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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谷町9丁目역에서 8번 출구로 나오면 백화점이 있는데 그 안에 있는 ampm(일본의 편의점 브랜드 중 하나) 앞에서 8시에 뵙기로 해요."

드디어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개시다!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 덕분에 약속 시간보다 20분 먼저 도착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일까? 등줄기에 땀이 주루륵 흘러내리고 가방 손잡이는 축축해졌다. 여긴 정말 덥다!

Djin상을 기다리며 백화점 문에서 새어나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몸을 식혔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노랑머리의 일본 아가씨, 양산을 든 할머니, 파란눈의 사나이 2명. 그들의 눈엔 내가 외국인이겠지?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윗나라 아가씨라기 보다 꼬질 꼬질한 타인으로 보이려나? 온갖 생각으로 뒤엉킨 채 사람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새 시계는 8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었던 백화점 문마저도 완벽히 닫혔다. 아직도 Djin상은 감감 무소식.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백화점 문에 비췬 나의 몰골을 쳐다보니, 끈적끈적한 몸에 붙은 티셔츠, 땀으로 지워진 화장, 꾀죄죄한 옷차림. 엉망이었다.

만일 Djin상이 안 온다면? 저녁 무렵 재단장하고 나오는 사람들 틈새를 헤치고 작은 좀비마냥 골목 골목을 누비며 잠잘 곳을 알아봐야 했다. 여행 초입부터 끔찍한 일이다. 죄없는 시계만 연거푸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찰나, 동그란 남성이 나타났다.

둥글둥글 귀엽고 예의바른 청년이었던 '진'

"안나씨?"

Djin상은 정확히 15분 지각을 하셨다. 더럭 화를 내고 싶었지만 Djin상의 멋쩍은 웃음 '하하하하'에 나도 그만 '하하하하' 웃어 버렸다. Djin상에게선 사진에서 나타났던 "똘끼"는 찾을 수 없었고 둥글 둥글 귀여운 외모에 예의바른 공손한 청년이었다.

"한국 이름은 박종진인데 그냥 진이라고 부르면 되요. 오랜만에 한국말을 써서 말이 잘 안나오네요."

진은 일본 오사카에서 2년 반 동안 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이었다. 진은 불문과전공으로 프랑스, 스페인에서 공부한 후 다국적 회사의 무역 파트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다고 했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언어 실력, 그리고 잘 나가는 무역회사에서 순조롭게 사회적 계단을 밟고 올라갔던 Djin상. 하지만 그는 이런 생활이 정말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다채로운 경력 덕분인지 진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까지 4개국어나 됐다. 이 언어적 우월함이란. 난 짧은 영어실력밖에 없는데, 4개국어를 하는 한국인을 직접 만나본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와 몇마디 수다를 나누다 보니 벌써 그의 집에 도착하였다. 

"우리집에 온 걸 환영해요. 보시다시피 작아요. 한국과 비교하면 많이 작죠. 뭐, 여기선 일반적이지만요."

Djin의 방
▲ Djin네 방 Djin의 방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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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방은 일본 특유의 올망 졸망한 작은 가구로 채워진 작은 공간이었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한국의 고시원과 비슷한 크기였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도 알뜰살뜰히 배치된  책상, 옷걸이, 침대, 화장실, 부엌 등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가구와 기구들은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그래,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리 큰 공간이 필요하진 않지. 있을 거 다 있는 담백한 공간이 때론 크고 화려한 공간보다 낫지, 암. 나는 서둘러 짐을 풀고 그에게 질문 보따리를 쏟아냈다.

"아, 저기 카우치 서핑 좋아하세요? 언제 시작한 건데요? 제가 몇 번째예요? 왜 좋은 것 같아요? 전에 카우치 서핑은 재미있으셨어요?"

"카우치서핑은 새로운 개념의 학교죠"

아사히 Slat
 아사히 Slat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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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격적으로 질문을 쏟아붓는 내가 당황스러웠던지 우선 목 좀 축이라며 과일 맥주를 건넸다.

- 어떻게 '카우치 서핑'(여행하고자 하는 곳의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료 숙박 및, 운이 좋다면 가이드까지 받을 수 있는, 여행자들을 위한 비영리 커뮤니티)을 시작했나요?
"가입한 지는 꽤 됬는데, 최근에 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 왜 카우치 서핑 호스트를 하는 거예요?
"저는 사람이 좋아요.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이야기를 하면 정말 내 자신을 찾아가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다른 문화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 자신을 열어가는 것 같아요. 제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을 존중해가는 법을 배운다고나 할까요."

- 그럼 어떤 사람이 좋아요?
"글쎄, 좋은 사람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유형을 말해보자면, 단답형으로 네/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사람, 그리고 많이 웃지 않는사람,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꺼리는 편이에요. 그 외엔 뭐 ㅎㅎ"

- 카우치 서핑이 어떤 것 같아요?
"진짜 멋지죠. 이건 새로운 개념의 학교죠. 미래엔 학교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겠고요. 모든 사람들이 학생이자 모든 사람이 선생님인. 그런 곳 말이에요. 카우치 서핑은 단순히 잠자는 곳이 아니에요. 이건 교환이죠. 주고받음이라고나 할까. 다른 세상의 지식, 정보 모두 도움이 되는 소중한 지식들이죠. 이런 것들이 하나 둘 모이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터가 형성되면 그곳엔 반드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날 거예요. 배우고, 가르치고, 공유하고~~ 좋지 않아요?"

- 카우치 서핑으로 온 사람들은 어땠어요? 친해진 사람도 있나요?
"지금까지 5명의 손님이 다녀갔어요. 뉴질랜드, 아일랜드, 미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그리고 한국인인 안나씨까지 6명이네요. 카우치 서핑을 하면 우선 사람들이 각지에서 오니까 그 나라에 대한 설명과 색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재밌어요. 그렇게 이야기 하다 보면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잘 안 맞는 사람도 있죠.

어떤 친구는 무슨말을 해도 시큰둥하고 주의를 줘도 집안에 진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신고 들어오고… 그 친구가 머무는 동안은 너무 힘들었어요. 카우치 서핑을 할 때 게스트들은(손님) 호스트의 개인 생활을 존중해줘야 되는데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하거나 그나라 문화에 따르지 않거나하면 아무래도 힘들죠. 정말 잠만 자러 온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티가 나요.

그래도 카우치 서핑을 하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요. 제 컴퓨터가 고장났었는데, 컴퓨터를 고쳐준 친구도 있고, 문화, 피부색, 나라 모든 게 다른데 음악 스타일 혹은 공통 관심사가 비슷해서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얼마전 마그누스(Magnus)라는 네덜란드 친구가 왔었는데, 아! 바로 안나씨 전에 온 사람이에요. 그 친구가 음악 믹스를 하는데~ 음. 진짜 장난 아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로 막 믹스를 해주더라고요, 하하.

얼마 전엔 같이 술을 먹고 놀다가 필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예전에 공부하던 학교 주차장에 가서 음악을 틀고 친구들한테 함께 놀자고 연락했어요. 결국 아무도 안 나왔지만, 하하. 그 다음에 공동묘지에 가서 함께 술을 마셨어요. 아참, 일본의 공동묘지는 한국의 공동묘지랑 달라요. 그렇게 무섭진 않아요. 음, 놀았다고 하니깐 좀 이상할 순 있겠지만, 비석 주변에 술도 부으면서 예의를 지켰죠. 어쨌든 재미있었어요."

Djin 상
▲ Djin 상 Djin 상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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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수다는 오전 4시까지 이어졌다.


태그:#카우치 서핑, #COUCH SURFING,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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