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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국민학교와 중학교 적 이름표

대안학교나 자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름표를 붙이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또한 이름표를 붙이지 않습니다. 나라밖 나들이를 다녀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는데, 영화로 보았을 때에는 <천국의 아이들>이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나오는 이란 아이들도 이름표를 달지 않습니다. 이란 학교 아이들 숫자를 살피자면 우리 나라 학교 아이들 못지않게 많은데, 따로 이름표를 붙이지 않으면서 이름을 알고 말하는 모습을 봅니다.

요즈음 우리 나라 초등학교에서는 이름표를 붙이는지 안 붙이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학교옷을 입지 않는 초등학교라면 이름표를 안 붙이고, 학교옷을 입는 초등학교라면 이름표를 붙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거의 모두 학교옷을 맞추어 입고 있는데, 중·고등학생들은 저희가 입는 옷에 이름표를 아예 박아 놓기까지 합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1987년을 떠올리면,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이름표를 챙겼나 안 챙겼나, 또 학교 모자를 챙겼나 안 챙겼나를 살펴야 합니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가 이 두 가지를 안 챙겼다 하면 얼른 달음박질을 쳐서 집으로 가서 가져와야 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라도 챙기지 않으면, 아침에 '생활('선도부' 노릇을 하던 우리 국민학교 당번)'과 교사들이 학교 문앞에서 지키고 서 있을 때에 어김없이 걸립니다. 한 가지라도 없으면 이름을 적힐 뿐 아니라 여덟 시 반 등교 때까지 꼼짝 못하고 서 있다가 운동장 돌과 쓰레기를 줍고는 운동장 몇 바퀴를 달린 다음 교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악스러운 교사가 학교 문앞에서 지키고 서 있을 때에는 모자가 없으면 몽둥이로 몇 대, 이름표가 없으면 또 몇 대를 흠씬 두들겨맞아야 합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때 이름표. 국민학교 때 알뜰히 건사하던 '실로 이름 새긴 이름표'는 끝내 지키지 못했습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때 이름표. 국민학교 때 알뜰히 건사하던 '실로 이름 새긴 이름표'는 끝내 지키지 못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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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아이 이름을 외우지 못할 뿐 아니라 외우려 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담임이라 할지라도 반장·부반장에 몇몇 공부 잘하거나 예쁜 아이 이름만 알 뿐, 여느 아이 이름은 모릅니다. 아침만 되면 놀이터 담벼락 사이로 '먼저 학교에 들어온 아이'가 이름표하고 모자를 던져 줍니다. 그러면 담벼락 바깥에서 모자와 이름표를 받고는 낼름 내밀고 들어옵니다.

이는 중학교에 가서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이름표하고 학교 배지를 살핍니다. 더욱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이름표하고 학교 배지에다가 머리길이까지 잽니다. 아침부터 학교에서 이래저래 다그치고 꾸짖으며 윽박지를 뿐 아니라 손찌검과 몽둥이가 춤추는 일이 끔찍하게 싫었습니다. 교사들은 아주 짓궂게 다그칠 뿐 아니라 심심풀이나 성풀이를 하듯 주먹과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이런 다그침이 싫기도 한데다가 새벽부터 일찍 학교에 나와 아주 조용할 때에 책을 읽고 싶어, 국민학생 때에는 새벽 여섯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서서 학교에 일곱 시나 일곱 시 십 분에 닿았고,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에는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이나 여섯 시 사이에 집을 나서서 학교에 여섯 시 반이 되기 앞서 닿았습니다. 이때에는 학교에 숙직 교사 빼고는 아무도 없으니 이름표나 배지 다그침이란 없기도 했고, 시끄러운 소리 하나 듣지 않는 가운데 책읽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름표 뒤쪽 모습.
 이름표 뒤쪽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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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생 때에는 이름표에 이름을 실로 새겼습니다. 여섯 학년 이름표 빛깔은 저마다 달라, 이름표 빛깔을 보며 몇 학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을 실로 새긴 이름표를 여섯 해 내내 고이 건사하는 아이는 아주 드뭅니다. 신나게 뛰어놀거나 개구진 짓을 하다가 이름표를 잃기도 하지만, 얌전하게 굴며 이름표를 고이 건사해 놓고 있어도 어김없이 이 이름표를 훔치는 못된 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이름이 아니라 하여도 아침에 학교 올 때에 다른 아이 이름표를 가슴에 붙여도 교사들은 알아보지 못하거든요.

아침에만 다른 아이 이름표를 훔쳐서 쓰고, 학교에 들어오면 다른 아이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얼른 떼어 가방에 넣으면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름표를 훔치는 아이는 체육 수업을 할 때에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거나 할 때에 곧잘 훔칩니다. 저는 6학년 1학기 때까지 실로 이름을 새긴 이름표를 알뜰히 건사하고 있었으나, 2학기로 넘어서기 앞서 체육 수업을 하고 돌아온 때에 도둑맞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50원을 했던가 100원을 하던 값싼 이름표를 사서 쓰고 맙니다.

중학생 때에는 이름표에 학교 배지를 아예 붙여놓습니다. 따로따로 챙기려니 챙기기 번거롭고 쉽게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며 이제 '이름표와 배지'를 챙기지 않아도 되며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릅니다. 학교옷이라며 맞춰 입는 옷부터 하나도 곱거나 멋있지 않은데다가 비싸기까지 한데, 이름표와 배지를 붙이는 꼴은 마치 감옥소에 가둔 죄인하고 다를 바 없다고 느꼈거든요. 우리들이 마음을 기울이거나 생각할 고운 삶자락과 이야기란 참으로 많은데, 자꾸자꾸 어떤 틀에 우리 스스로를 옥죄도록 하며, 스스로 죄수번호와 같은 숫자를 외우도록 하는 일이란 더없이 고달팠습니다.

아이들 숫자가 많았다고는 하나, 한두 해를 같이 지내는 아이들이 아니요 조금만 마음을 쓰면 쉰이든 예순이든 되는 아이 이름을 외우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더구나, 교사라는 사람은 교과서 지식을 우겨넣으면 되는 기계가 아니라, 아이마다 다른 삶과 넋을 키울 길잡이입니다. 길잡이 노릇을 할 분들이 아이 이름을 몰라서야 아니 될 일입니다.

어린 나날 쓰던 연필들. 학교 운동장에서 줍기도 하고, 무슨 행사장에서 얻기도 하며, 몽당연필이 되어도 버리지 않은 연필들은 가방에 하나 찰 만큼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어린 나날 쓰던 연필들. 학교 운동장에서 줍기도 하고, 무슨 행사장에서 얻기도 하며, 몽당연필이 되어도 버리지 않은 연필들은 가방에 하나 찰 만큼 많이 남아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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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연필자루와 연필에 새긴 이름

국민학교 다니던 때에까지 연필을 쓰고, 중학교부터는 샤프펜슬하고 볼펜을 씁니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 학교에서는 볼펜을 쓰지 못하도록 했고,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볼펜을 쓰라 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연필을 쓰는 아이는 찾아볼 수 없고, 그림을 그릴 때 아니면 연필은 안 써야 하는 듯 여겨 버릇합니다. 어쩌다가 여느 때에 연필을 쓰면 "너 아직도 국민학생이냐?"하는 소리가 오갔습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에만 연필을 쓰고 중학교 다닐 때에는 연필을 안 쓴다면 숱하게 많을 연필은 모두 어디로 가야 하나 궁금했으나,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았습니다. 동무나 교사나 어버이가 하는 말은 '쓰지 말라면 쓰지 말지 무슨 소리야?'일 뿐이었습니다.

여느 동무들이 쓰던 여느 연필은 동생이 있다면 동생한테 물려줍니다. 동생한테 물려주지 못한다면 거의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동네에서 서로서로 옷을 물려입듯이 국민학생 때에 쓰던 연필도 물려줍니다. 긴 연필은 긴 연필대로 쓰고, 몽당연필은 뒤쪽을 칼로 깎아 빈 볼펜 대에 꽂아서 씁니다. 그러나 물려주지 못하는 연필은 국민학교를 마칠 무렵 쓰레기통에 꽉꽉 들어찹니다. 쓰레기통에 차는 연필이 아까워서 제법 긴 연필은 주워서 건사해 놓습니다. 그렇지만 중학생이 된 저는 연필을 섣불리 꺼내 들지 못합니다. 동무들이 짓궂게 건넬 "너 초등학생이냐? 연필 쓰게? 샤프 빌려 줄까?"하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연필은 으레 작은 칼로 깎아서 써야 하는데 교사들은 아이들이 칼을 갖고 다니지 못하도록 합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깎아 주도록 타이릅니다. 동무들 가운데 몰래 작은 칼을 갖고 다니며 쉬는 때나 낮밥 먹는 때에 연필을 깎아 쓰레기통에 연필 깎은 자국이 남아 있으면, 담임 되는 이들은 으레 소지품 검사를 한다며 주머니칼을 찾아내어 빼앗았습니다. 칼로 연필을 깎되 손이 다치지 않도록 가르친다든지, 칼로 동무를 으르거나 함부로 휘두르지 않도록 가르쳐 준 적은 한 번도 겪지 못합니다.

옆 짝꿍은 빌려 간 연필을 제 연필로 갚아 주었습니다. 옆 짝꿍 '문상희' 이름이 고스란히 붙은 연필이 제 연필 꾸러미 가운데 하나 있습니다.
 옆 짝꿍은 빌려 간 연필을 제 연필로 갚아 주었습니다. 옆 짝꿍 '문상희' 이름이 고스란히 붙은 연필이 제 연필 꾸러미 가운데 하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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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4학년 무렵이 아닌가 싶은데, 남자와 여자로 맺어 앉는 자리에서 제 짝꿍이 된 아이가 저한테 연필 한 자루를 빌립니다. 언제나 연필을 여러 벌 챙겨 갖고 다니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연필을 내어 줍니다. 다른 동무한테도 연필은 곧잘 빌려 줍니다. 다만, 빌려 주되 반드시 돌려받습니다. 몽당연필이 되든 부러진 연필이 되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갈 무렵에는 돌려 달라고 합니다. 그무렵 옆 짝꿍은 빌린 연필을 돌려주지 못합니다. 그때에는 왜 그랬는지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는데, 아마 다른 동무들하고 뛰어노느라 바빠서 잊었겠지요. 나중에 옆 짝꿍이 제 연필 한 자루를 저한테 줍니다. 돌려주지 못해 미안했는가 봅니다. 옆 짝꿍이 선물로 갚음한 연필에는 옆 짝꿍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한 장 감겨 있습니다. 지난날 국민학교에 다닐 때에 이름표 도둑뿐 아니라 연필 도둑이 참 흔했기에 '누구나 흔히 쓰는 연필'일 때에는 이렇게 스티커로 이름을 붙이든 칼로 이름을 새기든 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훔쳐 갔어도 훔친 연필임을 알아내지 못하니까요.

제법 돈 있는 아이는 제 연필에 제 이름 석 자를 새겨 놓기까지 합니다. 이름에 제 이름이 새겨진 연필을 쓰는 동무를 보며 부럽고 놀라서, 이런 동무를 흉내낸다며 연필자루 끝 쪽을 칼로 도려내고 조각칼로 이름을 새겨 보기도 했습니다. 제 이름이 새겨진 연필을 뽐내듯이 돌리면서 공책에 슥슥삭삭 글씨를 쓰던 꽤 돈있는 집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런 동무를 짝꿍으로 옆에 두는 동무는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태그:#내가 살던 인천, #인천이야기, #연필, #이름표,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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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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