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마장재에서 우두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에 나오는 마지막 시구인 '별유천지비인간'이 떠올랐다.
 마장재에서 우두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에 나오는 마지막 시구인 '별유천지비인간'이 떠올랐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지난 5일, 산의 형세가 소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그 이름이 붙여진 경남 거창군 우두산(牛頭山, 1046m)으로 경남사계절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산행을 나섰다. 오전 8시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고견사주차장(경남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오전 10시 50분께였다.

숲길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하지만 계곡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가 더위를 얼마간 식혀 주고 오르막길 또한 경사가 급하지 않았다. 화려한 레이스를 씌워 놓은 듯한 망태버섯을 볼 수 있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앙증맞은 버섯들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오전 11시 40분께 가슴이 탁 트이는 마장재에 올랐다. 벌써 억새꽃이 피어 있어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비계산이 나온다. 마장재에서 우두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아 산행 내내 마음 설레고 신이 났다. 이따금 가슴속까지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다. 후텁지근한 날에 산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상쾌함을 몰고 오는 바람의 힘을 얼마든지 짐작하리라.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정말이지,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마지막 시구인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 떠오르는 곳이었다. 마치 신선이 사는 별유선경을 잠시 훔쳐보는 기분이라 할까, 우두산이 별유산((別有山)으로 불리기도 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나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빼어난 경치를 즐기며 산행의 재미를 한껏 누렸다. 그렇게 1시간 남짓 걸어갔을까, 어느새 우두산 정상에 이르렀다. 그런데 버젓한 정상 표지석 없이 간단한 표지목 하나 달랑 서 있는 쓸쓸한 광경에 적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언젠가 예쁜 표지석이 세워질 날을 그저 기대할 수밖에.

 
ⓒ 장안순

관련사진보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신선이 사는 별유선경을 잠시 훔쳐보는 기분이라 할까,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산행의 재미를 한껏 누렸다.
 신선이 사는 별유선경을 잠시 훔쳐보는 기분이라 할까,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산행의 재미를 한껏 누렸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소의 머리를 닮은 산으로는 경남 합천군과 경북 성주군에 걸쳐 있는 가야산 우두봉(1430m)도 있다. 지난해 11월에 그곳을 산행했는데,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지금도 잊히지 않는 산이다. 우두산 정상에서 의상봉까지 거리는 0.6km. 의상봉으로 가는 길에 일행과 함께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씻은 배추김치, 뽕잎, 풋고추 등으로 맛있는 점심을 했다. 산을 타는 여자 분 가운데에는 살림꾼이 많다. 그들이 준비해 오는 음식 맛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어 어쩌다 점심을 같이하면 행복하다.

오후 1시 50분께 의상봉 정상에 올랐다. 의상봉(1038m) 정상까지는 몇 개의 나무 계단이 지루할 만큼 기다랗게 이어져 있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는 나무 계단 모습은 가슴이 콩닥콩닥할 정도로 참 예쁘다. 의상봉은 신라 문무왕 때 화엄종의 개조(開祖)인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곳이라 해서 얻게 된 이름이다.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이곳에 올라서면 가야산, 덕유산 등이 아스라이 보인다.

의상봉 정상에서.
 의상봉 정상에서.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사진을 찍고 나무 계단을 내려가는데 여섯 살 꼬마가 아빠 손을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 꼬마를 보는 산객들마다 씩씩한 어린이라고 칭찬했다. 나는 저 나이 때 산을 오를 생각조차 못했는데 요즘 어린이들은 어떻게 보면 용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일행과 함께 갈림길에서 장군봉 쪽으로 가는 길로 내려가 고견사(古見寺)를 향해 걸었다. 거기서 800m 남짓 걸어 내려가면 신라 문무왕 7년(667)에 세웠다는 고견사에 이르게 된다. 원효 스님이 이곳에 와 보니 전생에도 왔던 적이 있는 곳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절집이다.

고견사에는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불(경남유형문화재 제263호)과 조선 인조 8년(1630)에 제작된 동종(경남문화재자료 제170호)이 있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마멸되어 있는  고견사 석불은 눈, 코, 입 등의 형태는 알아 보기 어려웠으나 얼굴선의 윤곽이 뚜렷이 남아 있고 머리 부분도 상투 모양의 육계가 뚜렷했다.

수령이 천 년인 고견사 은행나무 그늘에서.
 수령이 천 년인 고견사 은행나무 그늘에서.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수령이 천 년 되는 고견사 은행나무는 한눈에 봐도 멋이 있었다. 높이가 28m로 나무 전체를 사진에 담기가 쉽지 않을 만큼 키가 컸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 절집에 머물면서 심었다 한다. 나는 고견사에서 나와 산악회 버스가 있는 주차장 쪽으로 한참 걸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우렁찬 폭포 소리. 그 소리에 끌려 계곡으로 내려가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견암폭포를 바라보면서 산행의 피로를 씻었다.

견암폭포
 견암폭포
ⓒ 홍기호

관련사진보기


마산으로 오는 길은 멀기만 했다. 벌초하고 돌아오는 차량으로 인해 산악회 버스가 자주 거북이 걸음을 했다.  나는 그만 멀미가 나서 어지러웠다. 그러나 마음은 가벼웠다. 게다가
벌써 그리움이 되어 우두산이 내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대전) 대진고속도로(진주 방향)→ 함양 분기점→ 88고속도로(대구 방향)→ 가조 I.C→ 오른쪽 방향 1km→ 면소재지 삼거리서 우회전→ 200m 전방서 좌회전



태그:#거창우두산, #고견사은행나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