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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아빠를 주신한 채 세상에 나온 우리 아가. 기뻤지만 고생의 시작이었습니다.
▲ 아이의 탄생 눈을 뜨고 아빠를 주신한 채 세상에 나온 우리 아가. 기뻤지만 고생의 시작이었습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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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의 시작

처음 아내의 임신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자 선배 유부남들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말을 했다.

"이제 좋은 시절 끝났구나!"

"그래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니까 임신한 기간 동안 하고 싶은 거 다 해. 얘가 나오면 끝이야."

처음에는 몰랐었다. 그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각기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는지를. 그냥 으레 하는 이야기이겠거니.

특히 차라리 임신 때가 낫다는 남들의 발언은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뱃속에 잉태하고 있을 때, 절대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아내의 입덧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어느 누구보다도 다이내믹한 일들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출산을 3주 앞두고 신종플루가 의심되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타미플루를 복용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와, 출산 2주 전에는 대상포진에 걸려 독한 피부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아내를 지켜보아야 했던 나. 그 때의 심정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임신 때가 편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다.

아이를 받고 나서 지쳐 잠이 들은 남편
▲ 조산원에서의 첫날 밤 아이를 받고 나서 지쳐 잠이 들은 남편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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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 아내의 유별난 선택에 난 내 주위에서 최초로 병원이 아닌 조산원에서 아이를 받은 첫 번째 남편이 되어야만 했다. 결코 어리지 않은 아내가 산부인과가 아닌 조산원에서 몸을 푼다고 했을 때의 그 불안감이란. 다행히 아내는 순산을 했지만 어쨌든 조산원에서 난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고, 아이를 직접 받아보는 흔치 않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나오면 이 모든 과정보다 힘들다고? 도대체 육아가 얼마나 힘들기에? 설마하니 임신 때만큼 힘든 것인가?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임신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무너져버린 산후조리원의 꿈

09년 11월 말, 산부인과 대신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아내. 그녀의 연이은 또 하나의 남다른 선택은 산후 조리를 위한 공간이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은 뒤, 거의 절반의 산모가 가는 산후조리원을 아내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 우리 부부는 여러 군데의 산후조리원을 보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갓 태어난 신생아와 산모를 분리해 놓는 산후조리원의 구조를 못마땅해 했다. 엄마의 심장 소리와 손길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산모의 편의를 위해 24시간 내내 아이를 다른 신생아들과 함께 형광등 밑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쭉~ 길게 자주면 좋으련만
▲ 곤히 자는 아가 쭉~ 길게 자주면 좋으련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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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내는 산후조리원이 아닌 그냥 우리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장모님이 오시면 좋으련만 워낙 먼 산청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터라 올라올 수 없으셨고, 대신 아내는 산후관리사를 인터넷으로 신청했다. 2주에 200만원에서부터 1200만원까지 하는 산후조리원 대신 3주에 130만 원정도 하는 산후관리사를 불러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산후관리를 받고 그 이후 시간에는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산후관리를 받겠다는 아내.

물론 고마웠다. 돈도 돈이지만 아내가 아이를 가장 먼저 생각하여 자신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산후조리원을 포기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말로는 산후조리원에서 너무 편하게 있다가 집에 오면 힘들 것이라고 하지만, 어디 아이를 낳자마자 남들 가는 산후조리원을 두고 집에 오는 것이 쉽겠는가.

그러나 남편의 입장으로서 아내의 선택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임신초기 때부터 가지고 있던,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시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선배 유부남들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던, 아내 눈치 보지 않고 밤새 술 마시고, 외박도 할 수 있다는 그 꿈만 같다는 시간. 바로 그 시간이 날아간 것이다.

결국 자유로운 밤공기를 맡는 대신 아내의 곁에서 산후조리를 하게 된 나. 드디어 시련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인가.

수면부족

10개월을 기다린 만남
▲ 만남 10개월을 기다린 만남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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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에서 아이를 낳은 다음 날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동생은 미역국을 한 솥 끓여서 집으로 찾아오셨으며, 아버지는 퇴근하자마자 당신의 첫 손주와의 만남을 위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오셨다. 어느새 집안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우리 아기. 녀석은 피곤한지 내내 잠을 잤고 간간히 눈을 떠서 식구들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하곤 했다. 아들로서, 며느리로서, 뭔가 할 일을 해냈다는 그 뿌듯함이란.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밤이 되자 전혀 상상치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기가 1시간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계속 울면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내. 그것은 당장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내게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에게 그 모든 걸 맡기고 그냥 자자니 미안하고, 그렇다고 출근해야 하는 내가 계속 일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난 아이와 아내를 내버려둔 채 작은 방에서 잠을 청했다. 하루 이틀 비몽사몽으로 선잠을 자다보니 체력적으로 버틸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게다가 아이를 낳자마자 월 마감이 겹치고 아이의 탄생을 축하한다며 직장 동료들이 벌린 축하 회식자리가 이어지니 강철 몸인들 어찌 견딜 수가 있겠는가.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드는 남편
▲ 수면부족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드는 남편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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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틈만 나면 잠들어버리는 무정한 남편
▲ 수면부족 역시 틈만 나면 잠들어버리는 무정한 남편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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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잠
▲ 부녀의 단잠 쏟아지는 잠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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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홀로 2~3일 잤던가. 어느 날 퇴근한 내게 아내가 한 마디 한다. 그래도 같이 자자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따로 자다 보면 나중에 같이 자기가 더욱 힘들어 질 수가 있다나. 게다가 지금 아이가 저렇게 자주 깨는 건 아내가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고 천기저귀를 채우기 때문인데, 아이를 위해서는 그 역시 인내해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다시 합방하여 세 식구 함께 잠을 청할 수밖에. 다만 아이가 울어도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출근을 핑계 삼아 그냥 아이의 울음소리를 무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출근은 하고 돈은 벌어야 되지 않겠는가. 대신 주말에, 산후관리사가 없는 주말에 아이를 좀 더 봐주고 천기저귀를 빠는 등, 아내의 가사 일을 더 열심히 도울 뿐.

주말, 아내를 위해 호박전을 부치는 남편
▲ 산후조리 주말, 아내를 위해 호박전을 부치는 남편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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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이지만 신기한 건 그렇게 무시하기를 반복하다보니 2달 정도가 지나선 진짜로 잠결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나의 신경이 무뎌졌거나, 아니면 내가 깨기 전 아내가 먼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일 테지. 어쨌든 현재 난 아이가 계속 아주 크게 울지 않는 이상, 웬만해선 밤에 일어나지 않고 덕분에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는 중이다.)

계속되는 수면부족과 과중한 업무의 압박. 그래도 아내는 주간에 산후관리사가 아이를 보는 중에 쉴 수 있었건만 나는 출근하면 회사 업무에, 퇴근하면 산후조리에 시달려왔던 터,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출산 2주 후 주말에 열이 39도를 훌쩍 넘긴 것이다.


태그:#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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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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