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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겉그림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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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지사들의 삶이 안도현의 시 '연탄재'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모든 것 불살랐던 이들. 해방 후에도 친일 전력이 독립운동 전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연탄재처럼 나뒹굴며 모진 삶을 이어가야 했던 이들, 그 후손들이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말처럼 들린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희들은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

의열단.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하기 위해 김원봉이 만주 길림에서 조직한 항일단체였다. 조선총독을 비롯한 식민통치의 주구들을 살해하고, 조선총독부 건물 등 식민통치 기관을 파괴하기 위해 활동했다. 1920년대 의열단의 투쟁은 뜨겁게 타올랐다. 부산 경찰서 폭탄 투척, 밀양 경찰서 폭탄 투척, 종로 경찰서 폭탄 투척, 도쿄 이중교 폭탄 투척, 동양척식주식회사 식산은행 폭탄 투척 ….

의열단 단원들의 치열한 삶과 투쟁이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이란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1923년 1월 12일 종로 경찰서에 폭탄이 날아들어 폭발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일본 경찰의 추격에 맞서 양손에 권총을 들고 치열한 총격전 끝에 숨을 거둔 김상옥의 삶과 투쟁이 감동적으로 소개된다.

더불어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의 삶과 투쟁, 김상옥과 신채호의 만남, 경찰 내부에 침입해서 활동했던 황옥, 몽골에서 슈바이처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이태준, 푸른 눈의 의열단원 마자르, 만주에서 서울로 폭탄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이어진다.

독립지사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의열단 단원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내걸었다. 그들 뿐 아니라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가족들의 삶 또한 처절했다. 그런 속에서도 의열단 단원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죽은 아내의 장례  비용으로 권총을 사서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내 아내를 죽인 건 병마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일제 경찰들이라며, 아내를 죽인 원수를 갚겠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꽃다운 청춘을 바쳐 투쟁했던 의열단 단원들은 해방 후 어떻게 되었을까. 김원봉의 경우를 살펴보자.

어처구니없게도 당시 그를 체포한 자는 악명 높았던 친일고등경찰 출신 노덕술이었다. 노덕술은 종로경찰서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붙잡아 모진 고문을 가한 자였다. 김원봉이 의열단을 창설하면서 만든 칠가살(七可殺) 명부에도 그 이름이 올라 있을 정도였다. 그런 노덕술이 항일운동의 신화적 인물인 김원봉을 붙잡아 취조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독립투사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책 속에서)

김원봉만 수모를 당한 게 아니었다. '경성폭탄 반입사건'으로 구속되어 7년 남짓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김시현은 김구 암살 사건을 겪으면서 이승만의 짓이라 규정하고 이승만 응징을 선언하고 이승만 암살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4.19 혁명으로 풀려났지만 이승만 암살 미수사건으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자신의 모든 걸 불살랐던 의열단 단원들이 연탄재처럼 푸대접과 홀대받았던 우리 현대사의 아픈 자화상이다. 지금도 그분들의 넋은 우리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 같다. "독립지사 함부로 차지마라. 너희들은 한 번이라도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냐?" 라고.

덧붙이는 글 | 김동진/서해문집/2010.8/11900원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김동진 지음, 서해문집(2010)


태그:#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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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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