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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숲 속에서 만나는 야생화들은 요란스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은은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가 하면 독특한 생김새나 화려한 색깔로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신비스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지난 8일 나는 경남사계절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야생화의 천국이라 말할 수 있는 소백산으로 여름 꽃 산행을 나섰다.

아침 7시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소백산 국립공원 어의곡주차장(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오전 11시께. 숲길로 들어서자 산행 전날에 비가 내렸는지 땅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간간이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와 더위를 식혀 주었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마음도 꽤 들떠 있었는데, 산수국, 물봉선, 동자꽃, 참취, 노루오줌, 꼬리풀, 둥근이질풀 등 군데군데 피어 있는 야생화들이 무엇보다 산행의 재미를 더했다.

가녀린 여인의 애잔한 눈빛을 보는 듯햇던 물봉선.
 가녀린 여인의 애잔한 눈빛을 보는 듯햇던 물봉선.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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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란 꽃말을 지닌 동자꽃.
 '기다림'이란 꽃말을 지닌 동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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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물봉선은 가녀린 여인의 애잔한 눈빛을 보는 듯했다. 손톱에 물을 들이는 봉선화는 인도가 원산지이지만 물봉선은 우리 토종꽃으로 참 예뻤다. 어느 곳에 피어 있든 선명한 주홍색으로 눈에 확 띄는 동자꽃은 꽃말이 '기다림'이다. 볼그레한 동자승의 귀여운 얼굴이 떠오르는 이 꽃은 보기와는 달리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양식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간 스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 동자승이 그만 얼어 죽었는데, 이듬해 이 가여운 동자승의 무덤가에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났다 한다. 이를 본 사람들이 동자승의 넋으로 여겨 동자꽃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을 연상하게 하던 산수국은 이제 내게 잊지 못할 꽃이 되었다.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을 연상하게 하던 산수국은 이제 내게 잊지 못할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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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던 청초한 모싯대.
 은은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던 청초한 모싯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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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박한 둥근이질풀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었다.
 나는 소박한 둥근이질풀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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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한 줄기 바람을 연상하게 하던 산수국은 이제 내게 잊지 못할 꽃이 되었다. 산수국이란 아이디를 쓰는 여자 분을 이날 처음 만나 산악회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후배였다. 게다가 그녀는 야생화에 대한 지식 또한 풍부해서 이번 산행 길에서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

오후 1시 25분께 늦은맥이재(1272m)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서 점심을 한참 먹고 있는 일행들 틈에 끼어 후배와 함께 맛있는 점심을 같이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국망봉 쪽으로 걸어갔다. 늦은맥이재에서 국망봉 정상까지 거리는 2.1㎞. 우리는 산뜻하게 피어 있는 산수국, 청초한 모싯대 그리고 말나리, 일월비비추 등을 보면서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30분 남짓 걸었을까, 햇살과 바람에 온몸을 내맡기고 나비와 잠자리를 친구 삼아 예쁘게 피어 있는 둥근이질풀 군락이 나왔다. 마치 천상의 화원 같은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둥근이질풀은 법정전염병인 이질에 약효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설사를 멎게 하는 지사제로 쓰였다 한다.

국망봉(1420.8m) 정상.
 국망봉(1420.8m)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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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망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
 국망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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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둥근이질풀 등이 피어 있는 야생화 꽃길 따라 우리는 또 길을 나섰다. 드넓은 초원 같은 그 길 위에 따가운 햇살이 부서져 내렸지만 무덥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오히려 살맛 나는, 유쾌한 기분에 젖었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과 경북 영주시 순흥면 경계에 위치한  국망봉(國望峰, 1420.8m) 정상에 이른 시간이 오후 2시 40분께였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개골산으로 가던 길에 이곳에 올라 옛 도읍인 경주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과 지천으로 피어 있는 둥근이질풀이 마의태자의 한과 어우러져 왠지 처연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이곳에 4년 전에 오르고 처음이다. 여기서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 정상까지는 3.1㎞을 더 걸어가야 한다.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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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가 되어, 파란 하늘이 되어.
 잠자리가 되어, 파란 하늘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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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1439m) 정상에서.
 비로봉(1439m)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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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1439m)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은 잠자리들의 신나는 놀이터 같았다. 우리들에게도 장난을 치고 싶은 듯 정신이 현란할 정도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겨울 산행 때 매섭게 불어 대는 칼바람으로 계단 양옆으로 매어 놓은 줄에 하얀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던 기억이 새롭다. 비로봉 정상에 이른 시간은 오후 4시께.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산행의 기쁨을 서로 나누었다.

어의곡리 쪽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길에 꽃며느리밥풀을 보았다. 진분홍 꽃에 하얀 밥풀이 두 개 붙어 있는 형상으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구박하던 시절에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언젠가 아들이 장가 가면 착한 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며느리한테 용심을 부리는, 그런 지혜롭지 못한 시어머니는 결코 되지 말아야지.

저를 살게 한 강물의 소리 알아듣고
물밑 가장 낮은 곳으로 말없이 돌아가는 물고기
제가 뿌리내렸던 대지의 목소리 귀담아듣고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주는 꽃과 나무
깨끗이 버리지 않고는 영원히 살 수 없다는

- 도종환의 '다시 피는 꽃' 일부

점심 먹은 시간을 포함해서 7시간 정도 산행을 했으니 여름 산행치고 참 많이도 걸었다. 하지만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소박한 야생화, 잠자리들과 함께한 유쾌한 하루였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산행을 같이 하게 되어 더욱 멋진 하루였다. 이따금 몸을 낮추고 가까이 다가가야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야생화들을 만나면서 낮추고 사는 삶도 배웠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산행은 내겐 특별한 산행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 서울 TG→ 신갈 JC→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만종 JC→ 중앙고속도로 대구 방향→ 북단양 IC(우회전)→ 매포읍(5번 국도)→ 단양읍→ 고수대교→ (좌회전)영춘, 구인사 방향→ 아평삼거리서 (우회전)소백산, 세밭계곡 방향→ 어의곡주차장
*(대구) 금호 JC→ 중앙고속도로 춘천 방향→ 단양 IC→ (우회전)단양, 제천 방향→ 단양읍→ 고수대교→(좌회전) 영춘, 구인사 방향→ 아평삼거리서 (우회전)소백산, 세밭계곡 방향→ 어의곡주차장



태그:#소백산야생화, #소백산국망봉, #소백산비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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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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