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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분만하려면 스트레칭을 잘해줘야 해요, 최대한 쭉~ 갑자기 몸무게가 늘고 배가 나오니까 발목에 무리가 많이 가게 돼 있어요. 발목도 돌려주고~ 왼쪽, 다시 오른쪽."

2일 첫 수업을 시작한 나래중·고등학교의 산전체조 수업 모습이다. 조금 특별한 이 수업 바로 다음엔 일반사회수업도 이어졌다. 국어·영어 등의 일반교과와 산모를 위한 예비부모교육 등의 대안교과 수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나래대안학교는 지난 7월 전국 최초로 생긴 미혼모를 위한 대안교육위탁기관이다. 현재 입학생은 중학생 한 명.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내년 초에는 7~8명이 추가로 입학할 예정이다.

나래대안학교 생활관인 애란원에서 지내고 있는 한 미혼모가 아이를 안고 있다.
 나래대안학교 생활관인 애란원에서 지내고 있는 한 미혼모가 아이를 안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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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실 나래대안학교 교무는 "임신 중인 학생들이 학업 공백 없이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게끔 마련된 학교"라며 "이곳에서 수업을 이수해도 본래 다니던 학교에서 출결과 성적이 그대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입학을 원하는 학생은 원래 다니던 학교장이 위탁을 요청한 기간 동안 나래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퇴학당했거나 자퇴한 학생은 복교 절차를 거친 후 위탁교육을 받게 된다.

강 교무는 "미혼모가 학업을 중단하게 되면 아이를 낳은 후에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고, 그러다 보면 빈곤층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대안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혼모를 위한 사회의 관심이 학교 설립으로까지 이어진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아직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혼모들이 존재한다. '평생교육법'이 적용되는 각종 전문계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은 '초중등교육법'에 의거해 설립된 나래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돼 있다. 경직된 법으로 인해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생기는 것이다.

"같은 여자인데도 아이 지우라고 말한 담임... 가장 큰 상처"

김성연(가명·18) 양의 상황이 그렇다. '평생교육법' 적용을 받는 미용전문고등학교를 다니다 임신 후 자퇴한 성연 양은 나래학교에 입학할 수 없는 상태다. "고등학교라도 졸업해야 떳떳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래학교에 꼭 다니고 싶었다"는 성연 양. 그녀는 나래학교 입학이 어그러지자 모교인 미용고등학교 선생님이 또 다시 원망스러워졌다.

"담임선생님이 '같이 힘써서 몰래 다녀보자'고 해주셨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임신 사실을 이야기하자마자 다른 아이들한테 피해가 되니까 정 학교 다니고 싶으면 아이를 지우라고 하시더라고요. 선생님도 아이가 있고 같은 여자니까 아실 텐데 참…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지금도 그 말이 가장 상처로 남아 있어요. 날 이해해줄 사람이 정말 필요했거든요."

임신 6개월인 김성연(가명·18) 양이 배를 감싸안아 보였다. 제법 배가 불룩한 모습이다.
 임신 6개월인 김성연(가명·18) 양이 배를 감싸안아 보였다. 제법 배가 불룩한 모습이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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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뱃속 아이 생각으로도 버거울 나이이지만 성연 양은 근심이 많다. 성연 양은 "미용 쪽 일을 계속 배우고, 검정고시도 응시하고 싶은데 학원 다닐 형편이 아니어서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4개월 후면 태어날 아이의 거취문제도 고민거리다.

"친척들이 '집안 사정도 안 좋은데 못사는 집에서 애가 태어나면 그 애는 무슨 죄냐, 좀 더 잘사는 집에서 좋은 밥 먹고 사는 게 낫다'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그래도 입양 보내기는 싫은데, 요즘은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어요."

'아이가 컸을 때 엄마 때문에 힘들어지지 않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은 더욱 답답해진다. 성연 양은 "초등학생일 때 엄마가 일을 해 학교에 못 와서, '나는 꼭 우리 아이 학교 행사 때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내가 갔을 때 아이가 날 부끄러워하진 않을까, 나 때문에 손가락질 받진 않을까 걱정돼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미혼모 청소년' 용납 못하는 사회

이처럼 대다수의 미혼모들은 많은 고민과 근심을 안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미혼부모의 사회통합방안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미혼모들은 임신 후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마음의 혼란(32.7%)을 꼽았다.

청소년 미혼모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들을 위축시키고, 갈피를 못 잡게 하는 것이다. 강 교무는 "청소년기의 특징 자체가 위험행동을 하는 단계 아니겠냐"며 "그 위험행동이 자신에게 정말로 위해를 가하느냐는 결국 사회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미혼모와 아이가 함께 머무는 애란원 모습. 아이 이불이 곱게 깔려 있다.
 미혼모와 아이가 함께 머무는 애란원 모습. 아이 이불이 곱게 깔려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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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들이 사회생활에 정착할 때까지 지원해주는 정부차원의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보건복지부의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아이와 엄마가 제대로 성장하고 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꾸준히, 끝까지 관리하는 1:1 맞춤 지원과 멘토링 제도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 교무는 "문화적 차원인 사회 인식이 개선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인식 변화 전에 제도 개선을 먼저 이뤄 사회를 차츰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혼모를 위한 학교가 개교한 것은 그 출발점인 셈이다. 성연 양과 같이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미혼모들을 위해 경직된 법을 개정하는 일도 시급히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강 교무는 "사실 미혼모들이 아이를 갖고 나면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고 삶에 대한 태도도 진지해져서 우리는 '아기가 10대 엄마를 키운다'고 한다"며 "일어난 결과에 대한 죄만 물어서 미혼모를 좌절시키고, 잘못된 인간이라고 낙인찍기보다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삶을 잘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이 죽이는 게 더 잘못된 것... 내가 키우는 게 맞다"

강 교무의 말마따나 성연 양은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똑부러진 주관을 갖고 있었다. 성연  양은 입양을 강권하는 어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입양을 보내거나 지우는 것보다는 내가 키우는 게 맞는 거잖아요. 몇 년 후에 아이를 갖나, 지금 갖나 같은 건데 아이를 죽이는 게 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몸을 팔아서 아이가 생긴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을 좋아해서 갖게 된 건데, 제가 그렇게 비난받을 정도로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건가요? 미혼모인 내가 아이를 키우겠다는 게 잘못된 건가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냐는 질문에 얼굴이 밝아진 성연 양은 "아이가 잘못했으면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해결할 거예요, 자립심 없는 아이로 키우긴 싫어서 도와줄 건 도와주더라도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아이로, 착하고 밝고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미 '엄마'였다.

덧붙이는 글 | 나래대안학교 입학 상담을 원한다면 02-393-4725로 전화하면 된다. 홈페이지는 www.aeranwon.org



태그:#미혼모, #나래대안학교, #애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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