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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지 반년이 지나고 있는 때 국방부는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리고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 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엇이 그리 버겁고 거북하고 자신이 없는지 기자회견을 서둘러 끝냈다고 보도들은 전한다.  

 

나는 지금 그 책자를 손에 들고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전체적인 내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 또 영상을 통해 기자회견장 모습을 충분히 살필 수 있었다. 다시금 내 뇌리에는 '불순한' 단어들이 맴돈다.

 치졸하다. 비겁하다. 추악하다. 그리고 불쌍하다. 등등….

 

 '합동조사결과보고서'는 천안함이 그날 그때 왜 거기에 갔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 해군과 미국 제7함대의 합동군사훈련 중이었으니, 분명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또 동행한 미국 함정도 있었을 터인데, 그것부터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생각해 본 것이 있다. 만약 그 훈련이 미국 해군과 함께 한 훈련이 아니고 한국 해군 단독으로 시행한 훈련이었다면, 천안함이 그날 그 시각에 거기에 갔을까? 거기에서 그런 사고가 빚어졌을까?

 

좌초이든 어뢰 피격이든 한국해군 단독훈련 중에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천안함 침몰 다음날 새벽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 급히 본국으로 날아가는 일이 생겼을까? 미군과 아무 관련 없는 사고라면, 설령 북한군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월터 샤프가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한미해군 합동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였지만, 미국 대사와 한미연합사령관의 전례가 없는 극진한 조문은 합동훈련 이상의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사건 초기 이명박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백령도를 방문했다. 그리고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배가 높은 파도에 걸리게 되면 그렇게 부러지는 수가 있다"는 '명품 발언'을 남겼다.

 

 "북한군의 공격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를 하고 있다"는 발언도 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그런데 사건 초기에는 왜 북한군의 공격임을 단정할 수 없었을까? 북한군의 공격임을 단정하는 시간이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릴 수 있는 일일까? 북한군의 공격임이 명백하다면 즉시에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사실로 말미암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6․2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시기가 아니었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조사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 조사에는 '6․2 지방선거' 관련 사항도 알게 모르게 포함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일생일대의 모험을 선택하면서 '6․2 지방선거'의 압승을 자신하고 또 갈구했던 것 같다. 선거 압승은 위험부담이 큰 모험을 충분히 상쇄해주고 승화시켜주는 요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모험에 상응할 정도의 압승을 자신하고 또 너무도 갈구했기 때문에 선거 당일 오후 '출구조사발표' 때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국방부의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안에는 이른바 '과학'이라는 것이 꽉 차 있다. 북한군의 어뢰 공격임을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과학 논리들이 실로 얼기설기하다. 북한군의 어뢰 공격임을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것은 달리 말해 러시아 조사단 표현대로 한국 해군이 '밥통'임을 증명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는 뜻이기도 하다.

 

 합동조사결과보고서 안에 아무리 과학적 논거들이 얼기설기 꽉 차 있다 해도 그것들이 보편적 상식과 이치를 덮어버리지는 못한다. 무릇 과학이란 상식과 이치를 떠받치기 위해 있는 것인지 상식과 이치를 훼멸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고급 과학으로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 단순 명확한 상식과 이치만이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합동조사결과보고서 안의 과학적 논거들이 제아무리 풍성하더라도, 명확하고도 분명한 사실들의 이유를 밝혀주지 못한다. 

 

 '화약 냄새도 전혀 없었고, 파공도 하나 없었고, 파편 한 조각도 없었고, 한 줄 그을음도 없었고, 손상된 케이블(전선) 한 가닥도 없었고, 수병들 피복도 깨끗했고, 화약고도 멀쩡했고, 연료탱크도 온전했고, 형광등도 깨지지 않았고, 시신도 깨끗했고, 바다에 내동댕이쳐져서 물을 먹은 수병도 한 명 없었고, 죽은 물고기도 없었고, 꽃게 어장인 백령도 바다에 죽은 꽃게 한 마리도 떠오르지 않았고, 건져 올린 어뢰 추진체의 매직숫자도 깨끗했던' 이 풍성하고도 명백한 사실들을 한 가지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국민 세 사람 중 두 사람 꼴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도 나오고, '6․2 지방선거'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나는 우리 해군의 물샐 틈 없는 경계 능력과 막강한 전투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북한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한 것이 맞다면 한국 해군은 '밥통'이다"라고 한 러시아 조사단의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결코 우리 해군이 '밥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서 '밥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우리 해군의 초계 능력이 수준 이하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우리 해군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이다. 고도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닌 대한민국의 해군이다. 대규모 한미 연합 훈련 중에 북한의 어뢰 한 방에 초계함이 절단 침몰되어 졸지에 46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우리 해군이 '빈약성'을 지니고 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막강 해군은 졸지에 빈약하고 엉성한 군대로 전락해 버렸고, 명예와 자존심을 송두리째 도둑질 당했다. 진짜로 명예와 자존심을 잃은 게 아니다. 치졸한 정략의 그물에 덮씌워져서 억지로 명예와 자존심을 강탈당해야 했다.

 

 나는 오늘 다시 또 진정한 군인정신을 생각한다. 우리 해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생각한다. 북한 어뢰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한 방에 멍청하게 당할 군대가 아니다. 우리 해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치졸한 정략의 그물을 우리 해군에서 벗겨내야 한다. 모든 국민이 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해군 스스로도 노력을 해야 한다. 

 

 시간의 덧없음을 느끼게 하는 9월 가을의 길목에서….

 


태그:#천안함, #합동조사결과보고서, #대한민국 해군, #한미 연합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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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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