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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초록이 싱그럽던 4월의 비내늪
샛초록이 싱그럽던 4월의 비내늪 ⓒ 김성만

새싹이 파릇 파릇하게 솟아나던 지난 이른 봄에 처음으로 그곳을 보았다. 좁은 도로에서 내려다 봤는데 넓은 자갈밭과 버드나무들이 어우러져 기막힌 풍경을 뽐내고 있었다. 비내늪이라고 했다. 우리 차가 놓여져 있던 도로는 둑이었는데 그 늪은 둑 안에 있어서 강의 유역임을 알 수 있었다.

넓은데다 자갈로 되어있어 차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터라 그 속엔 바퀴에 눌린 자국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우리 일행도 차를 타고 그곳에 내려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울리는 새소리들, 파릇파릇 하게 올라오는 새싹들에게 미안해 차를 세워두고 걸어들어갔다.

그 당시 4대강 사업 6공구로 불리던 남한강의 여주구간은 온갖 중장비들이 들이닥쳐 온통 파헤치고 있던 터라 온전한 모습의 비내늪은 답사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싹도 올라오기 전에 잘리고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던 버드나무들과는 달리 초록의 새순이 아름다운 늪을 만들어주었다.

여기저기서 '찍~ 찍~'거리며 새끼칠 준비를 하던 물새들도 크게 한 몫 했다. 발걸음에 서로 부딪혀 '달그락' 소리를 내던 자갈밭 소리는 정겨웠다. 포클레인의 거대한 삽에 실려 덤프트럭에 내부딪히며 나던 소리는 자갈의 비명이었던 것이다.

더 많은 국민들의 마음 움직여야 4대강이 산다

 자갈밭에서 발견한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 흰목물떼새
자갈밭에서 발견한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 흰목물떼새 ⓒ 김성만

 자연습지는 특별하고도 풍부한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으며, 인간에게도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자연습지는 특별하고도 풍부한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으며, 인간에게도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 김성만

당시 우리들은(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에 파견갔던 환경단체 활동가들) 강이 살아있다는 것을 밝히는데 온 힘을 썼다. 여주에 머무르며 남한강 구석구석을 살펴  강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비내늪도 같은 목적으로 갔던 것이다.

예상대로 그곳은 야생의 천국이었다. 검은 목띠를 두른 '흰목물떼새'와 '꼬마물떼새', 검은 등을 가진 '검은등할미새', 하늘을 휘~ 휘~ 돌던 '황조롱이', 풀 숲에 숨어있다가 인기척만 느꼈다하면 폴짝 폴짝 뛰어 도망가던 '고라니', 여기저기 똥은 많은데 모습은 볼 수 없었던 '너구리'….

살아있었다. 별로 놀랄 것도 없었다. 그곳은 10년 전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수많은 생명들이 인간에게 쫓겨나 삶 터를 잃고 사라져갔지만 아직까지 비내늪은 그렇게 살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MB정부는 TV광고를 통해 죽어있는 강을 살려야 한다고 연신 거짓말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허탈했다. 주먹을 쥐었다 놓았다. 강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 시민들의 마음, 더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야만 했다. 그것만이 4대강 사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여주 남한강에 있는 바위늪구비, 그곳은 시민자연유산 1호로 지정됐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연이 아름다울 때는 그 속에 온갖 생명이 더불어 살 때다. 지금은 다 잘리고 사라져버렸다. 생명들도 함께 사라졌다. 단양쑥부쟁이가 정부 몰래 자라고 있던 이곳, 내륙지역에서 그 귀하다던 표범장지뱀까지 이곳에선 대량출몰했었다.

그래도 난도질은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아름답던' 곳이 그곳을 '아름답게'하던 생명들과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다행히 비내늪은 다른 곳과는 달리 다소 외진 탓에 공정이 느린탓에 아직까지 '일부' 남아있는 상태다. 결국 이곳도 몽땅 난도질 당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생명들을 살아가게 해준 비옥한 땅

 자연의 흐름을 절단하는 첫단계 수목제거!
자연의 흐름을 절단하는 첫단계 수목제거! ⓒ 김성만

 나무 제거 후엔 불도저로 밀었다.
나무 제거 후엔 불도저로 밀었다. ⓒ 김성만

사람 살자고 하는 4대강 사업이다. 하지만 정작 4대강 사업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비내늪 같은 습지를 다 파괴하고서 '살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왜냐하면 이런 습지가 우리를 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습지는 물의 흐름이 느린 지역에서 많이 생겨난다. 그런 곳에 모래가 쌓이게 되고 그 모래위에 풀들이 뿌리내리며 쌓이는 속도는 빨라진다. 점차 수풀로 덮이게 되는데 강의 범람으로 육지와 같은 숲이 되지는 않는다. 식물의 종 수도 육지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하지만 특별한 생태환경 덕분에 수많은 곤충들, 그들을 먹고 사는 새들, 육상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이들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며 습지생태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 비옥한 땅은 인간을 비롯해 셀 수 없이 수많은 생명들을 살아가게 해주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질소, 인 등 물을 오염시키는 주요원인들을 흡수하여 물을 정화한다. 여울이 산소 공급기라면 습지는 대형 필터인 셈이다. 수족관 속에 산소공급기가 없고, 오염물질들을 걸러주는 정화장치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4대강 사업은 이 산소공급기와 대형필터를 통째로 들어내고 모양만 습지인, 마치 모양만 흉내낸 아이들의 장난감 같은 것들을 놔두겠다는 것이다.

또, 빽빽한 식물들이 머금고 있는 수분은 가뭄이나 홍수를 조절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단순히 '빌붙어 물흐름을 방해해 물을 넘치게 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습지를 연구해서 정화시스템을 집 앞으로 가지고 오거나, 대규모 습지를 복원해서 홍수를 예방하기도 하는 것이다.

생태계 붕괴의 피해,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다

 불도저가 지나간 자리는 마치 비행장같다.
불도저가 지나간 자리는 마치 비행장같다. ⓒ 김성만

 사람에게는 물이 고인 늪이 더러워보이지만 수많은 생명들이 얽혀있는 '생명의 보고'다.
사람에게는 물이 고인 늪이 더러워보이지만 수많은 생명들이 얽혀있는 '생명의 보고'다. ⓒ 김성만

 불도저가 밀고간 자리는 결국 땅을 파냈다. 습지의 원천인 물을 밖으로 끄집어 냈다.
불도저가 밀고간 자리는 결국 땅을 파냈다. 습지의 원천인 물을 밖으로 끄집어 냈다. ⓒ 김성만

이곳을 지키기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사귀자'
녹색연합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되었지만 비내늪 같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곳을 지키기위해 '사.귀.자.'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사귀자'는 '4대강 귀하다 지키자' 라는 뜻으로 시민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이곳이 왜 '귀'한지 느끼고 널리 널리 알려 남아있는 곳이 더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남한강 비내늪을 비롯해 낙동강의 제1지류인 내성천, 금강의 허파 '천내습지', 유일하게 하천 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담양습지' 등을 찾아가 천혜의 습지환경을 살피고 시민들이 만든 '보호휀스'를 두르는 등의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 및 참가신청 :
http://cafe.naver.com/sagiza

이른 여름에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땐 둑 아래쪽에 마치 비행장을 닦듯 넓고 길게 밀어놨었다. 법적으로 잘못된 점을 찾아내고 고발하여도, 윤리적으로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세상에 알려도, 파괴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난 방문 때 찾아 고발했던 단양쑥부쟁이 군락지는, 정확히 그 부분에만 출입통제 구역을 표시해두고서는 계속 공사를 진행했던 것이다. 흰목 물떼새나 수달 등 멸종위기종이 산다는 증거를 들이밀고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외쳤던 것은 일부 감성적인 사람들의 발악으로 치부했나보다.

지난 주(9월 7일) 다시 비내늪에 다녀왔다. 지난번 비행장 같이 밀었던 그곳을 굴착 끝에 고랑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 켠의 물이 고여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못은 물이 다 빠지고 짙은 흑색의 뻘만 드러났다. 죽기 전까지 숨을 들이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조개가 애처로웠다.

자연스레 형성되었던 이 땅은 사무실 책상 위에서 그려진 설계도 대로 반듯 반듯하게 잘려나갈 것이다. 그 위엔 누가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체육시설과 공원이 들어서서 메마른 풀들이 채워지지 않을까. 강물과 단절된 습지는 더이상 습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곳의 특별했던 생태계도 무너질게 뻔하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덧붙이는 글 | 강성만 기자는 녹색연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충북 충주 앙성면#비내늪#습지#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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