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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과 함께 보는 영화 '작은 연못' 보러 오세요"

 

자주 가는 울산의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그런 게시글이 떠 있었다. 언제 하는지 보니 9월 18일 토요일 오후 7시에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백수라 남는게 시간이라 가서 보기로 했다. '작은 연못'에 관한 내용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잘 알지 못하는 노근리 학살 사건을 다룬 내용이란다. 역사의 진실에 관심 많은 나는 그런 영화에 관심이 많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 처음 영화 상영 된다고 할 때 못갔다. 이래저래 먹고 살기 바빠서. 이번 기회에 그 좋은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장소가 어디였지? 저번주 본 내용이었는데 장소를 보아 놓지 않았다. 오늘 낮 다시 인터넷을 뒤져 장소를 알아 보았다. 영화 상영 장소는 남구 수암동 일동 미라주 아파트에 있는 스포츠 파크라는 곳에서 한다고 했다. 수암동이 어디지? 울산 살면서도 수암동은 처음 들어 보았다. 다시 인터넷을 뒤져 지도로 찾아보니 시내 공업탑 부근으로 나와 있었다.

 

울산 살면서도 내가 움직이는 반경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방어진쪽과 성남동, 삼산동, 공업탑, 울산대학교 그나마 자주 가본게 그정도였다. 수암동 가는 버스 노선을 몰라 시내 공업탑에 내려 물어물어 찾아 갔다. 스포츠 파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후 5시에 출발 했는데 그곳 길을 잘몰라 헤매다 보니 6시 30분 다되어 도착 했다. 이미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그곳은 사방 30미터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었다. 대략 눈여겨 보니 아이와 어른이 모두 300여명은 되어 보였다. 무슨 잔치를 하는지 한쪽에서는 먹을 간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고 무대에서는 섹스폰 연주회를 하고 있었다.

 

"추석 명절도 다 되어 오고 해서 주민 단합 행사를 하는 거예요.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 이번에 처음 이런 행사를 마련 했어요. 영화는 예정 대로 7시에 할 거예요. 5시부터 7시까지는 음악으로 문화 행사를 하구요"

 

간식을 나누어 주는 여성 분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대답 했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이런 행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파트 부녀회와 남구 주민회, 울산 미디어 연대가 함께 진행 하는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참,멋진 행사 같았습니다. 이것도 다 그 풀뿌리 민주주의가 시행된 후 바뀌고 있는 마을 문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 7시가 되자 진짜로 흥겨운 음악이 중단되고 작은 영상 시설로 영화를 상영 하였습니다. 철망에 흰 천을 설치해 놓고 화면을 크게하는 장치를 틀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연못'이란느 영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1950년 7월, 미군에 의해 학살된 노근리 주민들.

 

영화 장면은 어느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냥 일반적으로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학교 문 출입구 위에는 '북진통일'이라는 큰 글씨가 보였습니다. 학교 건물엔 양 옆엔 '반공,멸공'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저도 어려서 너무도 많이 보아 왔던 풍경이 보였습니다. 시골 학생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7월 26일 오전 미군 지프차가 마을을 돌면서 일본말로 방송을 했습니다.

 

"이곳은 곳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니 마을을 어서 떠나십시오. 남쪽으로 피난 가십시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일본말로 떠드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아는 청년을 보내서 무슨 말인지 마을 어른이 알아 보라고 합니다. 청년은 미군 지프로 가서 일본 말로 물어보고 그 대답을 들으니 지금 당장 마을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은 이유도 모른채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저는 처음에 노근리가 어디 붙었는지 몰랐습니다. 배우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니 충청도 어느 지역인거 같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 짐보따리를 들고서 피난 길을 나섭니다. 철 길을 걸어 가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두대 날으더니 피난 가는 그곳에 폭격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폭격을 맞은 그들은 모두 놀라 여기저기 피하기 시작합니다. 폭격이 그치자 이번엔 어디서 날아 드는지 총알이 빗발 칩니다. 거기서 많은 마을 주민들이 죽게 됩니다. 남은 마을 주민들은 철로를 따라 가다가 위에는 철 길이고 아랫 길은 쌍으로 굴다리가 있는 곳까지 옵니다. "누가 이렇게 폭격을 하는 거여? 빨갱이가 벌써 여기까지 쳐들어 온겨?" 라고 마을 순박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쌍굴다리까지 오면서 두어차례 미군들의 제지를 받습니다. 그곳에 빨갱이는 없었습니다. 오직 미군들만 있었습니다. 1950년 7월 26일 정오부터 7월29일 아침까지 미군들에 의해 무참히 대부분의 피난민이 학살 되었다고 합니다(네이버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자세히 나와 있었습니다)

 

영화는 계속 되었습니다.

 

"누가 총을 쏘는겨? 빨갱이가 아니면 누군겨? 미군은 우리를 도우러 왔는디 왜 우릴 죽여? 아닐거여. 빨갱일거여"

 

마을 주민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고 알고 있었습니다. 쌍굴다리 근처에 여기저기 방호를 파고 있던 미군은 무차별 기관총을 쏘아 댔습니다. 한곳도 아닌 세곳에서 그렇게 기관총을 쏘아 댔습니다. 미군이 처음 북한군과 대치하던 그곳 미군은 위에 보고 했고 위로부터 온 답변을 글로 보여 주었습니다.

 

'피난민이 가는 것을 막아라. 모두 사살 하라'

 

이틀이 지났습니다. 화면은 미군이 무전기 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저사람들은 모두 위험성이 없는 피난민입니다. 그래도 사살해야 합니까?"

 

위에서 사살 명령이 떨어 졌는지 또다시 기관총 소리가 밤낮으로 들렸고 쌍굴다리 안에 피해 있던 마을 주민은 하나 둘 죽어 갑니다. 화면은 3개월 후로 바뀌고 살아남은 마을 주민 몇몇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예전 생활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마지막에 자막으로 잠시 보여지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미국 당국은 절대로 그런 일 없다고 발 뺌 하다가 50년이 지나서야 미군이 노근리 양민을 학살 했었다는 것을 공식 인정 했다고 했습니다. 늦게 나마 이유도 모른채 죽어간 노근리 양민의 명예회복이 이루어 졌다고 하니 다행 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간만에 의미 있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미군이 해방후 왜 한국에 들어 왔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판문점에서 보초를 서며 떠나지 않는 미군들, 그들은 왜 지금까지도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 진실을 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한반도 평화통일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http://www.nogunri.org/ 노근리 양민, 미군 학살사건 볼수 있는 곳이더군요.


태그:#노근리, #미군 학살, #평화통일,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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