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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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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가 한마디로 소 한 마리 늙어 죽는 얘기 아니에요. 소 자연사 한 이야기에 300만 명이 울었는데, 같은 시기에 용산 참사로 생사람 5명이 불에 타 죽었을 때는 3천명도 모인 적이 없어요. 소 한 마리 늙어 죽는 얘기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을 '용산'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글쟁이들의 잘못이 큽니다."

한홍구(50)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승자의 목소리로 기록된 현대사를 뒤집는다. 대중이야말로 세상의 변화를 가져온 주체이며, 역사의 현장은 시민들이 있던 바로 그곳이라고 한다. 아울러 그는 <대한민국史>를 비롯해 활발한 저작활동을 벌이며 기성언론에게도 일침을 가한다.

"용산참사, 모르는 사람 없어요. 거기에 대고 진보언론은 '사람들이 숯검댕이 됐다'라고 썼죠. 대중들이 왜 용산 참사에 관심을 안 가졌을까요? 불쌍하고 안 됐지만, 너무 참혹해서 모른 척 하고 싶은 거예요."

지난 6월초에 만난 한홍구 교수의 진보언론에 대한 일침은 계속됐다.

"용산 참사가 집 없는 사람들 얘기잖아요. 이 사건의 본질은 '40평짜리 복어집 사장님이 오죽했으면 망루에 올라갔겠느냐'는 거예요. 용산에서 복어집 사장은 먹고 살만하다는 뜻인데 왜 그 사람이 올라가서 시위를 했느냔 거죠. 재개발 과정에서 제대로 보상금도 못 받고 망할 지경에 이르니까 올라간 거 아니겠어요. 죽으려고 그랬던 게 아닌데, 그렇게 돼버렸죠.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지역 놔두고 용산이었나, 올라간 사람들, 망루에서 얼마나 뜨거웠을까, 숨막혔을까, 보고 싶었을까' 그 현장을 다뤘어야죠."

한 교수는 말과 글을 쉽게 써야 사람 마음이 움직인다고 했다.

"진보언론은 '신자유주의, 이명박이 한 짓이다'라고 썼죠.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정부의 폭력성이 어디 눈에 보이겠어요? 글 쓰는 사람들이 대중들을 바라보면서 더 고민하고 어떤 점이 잘못 되었는지 반성을 했으면 해요."

생생한 기사는 발에서 나온다. 한 교수는 이랜드 파업을 회상했다.

"엄마가 월급도 못 받고 1년 반을 투쟁 현장에 나가있어요. 그럼 '그 집 아이는 밥을 먹을까? 저녁은 뭘로 먹을까?' 궁금하지 않을까요? 그 집에 가서 냉장고 열어보고, 반찬 뚜껑 열어보는 거예요. 내 동료가 한 어머니 집에 갔더니 반찬통에 든 단무지에 곰팡이가 하얗게 폈대요. 한두 달 있어도 곰팡이는 안 펴요. 근데 거기 하얗게 곰팡이 필 정도로 있었다는 건 뭘 뜻하겠어요?"

그는 "그 당시, 언론이 불법, 폭력 파업과 기업 손실만 전달할 뿐, 파업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생활을 전해주지는 않더라"고 했다. 

언론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해야 한다. 그들의 현실과 생활을 진단하고, 실질적으로 도와야 한다. 쉬운 말과 사회 현장에서 나온 글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대중적인 언어로, 대중의 마음에 와 닿는 얘기를 해야 세상의 변화도 일어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에서 하는 얘기가 아닌, 현장에서 겪는 글이 필요하다. 기자가 비정규직을 얘기할 때는 쌍용 파업 현장과 기륭전자 파업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느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발로 뛰었을 때만 사람들이 감동하는 디테일이 나온다는 뜻이다.

"언론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써야 한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참사 발생 355일 만에 거행된 지난 1월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가 오열하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참사 발생 355일 만에 거행된 지난 1월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가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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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교수가 보여주는 언론 철학은 그의 역사관과 맞닿아 있다. 그가 대중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재창조하는 것처럼, 언론도 대중이 있는 현장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써야하는 것이다.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은 더욱 날카로웠다. 특히, 한국의 '1, 2, 3등' 신문이 언론의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좌파스님, 좌파방송, 좌파교사요? 3대 신문 중 하나가 이념 공격해도 그 나라 격이 의심스러운데, 우리나라 세 신문은 모두 똑같은 것 같아요."

보수언론은 '학교 내 친북좌파 교사들이 활동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좌파 교육이 성폭행을 발생시킨다'거나 '좌파 스님을 그냥 둘 거냐', '좌파 스님 척결', '좌파판사의 도발'과 같은 말을 그대로 받아썼다.

"반공주의가 우리 역사를 좌지우지했죠. 우리는 전쟁을 치르면서 한쪽을 말살했어요. 이념적으로 한쪽을 박멸한 것은 지구상에서 처음이에요. 대게는 서로 시민권을 인정하면서 그냥 살죠. 아무리 분단국가라 해도 진보 대 보수가 0 대 100인 건 심각해요, 그것을 보수 언론이 더욱 가중시키고 있죠."

IMF 금융 위기가 터지기 직전, 보수언론은 '증시, 위기 아니다'며 경제 낙관론을 폈다. 외국 언론에 대해 '한국경제비관 말라'고 했다. 또 '근거도 없이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다거나 불확실한 외채통계를 함부로 인용하거나 한국의 은행들이 금방이라도 연쇄 파산할 것처럼 대서특필하는 것은 언론 자유의 차원을 넘는 것'이라며 강력히 대응했다. 그러나 기사가 난 지 한 달도 채 안 돼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 이후, 경기 회복의 상승세를 꾸준히 이어가던 참여정부 시절에는 '몽유병 걸린 한국경제', '경제 먹구름이 몰려온다', '경제는 무사한가' 등 원색적인 사설이 줄을 이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3월,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여중생 촛불 시위, 북핵 사태 등을 빌미로 국가 신용등급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자 보수언론은 이를 부각하며 경제위기가 도래한 듯 연일 대서특필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에게 대북 강경 정책을 압박했다.

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북한이 없으면 보수언론의 영향력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천안함의 보도에 대해서도 "일단 북한이 공격한 걸로 덮어씌우고 구체적인 경위를 밝히지 않으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애초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점검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수언론이 '천안함, 북한 소행' 분위기를 끌어가고 대중들이 그 뒤를 쫓아간 것이다.

"조선일보는 망해도 대한민국 발전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선일보 월급이 왜 많은지 알아요? 전 세계 통틀어 기자 월급이 조선일보만큼 많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기자 월급은 월급쟁이 전체 평균보다 약간 적게 맞추는 게 사회적 합의예요. 기자는 대게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잖아요. 배고파야죠, 다른 데 가면 훨씬 더 받을 수 있게 해줘야 더러운 데스크 앞에 사표를 쓸 수 있죠. 전두환이 조선일보 월급 올려 준 다음에 연탄, 대중교통 기사 바로 사라졌잖아요. 과연, 조선일보 기자가 사표 낼 수 있을까요?"


문득, 1970년대 중반, 20년 경력의 <동아일보> 송건호 기자의 월급이 기업 6~7년 근무한 대리의 월급과 같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은 20대의 영향력을 키워야할 때"

그는 언론의 정도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새 길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지금의 20대가 새 시대의 문을 열기를 소망했다. 다음 선거는 20대들이 20대 후보를 뽑아서 20대 국회의원을 만들고 정치사회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그는 "지금 20대가 능력은 예전보다 뛰어난데, 패기와 저항이 없는 것 같다"며 "이제는 슬슬 자기 싸움을 시작할 때"라고 했다.

"지난 6.2지방선거 때 20대 서울시장을 출마시키려 했어요. 잘 안 되긴 했지만, 나는 뭐가 되든 20대 후보가 나서서 단 10%라도 득표율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대 서울시장 출마해서 공약 내는 거예요. '등록금 한 학기 100만원 시립대학 10개 만들고, 웬만한 학교 수준으로 키우겠다, 서울시 방위군을 만들어 제대한 사람에게 1년치 장학금 지급한다, 자립을 원하는 20대에게 2년 동안 보증금 없이 월세 3달치 선불만 받고 주택 빌려준다' 같은 내용으로 등록금, 주거, 병역, 청년 실업 등 20대에게 와 닿는 공약을 만드는 겁니다."

대학 정책의 지각이 변동하고, 가고 싶은 군대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 될 것이다.

지역구가 어렵다면 장기적으로 비례대표를 꿈꿀 수도 있다.

"20대 당선 안 돼도, 사표 될까봐 무서워할 필요 없죠. 사표로써 민주당 길들여야 해요. 나는 20대고 직접 참여해 보는 데 의의가 있는 거니까, 재미삼아 나올 수도 있거든. 그런데 진짜 되고 싶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 가령, 20대 후보가 나와서 10% 얻으면,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양보할 수밖에 없는 거죠. 민주당한테, 비례대표 2,3,4,5번 달라고 하는 겁니다. 만약에 서울시장 완주해서 5% 얻으면, 서울시 의회에 20대 비례대표 4, 5명 들어가요. 그리고 그 지분을 가지고 20대 사업을 하는 겁니다."

실제로 그는 "나와 홍세화, 진중권, 박노자 등 뜻을 같이 하는 진보학자를 모아 선관위를 구성하되, 당직을 갖거나 장관 감투 쓰지 않고 봉사하겠다, 꼭 투표하고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선언하는 모습도 상상하고 있었다. "20대가 정치 참여하니까 비정규직 문제나 청년 실업 문제도 해결되네, 진짜 대학 등록금이 싸졌네, 고시촌보다 나은 수준의 집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결국, 서울시에 할당된 예산을 "청년들 공부하는데 쓰느냐, 토건업체 사장 주머니 채우느냐"의 차이라면서 "내가 찍은 한 표가 청년들 희망을 만드는 데 선거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얻어낼 것인지 살펴보고 20대 스스로의 힘을 깨닫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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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20대는 세상이 변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를 보면, 부마항쟁을 비롯한 4.19와 5.18을 일으킨 것은 학생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6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김대중은 40대 때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최근에는 지금의 20대가 '미선이 효순이' 싸움을 주도했다. '광우병 사태' 때는 지금의 20대가 닦아놓은 길로 10대가 걸어 나오기도 했다. 이제는 그 영향력을 키워야 할 때다.

그는 새 시대의 주인공이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한 세대의 싸움이 끝났습니다. 민주화 세력은 이제 뒤에서 수레바퀴를 밀테니, 젊은 세대가 끌고 가야해요. 지금 20대가 새 시대의 문을 열고 나가 자기 몫을 찾길 바랍니다."

한 교수가 가르치는 성공회대의 <역사문화콘텐츠>수업에서는 현대사를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연극, 음악, 소설로 작업한다. 작년, 이 수업을 통해 노래를 만든 한 팀은 올해 <대학가요제>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의 개인 사무실에는 그곳을 아지트 삼은 사회학과 학생들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를 여러 문화 콘텐츠로 옮겨 또래와 공유하고 사회적으로 발언하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한 교수가 말하는 '새 시대'의 주인공이다.

그는 과거사 청산, 평화 박물관 건립추진, 대체복무제 등 굵직한 사회 현안의 중심에 있다. 친일파 청산, 의문사 진실 규명, 베트남 전쟁 화해, 남북한 평화 체제 구축, 군대 내 인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 대체복무제도 개선 등 그의 사회적 발언은 끊이지 않는다.

광우병으로 촉발된 '촛불항쟁' 때는 그의 동료와 거의 매일 광화문을 누볐고 '용산 참사'가 있은 당일은 여러 일을 제쳐 놓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사회와 호흡하는, 진정 발로 뛰는 학자다.

한 교수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는 배우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세명대저널리즘스쿨에서 발행하는 <단비뉴스>에 짧게 실린 글을 재편집해서 올립니다.



태그:#한홍구, #언론 일침, #20대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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