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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제주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동쪽 끝 우도를 샅샅이 훑어보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태평양이 낳고, 웅장한 한라산이 키운 제주의 구름은 육지의 구름과는 달리 둥글둥글 토실토실하게 잘 자랐다. 공항의 태양은 따가웠는데, 제주의 동쪽으로 가면 갈수록 성글던 뭉게구름이 뭉치고 합쳐지면서 햇빛을 가리고, 색도 노승의 장삼처럼 희끄무레하게 변하더니 끝내는 비를 쏟기 시작했다.

 

"우도 가시는 분 내리세요."

 

휑한 들판 한가운데 나를 내려놓고 떠나는 버스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우도에 가야 했고, 버스는 또 버스 나름대로 가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쏟아지는 비에 고개를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레까지 우도에 못 가. 주의보 땜에."

 

해물뚝배기를 비우고 계산하는데, 뜬금없는 할머니의 말이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다. 내가 멍하니 쳐다보자. "성산일출봉에나 가보게. 우도가 다 보여." "어떻게 가야 하나요?" "올레길로 가면 금방이야."

 

할머니의 손가락 끝에 올레길 입구가 있었다. 어느새 비는 그쳤다. 하지만, 언제 또 심술부릴지 모를 하늘이었다. 덩치는 한라산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크면서, 변덕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제주의 구름이었다. 아마 넓은 태평양과 웅장한 한라산의 품속에서 거칠 것 없이 곱게 자라서 제주의 구름은 그리 응석을 부리나 보다. 올레길을 조금 오르자 왜 식당 할머니가 나의 마음을 읽다시피 말을 했는지 알았다. 하얀 거북이 같은 성산포여객터미널 입구에 있던 식당이었다. 빗속을 피해 뛰어왔던 길은 외길이었고, 그 길의 끝은 여객터미널이었다.

 

성산포 바위에는 독기만 그득하다. 오천 년 동안 바다와 싸우면서 형세가 날카롭게 깎이고 파였다. 노시인(성산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생진님)이 성산포의 해안 절경을 보고도 바다만 그리워하고, 바다만 보듬고, 바다만 이야기한 이유를 여기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노시인은 마음이 여렸음이 틀림없다. 광활한 바다만 바라보았을 뿐 독기가 가득한 성산포의 바위를 마음속에 품지 못했다. 성산일출봉조차도 그는 묘사하지 않았다. 성산포는 한마디로 인간이 범할 수 없는 구역이다. 포세이돈(바다의 신)과 가이아(땅의 신)가 치열하게 싸우는 곳이다. 이곳에서 속물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전선(戰線)을 따라 걷는 것뿐이다. 바람과 파도와 바위에 숨어 오목한 곳에 달라붙은 인간의 집들을 따라 난 길을.

 

 

그곳을 흔히 올레길이라고 했다. 거대한 성산포 바다와 바위 몰래 만들어 놓은 인간의 길.

 

올레길은 낯익고 낯설기의 연속이었다. 눈을 내려 바닥을 보면 애기똥풀, 바랭이 강아지풀 익히 많이 보아왔던 야생화가 피어 있어 고향집 논둑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고개를 들면 돌담 말 연푸른 바다 그리고 성산일출봉의 괴이한 절벽이 눈이 찼다.

 

바랭이 아기똥풀 등 낯익음은 멀리 떠나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말 화산암 절벽 등 기이한 풍경은 나를 새로움으로 이끌었다. 낯설기만 있으면 꿈속의 꿈이요. 낯익기만 있으면 굳이 이 먼 곳까지 올 필요가 있겠는가. 낯익기와 낯설기의 조화. 이상과 현실의 조화.

 

고개 들면 성산일출봉의 기암괴석이 천국을 연상케 하고, 고개 숙이면 강아지풀이 바람에 흔들려 고향 길 같았다. 올레길을 벗어나 바다 쪽으로 한 걸음 걸으면 저승 같은 절벽이 떡 버티고, 고개 돌려 옆을 보면 바랭이 풀이 보이는 이승. 바로 성산포 올레길을 걷는 묘미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것은, 혼자 걷기에는 외롭다고 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성산포 올레길에 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만 쳐다보며 걷기에는 너무나 사랑스런 성산포 올레길 풍경이다. 성산포에서는 성산포만 사랑해야 한다. 주변 풍경에 눈길과 마음을 다 빼앗겨 한동안 아무 말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과 걷기에 제격인 길이다. 사물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와라. 그래야만 된다. 그래서 올레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혼자이거나 아니면 나이 지긋한 부부뿐이었다.

 

올레길 옆으로 펼쳐진 초원에 듬성듬성 서 있는 제주의 말은 진화 중이었다. 파도가 바로 옆에서 철썩철썩 절벽을 때리지만 말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파도 소리에 득도했다는 그 스님처럼. 황야를 달리던 말이 온종일 고개를 숙인 채 파도소리를 들으며 풀을 뜯고, 밤새 꿈속에서조차 되새김질한다. 제주의 말들은 먹는 데 24시간을 보낸다. 일심(一心)이며 일행(一行)이다. 몽중일여(夢中一如)의 경지에 올랐다. 제주의 말에게는 먹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행동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다. 팽팽한 화두참선이다. 불끈거리던 허벅지 근육을 잠재우고, 광야를 바라보던 검은 눈도 아래만 내려다본다. 달리던 바람이 갈퀴를 흔들어도. 바로 발밑에서 하얀 파도가 아우성쳐도 고개를 드는 일이 없었다. 제주의 말들은 해조음을 들으며 깨달음을 얻는 '능엄선(楞嚴禪)을 하고 있었다. 제주의 말들은 윤회의 틀에서 벗어나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을까. 설마 인간은 아니겠지.

 

 

성산포의 남풍은 파도를 키운다. 거칠 것 없이 태평양에서 파도를 밀고 온 바람이다. 몽골의 평원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넓은 대양에서, 몽골의 양떼보다 더 많은 파도를 밀고 오는 바람이다. 연푸른 출렁이는 파도가 성산포 절벽에 하얗게 부서진다. 화들짝 놀라 부서진다. 멈추려 하지만 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어쩔 수 없이 밀려 절벽에 부딪힌다. 산산이 부서진다. 부서진 파편이 다시 망망대해로 밀려간다.

 

파도는 망망대해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오면서, 순탄했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성산포 절벽을 보고 저리 화들짝 놀라 하얗게 아우성치는 것이다. 성산포가 있다는 것을 바람은 알려주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아니 바람도 몰랐을까.

 

성산포 절벽에 산화한 파도가 많을까. 아니면 성산포 해안의 모래알이 더 많을까. 때리고 부서지고, 갈라지고 깎이고, 성산포 절벽은 아직도 전쟁이다.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여기는 것은 인간의 삶이 짧기 때문이다. 파도는 분명히 밀려왔다가 바위에 붙은 먼지 하나라도 바다 속으로 싣고 간다. 그렇게 하여 성산의 절벽을, 제주의 해안을, 한반도의 형태를, 지구의 여섯 개의 대륙의 형태를 만들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가 모래 한 알,  한 알, 한 알 날라서.

 

"너는 태어나서 무엇을 남겼느냐?"

 

고개를 숙인 채 풀을 뜯던 말이, 내가 다가가자 검은 눈알을 치켜뜨고 나를 봤다. 나의 마음을 읽듯이. 말은 그 큰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만났던, 더듬더듬 거리며 나에게 이름을 묻던, 벽과 이야기한 지 3년째 된다는 그 스님의 눈처럼. 투명한 맑은 눈으로 말이 더듬더듬 거리며 나에게 간절히 묻는 듯하다. 물론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태그:#성산포, #일출봉, #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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