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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10년의 9월은 자전거족에게는 참 서운한 달이었다. 팔다리를 태울듯, 자전거 바퀴를 녹일듯이 뜨거웠던 8월이 지나고 이제 부담없이 자전거 여행을 떠나볼까 했더니 웬걸 주말만 되면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태풍이 함께 데리고온 비구름이 주중에도 사정없이 물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보면서, 인터넷 자전거 동호회 카페의 많은 발바리 자전거족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마음속의 먹구름을 토로하곤 했다.

추석연휴가 다가오자 다행히 태풍도 동해바다 저너머로 건너가고 이제 비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대문밖에 쓸쓸히 묶여있던 애마 잔차의 바퀴에 바람도 넣고, 체인에 기름칠도 해준다. 금속말도 그동안 라이딩에 목말랐던지 주인의 손길을 반기며 생기를 띤다. 9월의 자전거 여행지로 찜해두고 비로 인해 계속 연기했던 강원도 철원의 가을 들녘과 푸른 한탄강을 향해 신나게 달려보자 애마야.

북한의 금강산 밑 철령에서 발원하여 평강군, 철원군을 지나 임진강과 만나는 한탄강. 어서 통일이 되어 한탄강이 더욱 힘차게 흘렀으면 좋겠다.
 북한의 금강산 밑 철령에서 발원하여 평강군, 철원군을 지나 임진강과 만나는 한탄강. 어서 통일이 되어 한탄강이 더욱 힘차게 흘렀으면 좋겠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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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은 북한의 강원도 금강산 밑의 철령에서 발원한 길이 136km의 긴 강줄기로, 남북한의 분단지역을 구비구비 흐르다 우리의 주식인 쌀이 나는 철원평야에 깨끗한 물을 대주고 임진강과 만나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강가에 서면 콸콸 흘러가는 강물소리가 마치 분단된 이 나라의 통일은 언제 오려나 한탄하는 소리같아 특별한 느낌이 드는 강이기도 하다. 

한탄강변을 가는 방법은 다양한데 제일 쉬운 방법은 수도권 전철 동두천역에서 갈아타고 가는 경원선 기차를 타고 한탄강역에서 내리면 된다. 오늘 내가 선택한 코스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탄강을 찾아가는 길이다.

강변을 향해 가는 길에 만나는 노란 가을 들녘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한탄강 중상류의 강줄기를 따라 달리면서 마주치는 시원하고 호쾌한 폭포, 장대하고 멋진 기암절벽의 협곡, 문화재가 된 역사속의 다리 등 철원의 명소들을 감상하며 달렸다.       

통유리 사이 작은 구멍으로 표를 주는 매표소가 있는 동송읍 시외버스터미널의 소박한 대합실
 통유리 사이 작은 구멍으로 표를 주는 매표소가 있는 동송읍 시외버스터미널의 소박한 대합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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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 동송읍 동네 구경을 하다가 마주친 길고양이가 자전거탄 외지인을 호기심 어리게 쳐다보고 있다.
 철원군 동송읍 동네 구경을 하다가 마주친 길고양이가 자전거탄 외지인을 호기심 어리게 쳐다보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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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정겨운 이름 읍(邑)

수도권 전철 4호선 수유역앞에서 시외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강원도 철원군의 동송읍 버스터미널에 내린다. 시외버스는 두시간여를 달리며 포천, 운천 등의 읍이 들어가는 작은 소도시를 구경시켜 준다. 버스의 종점인 동송읍에는 편의점부터 시장까지 있어 내가 사는 서울의 여느 동네와 다를게 없어 보인다. 그래도 여행중에 만난 동네 이름에 읍(邑)이 들어가 있으면 괜히 정겹게 느껴져 자전거에 올라타 동네 구경을 하게 된다.

시장 한가운데에 들어가 순대를 사먹기도 하고 그렇게 작은 소읍을 기웃거리다보니 읍(邑)만의 풍경이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한다.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나오는 아저씨에게서 풍겨오는 추억어린 스킨 냄새, 팔뚝에 화려한 문신을 하고 어슬렁거리며 걷는 동네 형들, 세련된 커피 전문점보다 훨씬 성업중인 다양한 이름을 가진 다방들, 매표소의 작은 구멍으로 표를 주고 받는 시외버스터미널의 소박한 대합실까지. 내가 작은 소읍을 좋아하게 된 정경들을 발견하니 반갑고 즐겁다.        
    
자전거로 동네 한바퀴 구경을 하고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쉬면서 터미널을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한 척 쳐다보는 것도 여행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인근에 군부대가 많아서 그런지 휴가를 나오거나 다시 부대로 들어가는 앳된 얼굴의 장병들이 종종 보인다. 휴가 전날 다리미로 공들여 다렸을 군복은 반듯하게 각이 잡혔고, 물광·불광을 동원하여 닦았을 군화는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하지만, 부대밖의 일반인들에겐 다 똑같은 군복으로 보인다는 걸 전역 후에야 알게 되겠지.         

철원 8경중 하나라는 직탕폭포는 그 이름만큼이나 이채로운 풍모에 폭포소리 또한 호쾌하여 가슴을 뻥뚫어주는것 같다.
 철원 8경중 하나라는 직탕폭포는 그 이름만큼이나 이채로운 풍모에 폭포소리 또한 호쾌하여 가슴을 뻥뚫어주는것 같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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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익어가는 벼들 옆으로 난 한탄강변길을 따라 직탕폭포에서 고석정을 거쳐 승일교까지 달려간다.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 옆으로 난 한탄강변길을 따라 직탕폭포에서 고석정을 거쳐 승일교까지 달려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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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가을들녘을 달려 찾아간 큰 여울길   

동송읍에서 한탄강의 철원 8경 중 하나라는 직탕폭포를 향해 달려간다. 번화했던 길거리는 금세 한적한 도로로 바뀌고 길가엔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이 고개숙여 반겨준다. 화창한 날씨에 29도 라는 오늘 기온도 만만치 않은 더위지만, 팔다리에 닿는 햇볕의 느낌이 8월의 햇살과는 완연히 다르다. 논밭의 벼들이 추수 때까지 잘 익으라고 뜸을 들이는 뜸볕이어서인지, 따갑지 않고 부드럽게 얼굴과 팔다리에 닿는다. 이래서 어떤 시어머니가 만든 옛 속담에 '봄 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 볕에 딸내미 내보낸다'라고 했나보다.

오르막길도 나타나지 않는 평탄한 가을 들녘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오랜만에 즐라(즐거운 라이딩의 자전거 용어)한다. 벼들이 노랗게 익은 너른 가을 들판은 누구나 마음을 풍성하고 넉넉하게 해주나보다. 갓길이 거의 없는 차도 한쪽 끝을 느리게 달리는 자전거를 추월하면서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차들이 한 대도 없다. 그 무서운 덤프트럭도 왼쪽으로 멀찌감치 거리를 두면서 지나간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손을 흔들어주었는데 차의 사이드 미러로 보았나 모르겠다. 

추수를 하는 농부님들에게 길을 물어보면서 철원 8경중 하나라는 직탕폭포에 무사히 도착했다. 폭포로 가는 내리막길 내내 커다란 폭포소리가 들려와 듣는 사람을 상쾌하게도 하고 흥분하게도 한다. 그 이름만큼이나 폭포의 모습이 독특해 첫인상이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80m의 넓은 강폭은 지금껏 국내에서 보아온 폭포와는 전혀 다른 풍모와 장쾌한 물소리를 토해내니 철원 8경에 속할 만하구나 싶다.

'큰 여울'이란 우리말의 한탄강은 그 이름처럼 굽이굽이 절벽을 휘감으며 변함없이 흘러간다.
 '큰 여울'이란 우리말의 한탄강은 그 이름처럼 굽이굽이 절벽을 휘감으며 변함없이 흘러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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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에 임꺽정이 첩거했다는 고석정 한탄강변의 장대한 절벽과 협곡을 보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부근에 임꺽정이 첩거했다는 고석정 한탄강변의 장대한 절벽과 협곡을 보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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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가 사는 맑은 한탄강에 발을 담그다

직탕폭포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어느 식당에서 점심밥을 잘 먹고 나니, 바퀴가 작은 내 자전거를 재미있게 쳐다보시던 주인 아저씨가 직탕폭포에서 고석정을 지나 승일교까지 강변을 따라 길이 나있다며 밖으로 나와 손으로 방향까지 알려 주신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느냐, 이 자전거로 어디까지 가봤느냐." 자전거 여행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은 만큼 자전거 여행자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주니 기분이 좋다.

정말 아저씨말대로 직탕폭포부터 한탄강변의 절벽위을 따라 산책로가 계속 나있다. 경사진 언덕도 없고 옆의 차도에서도 떨어져 달릴 수 있어 안전하며, 무엇보다 짙고 푸른 한탄강을 눈아래에 두고 달리다 서다하며 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좋은 길이다. 여름 휴가시즌이 끝나서인지 주말인데도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사위는 더없이 한적하고 고요하다. '큰 여울'이라는 우리말의 한탄강은 그 이름처럼 굽이굽이 절벽을 휘감으며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다.    

한탄강을 굽어보며 이 길을 따라 계속 달리다보면 어느새 고석정 표지판이 나온다. 신라 진평왕 때 만든 유서깊은 이 정자는 조선 명종 때 의적당의 두목 임꺽정(林巨正)이 고석정 건너편에 돌벽을 높이 쌓고 칩거하면서 조공물을 탈취하여 빈민을 구제한 곳이라고도 한다. 철원 제일의 명승지라는 고석정 주변의 한탄강 풍경이 얼마나 멋있고, 협곡속에 우뚝솟은 절벽들이 어찌나 장대한지 진평왕이 뱃놀이터로 삼을 만하고 임꺽정이 숨을 만하다 싶은 곳이다. 식구들과 놀러온 아이들과 함께 강가의 모래톱에 서서 강물위로 물수제비를 날리며 한탄강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다리 밑 정자에 앉아 바라 본 남북합작다리 승일교. 앞쪽과 뒤쪽의 다리 생김새가 다르다.
 다리 밑 정자에 앉아 바라 본 남북합작다리 승일교. 앞쪽과 뒤쪽의 다리 생김새가 다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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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정에서 나와 강변을 따라 조금만 달려가면 다리가 두 개 나온다. 그 중 고전적인 아치형의 다리가 승일교로 생김새가 흡사하여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고도 한단다. 총 길이 120m의 이 다리는 1948년 북한 체제 하에서 공사를 시작했다가 6·25전쟁으로 중단되었고 그 후 휴전이 성립되어 한국 땅이 되자, 1958년에 한국 정부에서 완성하였다. 남북합작의 다리인 셈으로 정말 다리의 양쪽 형태가 다르게 생겼다. 2002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차량은 통행이 안되고 사람만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보호되고 있는 역사의 귀중한 다리가 되었다.

승일교 밑으로 내려가면 시원스레 흘러가는 한탄강물과 깨끗한 모래톱을 가까이 만날 수 있다. 이날도 남녀노소의 몇몇 사람들이 놀러와 텐트를 치고 낚시도 하고 아이들은 물가에 들어가 엄마와 함께 다슬기를 잡고 있었다. 나도 자전거 페달을 돌리느라 힘들었을 다리를 물가의 폭신한 모래톱에 담그기도 하고 까만 돌같은 다슬기도 구경하며 잘 쉬었는데, 흐르는 강물이 참 맑고 발에 닿는 느낌이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역시 강은 이렇게 모래톱에 앉아 물속에 손발을 담그기도 하고 작은 생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은 것인데, 강변에 잘닦인 아스팔트 자전거길과 공원이 있지만 정작 강가는 사라져버린 내가 사는 도시의 한강이 생각나 한탄스럽기도 했던 하루였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버스터미널에서 가을들녘을 지나 직탕폭포-고석정-승일교까지의 한탄강변을 달렸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버스터미널에서 가을들녘을 지나 직탕폭포-고석정-승일교까지의 한탄강변을 달렸다.
ⓒ 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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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9월 18일에 다녀왔습니다.
* 철원군 동송읍 버스터미널은 동서울버스터미널,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수도권 전철 도봉산역앞에서도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 고석정 부근에 자전거를 대여하는 가게가 많으니 이곳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한탄강변 여행을 해도 좋겠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한탄강, #동송읍, #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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