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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을 벌였던 한 노동자. 지금 그의 집에는 라면박스가 쌓여있습니다. 여전히 쌍용차 공장 안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온갖 상비물품을 자기 주변에 챙겨두는 버릇이 생긴겁니다. 싸움은 끝났지만, 그에겐 극한 투쟁이 남긴 상처가 너무도 깊습니다. 기륭, KTX 승무원에 학습지 노조 재능지부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1000일 남짓 또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투쟁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투쟁 그 후]를 통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누워계시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 말씀 드려 뭐 하겠어요. 제가 아직도 쌍용자동차가 새겨진 옷을 입고 '다녀오겠습니다' 하니까 어머니는 아직도 제가 출근하는 줄 아세요."

 

올해 56세, 박일씨의 말이다. 대학생 자녀를 둔 가장이자, 노모를 모시는 아들인 그는 해고자다.

 

"가장으로서의 위신은 다 깎였어요. 그냥 회사 다니면 되는데 남아서 끝까지 싸우다 해고 되었으니까요. 아내와 이 일을 두고 다퉈도 고 2인 큰 딸은 집사람 편만 들면서 나를 소외 시키는 게 있더라고요."

 

최찬희씨의 말이다. 박일씨와 최찬희씨는 모두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 서울정비지회 노조원이다. 또한 이들은 지난 해 쌍용차에 불어 닥친 해고의 칼바람에도 살아남은 '산 자'였기도 하다. 당시 사측은 2646명을 자르는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어려워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파업을 결의했다. '산 자'들의 일부도 싸움의 길을 걸었다. 최찬희씨는 "경영자의 잘못을 직원에게 떠넘기며 살인과도 같은 해고를 단행한 사측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77일 동안 버텼지만 경찰의 강제진압에 밀려 사측과 타협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2009년 8월 6일의 일이다. 사측은 그 해 12월 '산 자' 임에도 '죽은 자'와 함께 파업 한 이들을 징계 해고했다. 이 때 최찬희씨와 박일씨도 잘렸다. '산 자'에게 해고는 일과 직장이라는 삶의 두 축이 모두 흔들리는 일이었다.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한 그들을 가족들은 쉬이 받아주지 않았다.

 

"'취업 안 할래, 생계 어떻게 할래'물어볼 추석...힘들 것 같아요"

 

 

정리해고자인 문기주 전 정비지회장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문 전 지회장은 지난 해 추석보다 올 추석이 유난히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작년에는 '산 자'들은 아직 해고를 당하지 않은 상태였고, 금전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었죠. 그러나 이제 모두 해고된 입장에서 맞이하는 추석은 쉽지 않네요. 모든 집안사람들이 모여서 '언제 복직하냐, 취업도 안 할래, 생계 어떻게 할래' 물어올 걸 생각하니 더 힘들어요. 퇴직금 받은 것도 거의 다 써가고. 작년에 비해선 올해가 더 힘들 것 같아요."

 

줄어가는 통장 잔고에 늘어나는 것은 한숨뿐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투쟁에 대한 의지마저 갉아먹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어려움도 이들을 괴롭힌다. 77일간의 옥쇄파업, 이후 이어진 경찰의 강제진압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2009년 8월 5일 새벽, 경찰 특공대는 토끼몰이를 하듯 쌍용차 노조원들을 몰았다. 경찰은 고무총탄을 난사했고, 물대포를 쏘아댔으며, 방패와 곤봉을 휘둘렀다. 열 명이 쓰러진 노동자 한 명을 짓밟기도 했다.

 

김정우 정비지회장은 "그 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직도 힘들다"며 "이런 인터뷰를 한 날에는 다음날 모두 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문 전 지회장은 "조합원들 중 공황장애를 겪는 이들이 태반이고, 사건 이후 피해의식을 갖게 되니 자신감이 떨어져 다들 말수가 줄었다"며 "나부터도 그 날 이후 깊이 잠들어 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최고의 업적 운운하는 조현오에 살인충동 느껴

 

엎친 데 덮친 격,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정형근)은 경찰 진압 때문에 척추 골절 등 큰 부상을 입은 해고자 4명에게 지급된 건강보험급여 3000만원을 환수한다는 통보를 내렸다. 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 제 48조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기인할 때는 급여를 제한한다'는 조항을 적용해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단 측 관계자는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행위를 했을 때엔 급여 지급이 안 된다"며 "경찰이 과잉진압한 상황이 아니고 불법집회를 하던 과정에서 다쳤기에 환수조치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국가는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받은 심적인 피해, 육체적인 피해에 대한 구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 모든 몫은 고스란히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전가되었다. 이런 그들을 향해,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해 쌍용차 사태를 해결한 데 대해서는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문 전 지회장은 살인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진짜 총이라도 있었으면 죽이고 싶었어요. 정말.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해서 중상·경상 입은 이들이 400명 가까이 되고, 9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인데 어떻게 그것을 자랑스럽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사람이 경찰총장이 되는 이 나라가 정말 비참해요."

 

진전 없는 8.6 대타협...타들어가는 마음

 

8.6 대타협 내용에 진전이 없는 것도 이들의 속을 타들어가게 한다.

 

"무급휴직자에 대해서는 1년 경과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며, 실질적 방안으로 주간 연속 2교대를 실시한다. 무급휴직자와 희망퇴직자에 대해서는 정부, 지역사회 및 협력업체 등과 긴밀한 협조를 통하여 취업알선, 직업훈련, 생계안정 등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대타협 내용의 골자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1년이 지났지만 이 중 하나도 지켜진 게 없다"고 주장한다. 쌍용차 측은 "무급휴직자들이 복귀 할 만큼 물량이 돌고 있지 않다"며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경영여건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문 전 지회장은 "쌍용차는 현재 파업 일어나기 전 생산량의 두 배, 세 배를 대고 있다"며 "특근을 해야 할 정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무급 휴직자를 복직시켜도 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는 것이다.

 

시와 연계한 직업 훈련, 취업 알선 등에 대해서 사측은 "원활히 잘 안 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쌍용차에서 근무하던 게 있어서 다른 곳에 취업을 해도 열악한 근무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나오시는 분들도 꽤 있다"며 노조원 측에 책임을 돌렸다. 사측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옛 영화를 잊지 못해 취업을 하지 못한다는 식의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 지회장은 "쌍용차 이름을 걸고서는 취업이 전혀 안 되는 게 현실"이라며 "무급휴직자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 일당제 형식으로 생계를 간신히 꾸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사측이 보는 노동자의 현실과 노동자가 보는 노동자의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선배님이 해 주시는 소고기 볶음이 최고" 어려움 속 버팀목은 동료 조합원

 

 

우려, 걱정, 고달픔, 힘겨움 속에서도 어느새 1년이 지나갔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바로 옆에 앉은 조합원들이었다. 옛 이야기만 꺼내도 표정이 어두워지는 조합원들의 얼굴이 활짝 풀렸을 때는 '반찬'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현재 서울쌍용차정비지회 조합원들은 구로역 부근에 작은 방을 얻어 함께 생활 하는 중. 식사도 그 집에서 해결한다. 가장 연장자인 박일씨가 주방을 맡았다.

 

조합원들은 "선배님이 해주는 음식 중 소고기 볶음이 최고"라며 "조미료도 안 쓰고 정말 맛있게, 입맛에 맞게 해 주신다"고 입을 모았다. 최찬희씨는 "파업 이후 '동지 해고자들과 더 끈끈해진 의리' 이것 하나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웃으며, 희망의 싹은 돋아나고 있었다.

 

'사람'에게서 얻은 힘은 다른 투쟁 사업장과의 연대투쟁을 하는 데 쏟았다. 또, '한성카센터'라는 노동공동체를 꾸리는 데 전념했다.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꾸린 그들만의 사업장이다. 16명의 서울정비지회 노동자들 중 4명은 카센터에, 나머지는 연대 투쟁에 '올인'하고 있다.

 

김 지회장은 "돈이 있어야 싸울 것 아니냐는 생각에 만든 것이 카센터"라며 "이문이 많이 남지 않아 최저 생계비 정도도 가져갈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상황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카센터에서 일하는 김영훈 조합원은 "사정을 알고 오신 손님들은 '용기 잃지 마세요' 이런 얘기도 많이 해주고 단골도 제법 생겼다"며 "수익적인 측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노위, 징계해고자들을 해고한 사측 부당하다고 인정

 

 

희망의 싹은 또 다른 곳에서도 솟아나고 있다. 지난 9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쌍용차 징계해고 노동자의 해고가 부당했다고 판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서울과 부산의 정비지회 소속 10명의 징계해고노동자 중 4명만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 4명 중 한 명이 최찬희씨다. 또 다시 살아났지만 그는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는 "다 이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해 참 슬펐다"며 "중노위 판결이 났다고 당장 내일 복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싸움이 길어질 것이 뻔해 집에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을 그는 또 혼자 삭혀야 했다. 하지만, 일부의 승리일지라도 기쁜 소식임은 분명할 터. 중노위 승소를 가장 행복했던 일 중 하나로 꼽은 문 전 지회장은 "사측의 해고 조처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받아서 기쁘다"고 반겼다.

 

방에 깨끗이 빨아 널어놓은 쌍용자동차 점퍼를 만지작거리던 문 전 지회장에게 소원을 물었다. 딱 하나였다.

 

"이 옷 입고 출근하는 게 소원이죠 뭐."

 

오로지 복직만을 꿈꾸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방 한 귀퉁이에 걸린 액자가 시선을 잡아끈다. 액자엔 "행복하십니까? 자본과 권력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은 모두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는 공간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조금 전 들었던 문 전 지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을 때 그가 한 답변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다른 이들의 파업에 대해 조금도 이해하려하지 않아 안타까워요.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그들 자신도 우리(쌍용)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함께 동조해주었으면 해요."

 


태그:#쌍용차,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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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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