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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 있는 스미요시 신사를 찾았다. 신사 방문은 원래 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시모노세키 안내는 쿠와노 야쓰오씨가 맡았다. 다른 곳에서 일정을 조금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결국 이 곳에 우리들을 안내하고 싶었던 것임을 알게 됐다.

 

쿠와노 야쓰오씨는 이 스미요시신사에 특별한 보물이 있는데 보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보물을 보려면 한 사람당 700엔의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한다고 했다. 투어에 참가한 인원이 40명이니 예정에 없던 28,000엔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참가자들 대부분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라도 값진 보물을 보자고 했고, 좁은 숲길을 통해 들어가는 동안 어떤 보물인지 점점 더 궁금해졌고 기대도 됐다.

 

스미요시 신사에 있는 야마구치현(山口縣)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그 보물이 글쎄!  '헛!' 그 보물은 바로 고려시대의 동종(銅鐘)이었다.

 

'어! 이 커다란 종이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신사의 안내자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그러나 안내자의 설명에 우리는 더욱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야마구치 지방에는 여기 스미요시 신사를 비롯해 호오후천만궁, 루리코우지에 큰 종들이 있지만 여기 스미요시 신사의 이 종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동종(銅鐘)은 약 900년 전에 고려 초기 때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특징적인 것은 용과 선녀가 있는 이 그림입니다.

 

종 옆에 있는 이것은 음을 조절할 때 튜닝 역할을 한 것이라는 설과 이 곳에 깃발을 꽂았다는 설이 있는데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일본 종을 칠 때는 보통 눈높이 정도로 치는데, 이 종은 커서 골프를 치듯이 쳐야 한다고 추측됩니다. 아마도 이 종은 시간을 알리는 종이라기보다는 음악을 즐기는 음악적인 측면에서 이것을 악기처럼 사용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국 청소년들은 안내자의 황당한 설명을 들다가 "이 종은 어떻게 이 신사로 오게 되었습니까?"하고 물었다.

 

안내원은 "이 종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설에 의하면 기증받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도쿠가와 시대에 좋아서 가져왔다든지... 하여간 모르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물어도 올바른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신사를 나오면서 쿠와노 야쓰오씨는 "조선에서 통신사들이 이 종을 가져와 기증했다는 기록이 있지 않고, 도쿠가와 시대에는 조선과의 전쟁도 없었다. 아마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벌인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으로부터 약탈해온 것이 분명할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조선에서 약탈해 갔을지도 모르는 고려(高麗)종이 '야마구치현(山口縣)의 중요 문화재로 되고, 또 이 문화재를 보기 위해 한국의 청소년들이 각각 700엔씩을 내고 엉터리 해설도 들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긴 것이다. 이 일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의 약탈은 일제강점기에서 저지른 강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1910년 강제병합을 통해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모든 양질의 자원들을 약탈해갔다. 석탄, 철, 금 등의 지하자원은 물론이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강제징용으로 끌고 가거나 혹은 일본군위안부로 또 근로정신대로 끌고가 죽을 때까지 모진 고통을 가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얼이 스며있는 역사문화자원들까지도 강탈해간 것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지난 8월 10일 오전 내각회의를 거쳐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을 표명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은 또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 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반환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간 일본 총리는 조선에서 강탈해간 것들 중 '조선왕실의궤'와 일부도서의 반환으로 식민지지배에 대한 반성의 표시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인가? 총리는 수많은 식민지 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과,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문제 등에 대하여 구체적인 조치들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 뻔한 이 '사죄의 기분을 표명'하는 것을 한국민들이 감사하게 받을 줄 알았을까?

 

조선왕실의궤 한 장 한 장마다 총독부 도장을 찍어 강탈의 주체를 명시한 그 뻔뻔함만큼, 일본 총리와 일본 정치인들의 여전히 남아있는 제국주의적 본성은 숨겨지지 않고 있다.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일해갈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아힘나운동본부에서 기획한 역사스터디투어의 현장르포입니다.


태그:#스미요시신사, #아힘나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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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 관장 천안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공동대표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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