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차분히 들어본 저마다의 소감 속에 공통적으로 내뱉는 그것이 있었으니.

강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무심했었다는 것, 천내습지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금강 트레킹 하루로 인해 행복했다는 것이었다. 금강, 당신에게는 정녕 금강 속에 단 하루만 같이 있어도 금세 당신의 식구로 만드는 위대한 힘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최수경 기자는 대전충남녹색연합 공동대표입니다.



태그:#금강트래킹, #천내습지, #4대강, #녹색연합,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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