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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한 전경대원이 경찰 로고 옆을 지나며 근무를 서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한 전경대원이 경찰 로고 옆을 지나며 근무를 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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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괴한 일은 늘 있어 왔다. 새삼스러운 것이 없다. 그런데 최근 경찰청장 내정자로 발표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지난 3월 말, 서울 경찰청 강당에서 한 발언은 그 도를 넘어섰다. 서울경찰청 소속 5개 기동단 팀장급(경위 이상) 464명을 대상으로 강연한 이날 발언이 연일 국민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그 내용이 가히 파격적인 '막말'이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수사를 했던 검찰도 모른다는 '차명계좌' 발견 운운하며 사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발언을 했다. 반면 살아남아 있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여기는 천안함 유족을 상대로는 '동물' 운운하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표현으로 명예를 훼손했다.

그런데 더 걸작은 그의 변명이다. 처음에는 늘 그 상투적인 수법의 '모르쇠'였다. 기억에 없다고 해명했다가 문제의 동영상이 제시되자 그는 "시위를 앞둔 경찰에게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한 강연"이라고 답변했다.

나는 조현오 내정자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위에 언급된 두가지 사례가 전의경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데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 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그것은 왜 그가 지금 이 정부에서 경찰청장으로서 적합하다고 판단됐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MB정부를 보면서 '조폭적 의리'를 떠올리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가 9일 오전 서울 경찰청 내 경찰위원회 입구에서 경찰청장 임명제청 동의를 위한 경찰위원회 임시회의에 참석하기위해 이동하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가 9일 오전 서울 경찰청 내 경찰위원회 입구에서 경찰청장 임명제청 동의를 위한 경찰위원회 임시회의에 참석하기위해 이동하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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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강북경찰서장이 아주 특별한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양천경찰서에서 발생한 경찰에 의한 고문 사건의 원인이 무리한 실적주의를 주장해온 조현오 서울청장에게 있다고 비판하면서 동반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

파장은 컸다. 고위 공직사회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공개적 항명이었다. 그러나 하극상 기자회견 파동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라도 퇴진할 것으로 예상했던 조현오 서울청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채수창 강북경찰서장만 제출한 사표조차 수리되지 못한 채 경찰 징계위에서 파면되는 것으로 사건은 현재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석달여 후, 조현오 서울청장은 이제 경찰의 최고 수뇌부인 경찰청장으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만약 이같은 사건이 이전 정권에서 있었다면 어떻게 처리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이 정권이 생각하는 인사 시스템은 분명 통상의 개념과는 다르다.

문득 지난해 1월 용산참사 사건 당시 일화가 떠올랐다. 당시에도 이명박 정부는 김석기 전 서울청장을 경찰청장 내정자로 임명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철거민들의 용산 망루 점거농성을 해결하겠다는 무리한 과욕으로 망루 농성 하루만에 경찰 특공대를 전격 투입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5명의 철거민이 숨지고 1명의 경찰이 사망하는 초유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매일경제방송>(mbn)이 단독으로 보도한 방송에 의하면 당시 이대통령은 "괜히 아까운 사람이 나가게 되었다, 용산 사고가 일어 나려면 늦게 나든지 했어야지 바로 터졌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번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은 그때와 똑같은 '도돌이표'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국민과 야당, 그리고 노무현 재단과 천안함 사건 유가족 등이 조현오 내정자에 대한 내정 취소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직무와 관련없는 사안"이라며 그대로 강행하고 있다. 민주당이 "만약 그대로 임명한다면 이 정부의 생각이라고 판단하겠다"는 강도 높은 압박을 함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현 정부를 보면 솔직히 그 의리만큼은 어느 '조폭적 의리'보다 못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기분 나쁠까.

자기 감정 조절 못하는 경찰 총수를 어찌 믿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조 내정자 문제로 인해 묻히는 것이 있다. 이번 인사는 경찰청장 하나만이 아니라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몇 개 부처 장관의 인사청문회도 있는데 어느 순간 조현오 내정자 문제로 모든 관심이 쏠려 버렸다. 그리고 그의 낙마가 국민적 분노와 함께 최대 관심사가 돼 버렸다.

그러다 보니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양평 땅 부동산 투기 의혹이나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의 재개발 지역 투기 의혹, 또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어버린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 등의 위장전입 같은 문제는 아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현오 내정자 문제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저항하는 그 속 깊은 뜻은 혹시 이 카드 하나로 나머지 문제를 덮고자 하는 정치적 셈법이 아닐까 싶은 의구심마저 강하게 든다.

한편 조 내정자는 지금까지 국민적으로 많이 언급된 노 전 대통령이나 천안함 유족 관련 언급 외에도 1시간 8분 6초 정도의 강연에서 평소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말했다. 그리고 그 내용중 눈에 띄는 대목이 바로 그의 깊은 국민의식 폄하와 집회 시위에 강력한 대처를 주문하는 목소리 등이다. 또 야당 정치인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 역시 경찰 수뇌부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임에도, 그의 행보는 거침 없다.

예를 들어 "(집회 시위 대처 동영상을 본 후)분신 같은 경우도 안 죽었습니다, 만약에 죽었으면 우리나라 국민들 정서를 보면 엄청나게 또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내서 공격을 하고 비난을 할 겁니다"라든가 "(시위 진압 물대포 사용법에 대해 설명하며)특히 물포 효력을 발휘하는 게 11~3월까지, 요즘 기온 같아서는 4월까지도 물포는 굉장히 큰 효력을 발휘합니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특히 물은 한 계절 늦게 가잖아요, 수온은. 그 찬물을 맞으면 굉장히 사람이 위축 되잖아요?"라는 말도 일선 경찰간부를 상대로 했다.

서울경찰청장이 강경하게 시위 진압하는 요령, 그리고 국민에 대한 비하 발언을 할 때 이를 들은 일선 경찰 간부들이 갖는 생각은 뭘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오싹해진다. 물론 그의 강연 내용 중 일부 긍정적인 부분도 없지는 않다. 특히 시위 진압 과정에서 절제된 감정의 조절을 주문하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감정에 치우쳐 훈련되지 않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그는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이 말한 것과 달리 그날의 강연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여러 막말을 자기 감정에 치우쳐 하고 만 것일까. 그건 충성심 때문이다. 권력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이 바로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나는 판단한다.

공무원이 충성해야 할 곳은 권력이 아닌 '국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15일 오후 마포구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한 청와대 출신 모임인 '청정회' 인사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조 후보자의 내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15일 오후 마포구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한 청와대 출신 모임인 '청정회' 인사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조 후보자의 내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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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당연한 원칙 하나만 든다면 공무원이 충성해야 할 곳은 오직 '국민'이다.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공직자들은 정권과 권력에 충성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도 확실하니 더욱 그렇다.

용산사건으로 물러난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는 불과 20일만에 스스로 자진사퇴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넉달만에 자유총연맹 부총재로 임명되었다. 그렇기에 공직자로서 행실보다 권력에 눈도장을 찍는 일은 그토록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강렬한 유혹인 것이다. 조현오 내정자의 강연 말미는 그런 의미에서 되새겨 볼 만하다.

"그럼 경찰이 뭡니까. 경찰이 진정한 민주투사입니다. 우리 경찰이야말로 민주주의 수호의 최선봉에 서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민주주의 수호의 선봉장입니다."

맞는 말이다. 경찰은 민주주의 수호의 최선봉이다. 그래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현오 내정자는 물러나야 한다. 조현오 내정자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경찰의 신성한 최고 수뇌부가 돼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이 불거진 배경에 조현오 내정자가 경찰청장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경찰 내부고발자의 제보 때문이라는 설 역시 그가 임명 돼서는 안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경찰의 직속 후배로부터 동반 사퇴 요구를 받았던 그런 흠결있는 이를 쓸 만큼 우리나라 경찰 인재풀이 허약하다고 나는 믿고 싶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조현오 내정자가 국민에게 충성할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다. 바로 지금 스스로 '자진사퇴'하는 길이다. 그것이 이 상식이 허물어진 본인의 막말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경찰이 진정한 민주투사'라고 역설했던 그 말처럼 국민은 상식적인 '민주투사'를 원하고 있다. 더 이상은 치유할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내 달리고 있을 뿐임을 현명하게 판단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안언론 '시민사회 신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상만,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 #노무현,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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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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