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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4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4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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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국정치에서는 다수인 야당이 반대하는 한 대통령은 함부로 고위직 인사를 할 수 없다. 뻔히 정략이나 정쟁의 수단으로 반대하는 줄 알면서도 대통령은 끝내 설득과 협상이 통하지 않을 경우 이에 승복하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식 인사청문회이다."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경향>의 사설 한 대목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보수 언론의 현재 사설도 아니지요. 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의 13년 전 기사 내용입니다. 어찌 자신의 미래를 이리도 정확히 예견하고 스스로에게 죽비를 내리쳤는지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시절이던 1998년 3월 그는 '미국식 인사청문회'라는 리포트를 통해 빌 클린턴 행정부의 집권 2기 인사청문회 낙마 사례를 전했습니다. 국내에서 인사청문회의 도입이 거론되던 시기였죠. 물론 그가 소개한 3명의 낙선자의 낙마 이유는 공화당의 발목잡기, 민주당 내 불화가 전부였습니다. 어디에도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 투기' '위장취업' 등 신 내정자 같이 '비리종합선물세트'라 불리는 개인적 불법·비리 사례는 없더군요.

신 내정자는 이번 청문회 당시 "기자시절 많은 공직자들의 탈세, 위장전입 등을 비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 지금 기자의 입장이라면 어떤 기사를 썼겠나"라는 천정배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할 말 없다"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한국일보> 기자 시절 글을 고스란히 되돌려드리는 만큼, 이제 '죄송하다'라는 말로 스리슬쩍 넘어갈 생각하지 마시고, 낙마 대신 용퇴하는 방향으로 조용히 거취를 결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맹모삼천지교?  공교육 걱정은 없나

우선, 딸 셋을 둔 터라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았더군요. 청문회 장에서도 아버지의 입장 운운하며 사과를 하긴 했습니다. 그래서 자식 '왕따' 될까 걱정에,  5번이나 위장전입을 한 겁니까?

"그래서 친구 부인이 일산에서 수원으로 달려가 오후 수업을 마친 아들을 학원에 내려놓고 집에 와 저녁준비를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친구가 직장을 마치고 대치동으로 가 아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새벽에 귀가한다는 것이다.

부부가 하루에 300km 남짓 차를 모는 강행군을 하고 있는 것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친구에게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은 학생이 서울대 수시모집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은 또 얼마나 낙심천만이었을까."

2002년 11월 17일, 수능 시험에 맞춰 쓴 '어떤 교육열'이란 칼럼입니다. 강남의 한 상갓집에서 만난 서울대 정치학과 동문들과 나눈 얘기를 칼럼으로 실었더군요.

평준화 고교에 아들을 보낼 수 없어 수원 과학고에 입학시킨 친구의 지극정성 학원 사랑을 가지고 평준화 정책을 비판한 것이죠.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자식 교육 때문에 5번이나 위장 전입을 했던 입장이라 부모 입장이 공감이 간 모양입니다.

"학업의 측면에서만 보면 학원이 '진짜 중학교'가 된 것이다. 영어, 수학만 2단계로 나누어 수업하는 게 고작이고 전교 석차는 낼 엄두로 못하는 학교가 경쟁에서 완전히 학원에 밀려났다. 나도 언제까지 둘째 딸을 학원에 안 보내는 만용을 부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에 앞선 2002년 3월 '둘째 딸 이야기'란 칼럼입니다. 둘째 딸에게 들은 얘기라며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회초리질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학원에서는 아무리 학생을 꾸짖어도 이에 항의하는 부모는 없다"는 일산 신도시의 학원가 풍경을 구구절절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 칼럼을 보면, 공교육 살리기에 대한 의지는커녕 오히려 학부모들에게 학원으로 보내라고 독려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신 내정자가 먼저 위장전입 사실을 보고했다고 하니, 청와대도 이와 같은 신 내정자의 자식사랑을 어여삐 여긴 걸까요? 

김대중 정부 인사시스템 질타하던 신 내정자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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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의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는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아예 전담반까지 구성해 상원이나 언론에서 트집잡을 만한 내용에 대해 샅샅이 훑는다. 이 바람에 대통령이 새로 취임해도 행정부를 비롯한 주요 포스트의 인선이 완료되려면 몇 달씩 걸리곤 한다. 특히 공직 경험이 없었던 사람을 발탁하는 경우에는 사전검증 절차에 더욱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장상 총리 인사청문회 시기였던 2002년 7월에 쓴 'FBI 요원의 방문'의 한 대목입니다. 워싱턴 특파원 당시 자기 집에 이전에 살았던 국무부 직원 채용 예정자의 조사를 위해 FBI 요원이 찾아왔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자기 사람 챙기기와 김대중 정부 비판입니다.

"꼬치꼬치 캐묻는데 까닭 모를 반감(反感)과 함께 전에 살던 사람을 보호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문장에서 비리 여부보다 자기 사람 챙기기가 먼저인 인물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개각 때마다 전력시비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혹시 청와대마저도 뒷조사를 꺼려 마땅히 할 일을 안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쓴 결론 부분에서는 진정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더군요.

KBS 사장 서동구 임명을 비판했던 사람이...

잘 알려진 대로, 신 내정자는 MB 대선 캠프 시절 한 건설업체로부터 그랜저를 제공받았더군요. 그런데 그는 일찍부터 '로비'의 합법화를 주창한 인물입니다. 2002년 6월
'윌러드 호텔의 일화'라는 칼럼에서 미국의 로비 역사와 로비스트의 활약을 소개한 뒤 "변호사나 세무사, 변리사, 공인중개사 등의 경우처럼 합법과 불법의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로비를 암시장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장경제의 필수요건인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도 공개적이고 투명한 로비활동이 필요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기'식의 권력형 비리를 어느 정도나마 없애기 위한 사회적 필요악일 수 있다. 정치권이 권력형 비리를 놓고 말싸움만 할 게 아니라 한번쯤 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보기를 권한다."

글의 배경은 김대중 정부 말미 친인척 비리를 두고 쓴 것이지요. 권력 최고위층의 비리나 로비만 아니라면 된다는 생각을 실천했는지, 그렇게 떳떳하게 그랜저를 끌고 다닌 거 아닐까요?  또 로비를 안 받으려 특수 활동비 명목으로 접대비를 1억 1900만 원이나 썼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YTN 사태 때 막말 녹취록이 공개됐더군요. "구본홍 사장을 우리도 좋게, 이쁘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퇴는 없다, 이대로 간다, 노조에 밀리지 않는다"고 대통령의 의중을 그대로 전했고요. 그랬던 그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KBS 서동구 사장 임명시 뭐라고 했던가요.

"'대통령은 자의적인 인사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평검사들의 요구에도, 자신이 KBS 사장에 서동구씨를 추천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노 대통령은 '내가 떳떳하기에 잘못된 게 없다'는 식의 자세를 보였다.(중략)

재야 운동권 출신의 대통령이니 여타 정치인에 비해 '정의'와 '진실'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는 점은 백분 이해한다. 그리고 오랜 독재권력의 시대에 관행으로 굳어진 '박정희 패러다임'보다 노 대통령의 정치관이 도덕적으로 훨씬 우월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도 틀릴 수 있다. 그랬을 때는 지체 없이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몇 년 뒤 '참여독재'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2003년 4월 7일, '대통령도 틀릴 수 있다' 중)

글은 이렇게 짐짓 꾸짖는 척 근엄히 쓰면서, 입으로는 어찌 그리 막말을 할 수 있습니까?

김태호 때문에 물먹지 마시고 용퇴하시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24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24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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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지막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썼던 글을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2003년 4월 대선자금 수사가 불거졌을 때 '대통령의 위대한 용기'란 칼럼에서 "퇴임 후에는 형사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표현을 썼더군요. 

"다음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리에 연연하지 말 것을 진솔하게 권하고 싶다. 상대의 불의(不義)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떡밥'을 뿌렸다고 하지만 대통령은 이제 불법행위와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퇴임 후에는 형사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중략) 항상 정의의 편에서 정치인생을 살아온 노 대통령의 위대한 용기를 기다려 본다."

청와대에서 김태호 총리 내정자를 살리기 위해 2명의 장관 후보자를 버리기로 했다는 '빅딜'설이 보도 됐더군요. '비리종합선물세트' 신재민 내정자, 버림 받기 전에 스스로 사퇴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썼던 글을 고스란히 되돌려 드립니다.

"다음으로는, 신재민 내정자에게 자리에 연연하지 말 것을 진솔하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사익을(私益)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하지만 내정자는 이제 불법행위와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차관) 퇴임 후에는 형사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3년간 불의의 편에서 정치인생을 살아온 신 내정자의 위대한 용기를 기다려 본다."


태그:#신재민, #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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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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