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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 트레킹
▲ 피아골 피아골 트레킹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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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한반도 전체가 찜통 속이었을 그날( 8월 8일 일요일, 아 그날이 입추였다). 지리산 피아골 계곡도 더위는 비켜가지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만의 지리산 여행을 그냥 보낼 수는 없어 아침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오늘은 피아골 트레킹이다. 어디를 봐도 깊은 숲으로 둘러싸인 지리산에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산신령으로 변신할 것 같은 신령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한가지 불만스러웠던 것은 지리산의 신령스러움을 난도질 하듯 시원스럽게 뻗은 도로.

암자 이름이 참 특이하다. 대나무울타리가 예뻐 궁금했으나
출입금지란다.
▲ 서글암 암자 이름이 참 특이하다. 대나무울타리가 예뻐 궁금했으나 출입금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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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가 잘 뻗어 있어서 지리산으로 진입이 가능했겠지만 트레킹을 하면서도 줄곧 아스팔트 포장길을 걸어야 했던 일이 참으로 난감했다. 땡볕이 아스팔트 위를 뜨겁게 데우면 아스팔트는 고스란히 그 열기를 위로 품어 냈다. 그나마 숲이 울창해서, 그늘진 곳을 찾아 들어가면 등줄기를 흥건하게 적신 땀이 거둬들여져 염천에 뙤약볕을 걷는 일이 최악은 아니었다.

아무리 덥기로소니 지리산에서 최악일 리가 없다. 다만 날이 지나치게 더운 탓이었다. 포장된 길 위로 늘어선 나무들이 만들어낸 고마운 그늘자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걷는 저 아래로는 장중하게 흘러가는 피아골 계곡이 이어지지 않았던가. 그 시원스런 물소리는 내 등줄기의 땀일랑은 걱정하지 말고 걸으라고 등을 떠밀었다.

실제로 임걸령과 피아골 대피소가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조금 밖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되돌아왔을 때 발을 담가본 계곡물은 그처럼 더운 날에도 얼음처럼 차가웠다.

베이스캠프에서 4킬로 이상을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임걸령과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보니 피아골대피소까지가 6킬로 남짓이다. 염천의 더위만 아니었어도 어찌 해볼 것이라 위안을 삼아 이만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쯤에서 피아골 계곡 트레킹을 접고 계곡에 온 몸을 맡기기로 한다. 

울창한 숲이 있어 여름 트레킹도 견딜만
▲ 피아골 울창한 숲이 있어 여름 트레킹도 견딜만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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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지리산 어디로든 이어지는 저 계곡의 위용이 참으로 웅장하기만 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게 가슴이 열리는 것 같다. 피아골에 들어서 그 이름의 의미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민족상잔의 비극이 있었던 그 때, 이곳 역시 비극의 최전선이었다.

전쟁의 막바지, 수많은 파르티잔들은 쫓기듯 더 깊은 지리산 자락으로 숨어 들었고 그들을 쫓는 군경과의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 여러 자료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다. 하지만 사료를 통해 드러난 사건들은 어쩌면 피상적인 것들일지도.

최근 <태백산맥>을 읽은 딸아이의 질문이 많아진다. 그러나 대답해줄 말은 짧아서 궁색하다. 저 넓은 피아골 계곡에 핏물이 흘러 들었다는 전언으로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짐작하며 피아골의 '피'자가 붉은 피의 '피'인가 묻는다.

피아골이라는 이름의 연유에 대한 설명은 피아골 대피소 가는 길에서 만난다. 그곳은 지리산의 마지막 마을이라는 직전마을을 조금 지난 곳, 한때 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화전민터에서였다. 곡물 중 하나인 기장을 '피'라고도 하는데 이곳이 그 기장(피)이 잘 자라는 땅이라서 피아골이 된 것이란다. 아하, 피아골의 '피'가 사람의 피가 아니라 곡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군. 

계곡 흐르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걷다
▲ 피아골 계곡 계곡 흐르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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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에서 유명한 사찰, 연곡사에 들렀을 땐 무더위 한복판인 정오 무렵이었다. 햇살이 어찌나 강하게 쏟아지던지 연곡사 경내에 들어섰을 때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는 현상까지 경험해야 했다. 어쩌다 방문객이 한 둘 보일 뿐, 지리산 깊은 골에 들어 선 연곡사의 한 낮은 마냥 한가롭기만 하다. 일주문을 지나니 눈 앞에 나타나는 돌계단이 정갈하다.

경내 한쪽으로 푸른색 꽃이 피어 눈길을 끈다. 도라지밭이다. 어디든 사찰 주변엔 밭이 있기 마련이었지만 이렇게 절 마당 한켠을 차지하고 들어선 도라지밭은 생경하다. 도라지밭을 배경으로 선 연곡사 3층석탑은 또 얼마나 단아하던가. 절을 이루는 건물은 최근에 중창한듯 깨끗한 느낌 뿐이다.

피아골에 들어선 절, 연곡사
▲ 연곡사 피아골에 들어선 절, 연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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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를 돌아 왼쪽 뒤편으로 가면 비로소 연곡사의 옛 이야기를 짐작해 볼 만한 부도밭을 만난다. 오래 되어서 풍화된 돌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끼는 일은 여러가지 감정을 일으킨다. 특이하게도 그곳에 의병장을 모시는 부도비도 따로 세워져 있다. 봄에 가면 근사할 것 같은 오래된 동백나무도 눈여겨 보게 된다.

선암사에 버금가는 연곡사의 해우소 건물이 멋스럽다. 해우소를 바라보고 피어 있는 연못에 꽃진 연잎들이 무성하다. 그 사이 늦게 핀 연꽃 한송이가 반갑고도 애잔하다.

연곡사 삼층석탑 아래 도라지밭
▲ 도라지밭 연곡사 삼층석탑 아래 도라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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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게 땀을 흘렸으니 본격적인 물놀이 시간을 갖는다. 야영장 아래 계곡물에 이미 아이들의 함성이 그득하다. 물 속에서 노는 동안 어른들도 동심을 되찾는 법이니 아이들의 신바람은 너무도 당연한 법이다. 물 속에 발만 담그고 있어도 온 몸으로 시원함이 전해지는 피아골 계곡, 그 계곡 한가운데 의자를 놓고 책을 읽다 조울조울 잠에 빠져 들었다.

세차게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와 아이들의 함성소리 사이로 물밀듯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자장가 삼아 계곡 속에 발 담그고 한잠 잘 자고 나니 온 몸의 피로가 가신다. 피로를 풀었으니 다음 여정을 향해, 이번엔 쌍계사로 출발이다.

재밌는 건 피아골에서 어디든 나설라 치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너무도 쉽게 넘나든다는 점. 그 경계라는 것도 도로 한가운데 표지판이 전부다. 여기서부터, 경상도, 여기서 부터 전라도 하는 식이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연곡사 뒷마당에 서 있는 의병장 추모비옆으로 
오래된 동백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 추모비 연곡사 뒷마당에 서 있는 의병장 추모비옆으로 오래된 동백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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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를 방문한 건 7년 전의 일이다. 다시 가서 보니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쌍계사의 가람은 웅장함을 보여준다. 산속에 들어선 절이라 층이 유난히 많은 것도 웅장함을 더한다. 건물 하나를 보고 계단을 올라서면 다음 건물이 보이고 다시 층계를 올라 다음 건물을 만나는 식이다. 그것도 가파른 계단이다.

절을 감싸듯 왼편에 대숲이 있었는데 쌍계사의 대숲은 울창하기가 손에 꼽힐 정도가 아닌가 싶다. 내가 아는 한 말이다. 쌍계사를 한바퀴 둘러보고 내려오니 저녁 6시. 피곤하지만 않았어도 저녁 6시 30분 예불을 보고 오는 건데 그랬다. 7년 전 저녁 예불을 우연히 맞딱뜨리고 가슴 얼얼한 감동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는데 얄궂게도 그 얼굴을 남편이 사진으로 남겼다. 쌍계사의 저녁예불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아마 그때의 그 감동 때문이리라.

세월이 묵어 오래된 돌에서는 여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연곡사 부도비 세월이 묵어 오래된 돌에서는 여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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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아름다운 드라이브 길'에 뽑혔다는 쌍계사 진입로를 다시 돌아나오니 섬진강이 보인다. 어디서든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짜잔, 하고 나타나는 섬진강은 저녁에 보면 더욱 다정다감한 강이 되었다. 한쪽으로 지리산을, 한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달리는 동안 카오디오 볼륨을 한껏 높인다. 마침 라디오에선 귀에 익숙한 영화 음악이 들린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음악으로 익숙한 영화음악,'이탈리아노 꼰트로 이탈리아노.' 예전에 라디오 프로그램 꼭지의 메인 테마곡으로 쓰여 사랑받던 곡이다. 음악이 있어 여행은 풍부한 감성을 부여받고는 한다.

섬진강변으로 노을이 번진다. 베이스캠프로 가는 숲에도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고 하나 둘 지리산 능선 위로 저녁별이 돋는다.


태그:#연곡사 , #피아골, #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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