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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전설을 가진 며느리밥풀꽃. 밥풀 모양이 붙어있다
 슬픈 전설을 가진 며느리밥풀꽃. 밥풀 모양이 붙어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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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더운 날이다.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기상예보에서는 올들어 최고 더운 날씨가 예상된다며 폭염주의보를 내렸다. 이래도 덥고 저래도 더워 짜증만 난다. 그래! 이열치열이다. 여수 풀꽃사랑 회원 십여 명은 토요일인 21일 여수시 화정면에 소재한 개도를 찾았다. 

개도는 주위 섬을 거느린다는 뜻으로 덮을 개(蓋)자를 써서 개도(蓋島)라고 하였다. 하지만 <난중일기>에는 개의 귀(耳) 섬이라 표기되어 있다. 인근에서는 자연지명으로 개섬이라 부르며, 여수 방면에서 쳐다보면 봉화산과 천제산이 개의 귀 모양을 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봉화산과 벅수, 목장터가 있다.

오전 9시 반에 여수 교동 선착장을 떠난 배에는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글귀가 씌어있다. 항상 공기를 마시고 사는 사람은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법. 섬의 아름다움을 잊고 살았던 나는 오랜만에 섬이 부르는 곳으로 간다. 인근 섬은 거의 다 둘러 봤는데 하필 개도가 빠졌다. 여름이 막바지라서 그런지 배에는 관광객의 모습이 별로 안 보이고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여수항을 떠난 배가 돌산대교를 지나자 갈매기가 여객선을 따른다
 여수항을 떠난 배가 돌산대교를 지나자 갈매기가 여객선을 따른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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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옆 가게에서 만난 홍합까는 주민. 사진 찍겠다고 하니. 아이고 ! 예쁘게 화장허고 찍어야 헌디!
 선착장 옆 가게에서 만난 홍합까는 주민. 사진 찍겠다고 하니. 아이고 ! 예쁘게 화장허고 찍어야 헌디!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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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와 갈매기를 바라보다가 선실로 들어간다. 어젯밤 더위 때문에 잠을 설친 나에게 깜박 잠은 보약이다. 한 쪽에는 할머니들이 일찌감치 잠이 들고. 그런데 섬 주민들 한 무리가 모여 화투를 치며 시끄럽게 떠든다. 화투는 섬을 오가는 사람들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다. 떠들거나 말거나 그냥 눈을 감고 가수면 상태에 들어간다. 

선착장에 내려 지도를 확인하고 등산로로 방향을 틀자 홍합을 까던 부부가, 이 더위에 등산 복장으로 산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건다.

"등산 가세요?"
"아니요. 풀꽃구경 왔어요."
"따땃하겠습니다. 하하하."
"지금도 홍합 먹어요?"
"지금이 제일 맛있을 때입니다."
"사진 좀 찍어도 됩니까?"
"아이고! 예쁘게 화장하고 찍어야 헌디."

모자에 수건을 둘러써도 덥기는 마찬가지. 여석리로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자 등과 얼굴에 땀이 범벅이다. 방학 중이라 따라왔던 한 초등학생은 '아직 멀었어요?"하며 벌개진 얼굴로 항의성 질문이다.

나무가 없는 야트막한 평지에 꽃들이 천지다. 한 회원의 "아! 풀냄새"하는 한 마디가 지친 회원들의 마음을 깨운다. 이들은 매달 한 번씩 여수 인근의 산과 들을 찾아 야생화와 풀들을 찾는다.

전문가인 최상모 교사가 설명한다.

"이것은 며느리 밥풀꽃입니다. 한국에는 꽃며느리밥풀과 애기며느리밥풀 2종이 자랍니다. 모두 1년생초로 산과 들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알며느리밥풀은 2갈래로 나뉜 꽃부리 아래쪽에 밥풀처럼 생긴 동그란 무늬가 있습니다.

이 꽃에는 아픈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남편이 외지로 돈 벌러 나가고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가 어느 날 밥을 하다가 밥이 다 됐나 안 됐나를 확인하기 위해 주걱으로 밥을 떠 맛을 봤습니다. 이것을 본 시어머니가 자신을 놔두고 먼저 밥을 먹는다고 죽였습니다. 이듬해 죽은 며느리의 무덤에서 이 꽃이 자라났습니다."

한 여자 회원이 "야! 이건 비비추다! 산에서 이 꽃을 만나면 수줍은 처녀같아요"하며 반가워한다. 조금 더 가자 '으아이'에 사마귀 한 마리가 앉아있다. 사진을 찍자 덤빌 테면 덤벼 봐! 하듯이 고개를 돌리고 째려본다.

그늘 속에서 찾은 야생화 '송장풀'.
 그늘 속에서 찾은 야생화 '송장풀'.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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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리'에 사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사진을 찍자 고개를 돌려 째려본다. 기개가 대단해!
 '으아리'에 사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사진을 찍자 고개를 돌려 째려본다. 기개가 대단해!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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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리' 꽃은 6~8월에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취산(聚散)꽃차례를 이루며 무리지어 하얗게 핀다. 꽃잎은 없고, 4~5장의 하얀색 꽃받침잎이 꽃잎처럼 보이며 수술과 암술은 많다. 열매는 9월에 수과(瘦果)로 익는데, 길이가 2㎝쯤 되는 털이 있는 꼬리가 달린다. 이른 봄에 새순을 삶아 나물로 먹기도 하지만 약간 독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봄과 가을에 뿌리를 햇볕에 말려 치풍제·이뇨제·통경제로 쓴다.

그늘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송장풀 몇 포기가 보인다. 꽃은 홍색으로 잎겨드랑이에 층층으로 달려있다. 그런데 달려있는 모습이 묘하다 흉측하기도 하고. 왜 하필 이름이 송장풀일까? 어떤 이는 송장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풀 전체는 이뇨제, 강장제, 중풍 치료에 사용 한다.

땀을 뻘뻘 흘리고 따라오던 초등학생이 드디어 불만을 터뜨렸다. "나 다시는 이 섬에 안 온다"소리에 모두들 웃는다. 일행은 도둑놈갈고리, 딱지꽃, 익모초, 맥문동, 짚신나물, 닭의장풀 등을 찾고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금방이라도 돌아갈 기세인 아이를 달래야 한다.

땀 흘린 뒤 느티나무 그늘아래 정자에서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먹을 게 20가지나 된다
 땀 흘린 뒤 느티나무 그늘아래 정자에서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먹을 게 20가지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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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 수박을 공짜로 따 주던 아저씨(왼쪽)를 멸치 건조장에서 다시 만났다. 또 술 한 잔 하란다. 참! 시골 인심이다
 점심 때 수박을 공짜로 따 주던 아저씨(왼쪽)를 멸치 건조장에서 다시 만났다. 또 술 한 잔 하란다. 참! 시골 인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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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전리에 도착해 점심을 풀었다.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팔각정 옆에는 한 뼘이나 될 만한 느티나무에 싸인 나무 정자가 있다. 포구에 위치한 정자 나무그늘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신선의 놀이터다. 가방을 벗고 도시락을 꺼내는 일행에게 여수에서 살지만 고향에 왔다는 한 분이 수박을 따주겠단다. 자신이 고향에 올 때마다 따 먹기 위해 심었다는 수박은 햇볕을 받아 따뜻했지만 이보다 싱싱한 수박은 없다.

찰밥, 맨밥, 김밥, 집에서 만든 빵 등 20가지나 되는 먹을거리는 힘든 탐사여행을 마친 일행의 또 다른 즐거움. 담은지 몇 년 됐다는 복분자 술을 두 잔 마시니 나른해진다. 여기서 드러누워 자면 신선이 따로 없겠지!

3백여 미터 떨어진 몽돌해수욕장에 가니 멸치 가공집에서 수박을 줬던 아저씨와 식구들이 모여 과일과 술을 마시며 한 잔 하란다. 참! 시골 인심이다. 지나가는 사람 그냥 안 보내는 게 시골의 정이다.

여름철 몽돌해수욕장은 곡식을 건조시키는데 안성마춤이다. 물속에 들어갔다 온 회원도 옷을 말리는 데---. 아! 그런데---.  고추 + 고추 말리기 같다
 여름철 몽돌해수욕장은 곡식을 건조시키는데 안성마춤이다. 물속에 들어갔다 온 회원도 옷을 말리는 데---. 아! 그런데---. 고추 + 고추 말리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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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들의 비상 직전 모습.
 갈매기들의 비상 직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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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트럭을 얻어 타고 소재지로 간다. 소재지 옆에는 막걸리로 유명한 개도막걸리 주조장이 있다. 개도막걸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아무개 기자가 생각난다. 오라고 부를까? 앉을 자리가 없는 회원들은 나무그늘 아래 술판을 깔아 달라고 요청했다. 아주머니가 막걸리 박스를 통째 들고 온다. 뒤이어 가져오는 열무김치와 고추 된장. 아주머니가 젓가락을 가지러 간다. 그 뒤를 이어 '봉봉이'라는 개가 꼬리를 흔들며 따라온다. 

"아주머니 젓가락  필요 없어요. 막걸리는 조상들이 주신 젓가락으로 들어야 제 맛이 나죠.
아주머니 저 '개도 막걸리' 마셔요."
"???…!!! 하하하. 대박이다."
"아주머니 무엇으로 만들기에 이렇게 소문이 나고 유명해졌어요? 그냥 곡식만 넣고 약을 안 넣죠."
"오전 5시에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으니 조금 더 두어야 숙성될텐디…."

회원들은 초등학생에게 "목마르니까 너도 한잔 할래"하며 한 잔 준다. "맛이 사이다 맛 보다 약하다"는 아이가 맛있다며 열무를 손가락으로 덥썩 집어 들고 입에 넣는다.

유명한 개도막걸리 주조장 안집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일품이다. 주인집 개 '봉봉이'가 쫄랑거리며 오징어 다리를 탐낸다. "아주머니! 저 개도 막걸리 마셔요?"
 유명한 개도막걸리 주조장 안집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일품이다. 주인집 개 '봉봉이'가 쫄랑거리며 오징어 다리를 탐낸다. "아주머니! 저 개도 막걸리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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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개도막걸리 주조장은 따로 있었다. 지역에서는 드물게 'ㄷ'자 형으로 지어진 집은 고풍이 있었지만 부모가 죽자 현재의 주조장에 판권을 넘겼다. 지방문화재로나 등록해도 될법한 고가옥이지만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졌다.

돌아갈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가다 초등학교에 들렀다. 아름다운 학교와 그야말로 천연 잔디운동장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이 아름다운 학교를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식당과 교실도 깨끗하니 숙소만 갖추면 훌륭한 공간이 된다.

땀을 뻘뻘 흘리고 마을 구경을 하는 회원들의 다리가 약간 느려진다. 개도막걸리 취기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사는 얘기를 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이들에게서 소시민의 행복을 본다.

"야! 꼬마야! 정말 이 섬에 다시 안 올래?"
"아니요!"

아! 그 섬에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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