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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분위기의 왜목마을 앞바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왜목마을 앞바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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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목)

백사장 앞 바닷가에 고깃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는 왜목마을을 나서면 바로 대호방조제다. 만조 때라서 그런지 방조제 오른쪽, 발 아래로 짙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바다 가까이 낮은 둑 위를 달리는 셈이라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바람이 거칠게 부는 날에는 물벼락을 맞을 수도 있겠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무념무상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 좋은 길이다. 방조제 끝 부분에 위치한 도비도휴양단지에 다가갈 무렵 방조제 아래 검게 드러난 갯벌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비도휴양단지로 휴식을 취하러 나온 관광객들이다. 도비도휴양단지에서는 간단한 갯벌 체험이 가능하다.

대호방조제 끝 도비도유원지 주변 갯벌에서 조캐를 캐는 사람들.
 대호방조제 끝 도비도유원지 주변 갯벌에서 조캐를 캐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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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갯벌에 깨알같이 박혀 있다. 돌투성이 갯벌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해서 내려가 봤다. 호미로 열심히 갯벌을 긁어대더니, 그릇에 조개 몇 개를 주워 담는다. 바지락이다. 갯벌이 돌투성이라 걸음을 옮겨 딛기도 쉽지 않은데, 쪼그려 앉은 채 돌 틈 사이로 호미질을 하는 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우동 그릇만한 플라스틱 그릇에 바지락을 넘칠 듯 담은 한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상당히 오랜 시간 작업을 했을 것 같은데, 이제 겨우 30분 정도 됐단다. 30분을 같은 자세로 호미질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새 바지락을 이렇게까지 많이 잡을 수 있었다는 게 의외다. 하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관광객들이 잡을 수 있는 양으로 결코 적지 않다. 몇 걸음 곁의 아저씨는 힘만 들지 잡히는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바지락을 캐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여성이나 어린 아이들도 눈에 띈다. 꽤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다. 단순히 바지락을 많이 잡겠다는 생각보다는 바지락을 잡는 행위를 놀이의 하나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대호방조제. 넘실대는 푸른 바다.
 대호방조제. 넘실대는 푸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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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 앉아 조개나 게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수렵 및 채취 본능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최첨단 산업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은 여전히 원시적인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러니 관광객들 등쌀에 갯벌이 망가지느니 마느니 하는 말은 인간의 각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설득력이 거의 없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갯벌을 망치는 주범은 전혀 다른 데 있다.

삼길포항. 선착장에서 회를 떠주는 고깃배들.
 삼길포항. 선착장에서 회를 떠주는 고깃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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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방조제를 건너면 서산 지역이고, 바로 서산에서 가장 큰 항구라는 삼길포항이 나온다. 삼길포항 앞바다를 바다낚시용 좌대들이 좍 덮고 있다. 마치 낚시꾼들의 천국 같다. 삼길포항은 선착장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직접 회를 떠주는 걸로도 유명하다. 비교적 싼 값에 회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마침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선착장에 발 디딜 틈이 없다.

삼길포항의 상징은 '우럭'이다.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우럭등대가 있고, 해마다 10월 초면 우럭축제가 열린다. 날이 선선해지는 그때가 우럭이 한참 물이 오를 때다. 올해 축제는 10월 1, 2, 3일, 3일 동안 열린다.

삼길포항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삼길포항 건설공사'로, 2011년 말이나 돼야 공사가 끝난다. 그때가 되면, 최신식 항구로 거듭날 모양이다. 서해안의 포구와 항구가 자꾸 옛 모습을 잃어가는 게 무척 아쉽다. 하지만 나 또한 옛날 사람이 아닌데, 무슨 수로 변화를 거부할까?

삼길포항 안쪽으로 대산산업단지까지 가는 해안도로가 나 있다. 절벽 아래로 그늘이 매우 짙은 길이다. 삼길포항으로 유람을 나온 관광객들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항구에서 사온 회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산산업단지 역시 고요하기 짝이 없다. 추석 기간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자전거여행을 하는 나로서는 엉뚱한 대박을 맞은 셈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공장 지대를 이렇게 유유자적 자전거를 달릴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조상님들께 감사드린다. 추석 같은 명절이 한 해에 두세 번은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또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피곤하려나?

황금항.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
 황금항.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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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산업단지에서 독곶리와 벌천포(벌말)를 찾아 나선다. 두 곳 모두 서쪽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지형이 마치 거대한 게가 바다 위로 집게발을 들어 올린 형상이다. 지형이 독특하게 생긴 만큼 찾아가는 길 또한 쉽지 않다. 또한 이 길은 언덕이 많아 몸도 상당히 고달프다.

먼저 위쪽 발가락에 해당되는 독곶리를 찾아간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 도착한 곳에 의외의 풍경이 펼쳐진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외진 곳까지 음식점들이 들어섰는지 모르겠다. 음식점마다 가리비 굽는 냄새가 구수하다. 바닷가 끝에 조그마한 포구가 있다. 지도에도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포구다.

바닷가에 서 있는 한 할아버지에게 포구 이름을 물었다. 포구 이름이 별다른 게 없단다. 이런 곳에 이름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어투다. 그래도 뭐라고 부르는 이름이 있지 않겠냐 했더니, 그냥 '황금항'이라고 하면 된단다. 바닷가 끝에 '황금산'이 있다. 아마 그 산 이름을 끌어다 붙인 것 같다.

황금항 앞이 가로림만이다.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이곳 역시 '개발'이 될 뻔한 곳인데 당시 개발을 지시한 박정희 대통령이 갑자기 숨을 거두면서 그만 공사가 중단됐다고 한다. 그 말에 뭔가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개발이 되면 좋겠냐고 했더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단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뜻이다.

벌천포. 부둣가에 묶인 배들.
 벌천포. 부둣가에 묶인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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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천포 역시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에 있다. 고개가 너무 많아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중간에 되돌아갈까 약한 맘을 품었을까? 벌천포 선착장 또한 삼길포항만큼이나 번잡하다. 규모는 삼길포항과 비교할 수도 없이 작아 몸 돌릴 틈도 없다. 추석 마지막 날이라서 그러려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 포구 역시 조만간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으로 보인다. 가로림만에 조력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주민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 조력발전소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국토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게 비단 4대강뿐만이 아니다.

전 국토가 발전이라는 미명하게 엄청난 개발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개발이 주민들의 뜻과 다르게 진행되는 건, 분명히 그 개발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익이 국민 모두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 또한 큰 문제다. 벌천포 선착장에 짠 내가 물씬 나는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내 가슴이 마치 바윗돌이라도 안은 기분이다.

벌천포 마을 안길
 벌천포 마을 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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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천포에서 300m 가량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벌천포해수욕장이 있다. 서해안에서 보기 드문 몽돌해수욕장이라는데, 해수욕장 입구 쪽으로만 몽돌이 구르고 있고 안쪽으로는 그저 작은 돌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을 뿐이다. 안쪽으로는 지형상 파도가 치기 어려운 조건이어서 모난 돌들이 서로 몸을 부딪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해수욕장은 그 어느 해수욕장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 줄기 나뭇가지처럼 돋아난 지형의 양쪽에 작은 돌투성이 해변이 형성돼 있다. 폭이 약 50여 미터, 소나무 숲이 울창해 바닷바람을 맞으며 쉬었다 가기 딱 좋은 곳이다.

벌천포해수욕장.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보물.
 벌천포해수욕장.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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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해수욕장 안쪽으로 입구 쪽의 둥글둥글한 몽돌을 옮겨다 깔아놓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겠다 싶은 곳이다. 하지만 이 해수욕장 역시 조만간 출입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갈고 닦으면 훨씬 더 아름다워질 텐데, 채 조탁도 시도해 보지 못한 보물을 눈앞에 두고 떠나는 마음이 너무 아쉽다.

작은 쇠못이 박힌 자전거 뒷바퀴.
 작은 쇠못이 박힌 자전거 뒷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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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천포 가게 여기저기에 TV오락프로그램인 '1박2일' 출연진들이 남기고 간 사인이 붙어 있다.
벌천포를 나와서는 대산읍에 잠자리를 정했다. 대산읍에 다다를 무렵, 뒷바퀴에 펑크가 났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펑크를 때웠다. 수리하는데 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오늘 달린 거리는 65km, 총 누적거리는 648km이다. 여행 속도가 너무 느리다. 서해안 해안선을 따라가는 길이 애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태그:#삼길포항, #독곶리, #벌천포, #벌말, #대호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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