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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하루 앞두고 수원에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83세)를 찾아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추석, 설과 같은 명절이 되면 옛날 생각이 더 많이 나고, 평생 부모님께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책감과 '더러운 팔자' 때문에 자손도 없이 홀로 외롭게 평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괴로워하신다.

1990년대 이후에 와서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활발하게 제기되기 시작하고,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비로소 피해자들은 부모에 대한 죄책감, 사회에 대한 죄책감, 여성으로서 순결하지 못하다는 죄책감으로부터 서서히 해방될 수 있었다. 그들이 겪어왔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역사는 자신들의 죄로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죄없이 자신들이 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피해는 바로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 한국 사회, 나아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깨끗히 청산하도록 요구하지 않았던 국제사회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2010년에 맞이하는 안점순 할머니의 추석은 기쁘지 못했다.

반지하방에 세들어 사는 할머니 집은 끊이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다른 어느 때보다 더 눅눅했다. 당뇨와 고혈압, 관절염 등으로 고생하고 있는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며 과일상자 등을 들고 반지하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데 배 위에 걸쳐진 과일상자 무게만큼 내 마음도 무거웠다. 이웃집들에서 추석음식을 만드느라 고소한 냄새들이 풍기는데, 할머니의 집에선 추석이라는 느낌을 찾아볼 수 없었고, 할머니는 혼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쓸쓸... 아직 조카들도 오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도 일본 정부는 아무 반응이 없지?"

그렇게 묻는 할머니의 물음에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는 절망과 회의가 저며 있었다.

"할머니,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일본은 참 희망이 없는 나라이긴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있으니까 좋은 결말을 보게 될거에요. 그러니까 할머니는 건강을 신경쓰셔서 꼭 해결을 볼 것이라고 마음먹어야 해요."

그렇게 할머니께 말씀드리며 위로를 하고자 했다. 할머니께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위로는 곧 나 자신을 다독여주고 힘내라고 격려하는 말이기도 했다.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활동에 힘을 실을 수 있으니까.

"올 추석에는 아무도 없네. 어딘가에서 쌀 20kg을 줬는데, 동사무소에서도 적십자사에서도 뭐... 아무도 없네."

언젠가 할머니댁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께 새로 들어선 시장님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환경문제,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할머니한테도 관심을 많이 기울일 것이라고 말씀드렸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내가 죄송스러워졌다.

"할머니, 죄송해요.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마 바빠서 그럴 거예요."

할머니의 온몸에는 파스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무릎이고, 허리고 안 아픈 데가 없네. 아이고... 이놈의 팔자" 하시며 한탄하시는 할머니의 한숨이 내게는 채찍질로 느껴진다. 어서 빨리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서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에 인생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른다.

할머니집에서 나오면서 시장님실에 전화를 걸었다. 시장님이 관심을 기울여준다면 할머니가 정말 좋아하실 것 같아서였다. 비서가 전화를 받는다. 시장님은 지금 결재 중이시란다. "통화를 하고 싶다고 메모를 남겨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짧은 대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올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www.urisuwon.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추석,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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