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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보 바벨탑.
 이포보 바벨탑.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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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 바벨탑 나와라! 지금 인터뷰 가능한가?"
"여기는 이포 바벨탑. 지금 합시다."

4일 오후 5시경, 경기도 여주의 이포보(댐)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의 '무전기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했다. 무전기의 버튼을 누르고 질문한 뒤에 버튼을 놓고 답변을 듣는 식이다. 처음엔 전화기로 착각해서 무전기를 자꾸 귀에 대기도 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무전기 배터리가 나가면서 인터뷰는 20여 분만에 마무리됐다. 이날 무전 내용과 전에 기자와 통화했던 대화 내용을 재구성해 보았다.

'이포 바벨탑'은 강 위에 세운 한증막

'이포 바벨탑' 위에 공사장에 널려있던 거적을 끌어모아 옥탑방을 지어놓고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14일째(4일 현재). 머리 위에서는 연일 땡볕이 내리쬐고, 발 아래에서는 습기와 물안개가 피어올라 온몸을 적시는 극한 상황. 바람이라도 불지 않으면 영락없이 한증막이다. 그럼에도 무전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염 처장의 목소리는 밝았다.

"세수요? 매일 14m 이포 바벨탑에서 두레박을 아래로 내립니다. 씻고, 빨래도 하려면 한 사람당 3통정도가 필요합니다. 용변도 봅니다. 저희가 분리수거의 대가 아닙니까? 대변 활동을 특별히 하시는 분이 우리의 대변인인데, 그 분이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별도로 모아놓고 있고요, 아마 내일쯤이면 밖으로 빼야 될 것 같아요.(하하)"

이포보를 찾은 사람들이 방명록에 그린 그림(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전송됐습니다).
 이포보를 찾은 사람들이 방명록에 그린 그림(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전송됐습니다).
ⓒ #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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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망원경으로 보니까 '옥탑방'에서 나와 책을 읽고 있는 데, 무슨 책인가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입니다. 특히 '담쟁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이곳으로 떠나올 때 블로그에도 담쟁이란 시를 올렸습니다. 이것 말고도 법정 스님의 <일기일회>, 신정섭님의 <한강을 가다> 이렇게 3권을 갖고 왔고요, 박평수 위원장님은 <생태적 경제 기적>, <함께 사는 길 7월호>, 장동빈 국장님은 <녹색평론> 등의 책을 갖고 왔는데 거의 읽었어요. 책을 보급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포 바벨탑' 바닥 넓이는 10m X 15m. 염 처장은 "우리 집보다 2배 이상 넓다"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곳에서 이들의 일과는 보통 해뜨기 직전인 오전 5시에 시작된다고 한다. 우선 밤새 쳐놓은 거미줄을 걷어내고, 각자 아침 운동을 시작한다. 요가를 하는 사람도 있고, 명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오전 7시경에 아침을 먹는데, 처음 며칠동안은 햇반을 먹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선식을 먹는다고 한다. 그 뒤에는 딱히 정해진 일과가 없다. 이포보 상황실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손을 흔들고 환호해 주거나, 아니면 햇볕을 피해 다니면서 책을 읽는 일로 소일한다고 한다. 

오후 6시에 식사를 하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가볍게 설거지를 하면 오후 8시. 상황실 쪽에서 매일 열리는 촛불 시위에 함께 참여하고 몸을 씻고 나면 오후 10시. 그때부터 또 촛불을 켜고 책을 보거나 트위터를 날리거나 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곡물을 갈아 만든 선식을 미숫가루처럼 물에 타 먹으면서 하루 세끼를 해결하고 있지만, 남아있는 분량은 이틀분 정도. 식사량을 더 줄이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단식에 돌입해야할 상황이다. 먹고 싶은 게 없느냐고 물으니, "여기가 천서리잖아요. 우리는 나가면 천서리막국수를 먹자고 결의를 했다"고 되돌아온다.

MB '불도저 정권'이 만든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염 처장의 목소리는 쾌활했지만 아무래도 염천의 더위에 고공농성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생활은 할 만하냐?"고 물으니 "여기가 콘크리트 덩어리라서 너무 덥고, 이곳이 강 위라서 습도가 굉장히 높다"면서 "햇빛이 안 비치면 옷이 축축해질 정도"라고 말했다. 

애초 텐트를 준비하긴 했지만 올라오는 과정에서 실수로 빠뜨렸단다. 대신 중간에 큰 철제 구조물을 활용해 건축자재로 얼기설기 지붕을 만들어 그 밑에 살고 있다고 한다.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비닐 등으로 가림막도 만들었다. 또 낚시 바늘을 만들기도 하면서 소일을 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포 바벨탑' 위에 고립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인 셈이다. 

이포보를 찾은 사람들이 방명록에 남긴 글귀(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전송됐습니다).
 이포보를 찾은 사람들이 방명록에 남긴 글귀(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전송됐습니다).
ⓒ #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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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염 처장을 힘들게 하는 것은 고공농성 생활 그 자체보다는 '옥탑방' 옆에서도 나보란듯이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라고 한다.

"저희가 공사를 중단시킬 힘은 없어요. 다만 이렇게 항의를 하거나 저항하는 상황이라면 도덕적인 내지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공사에 대해서 재검토를 하거나 속도를 조절해 주는 게 바람직한데, 공사를 진행하는 측은 그런 정도의 인정이라든지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쉽습니다."

염 처장은 이어 "농성을 하면 이명박 정부가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여 줄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국민의 목소리를 이렇게 무시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끔찍한 정부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때론 가족들이 눈물이 날만큼 보고 싶다고도 했다. 멀리서 "아빠 사랑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두 딸이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상황실을 지키는 관계자에 따르면 "어제도 염 처장의 가족들이 와서 계속 울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이렇게라도 4대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컸을 때 훨씬 부끄럽고 미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장을 '탐방코스'로 만들다 

'이포 바벨탑'을 격려차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그에게는 큰 위안이라고 한다. 상황실에 따르면 현재까지 이 곳을 방문한 사람은 적게는 2천 명에서 많게는 3천여 명 정도. 고공농성장을 이처럼 탐방코스로 만든 것도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강화도에서 왔다는 두 명의 시민이 상황실 주변에 깃발처럼 걸려있는 방명록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강화조형문화예술연구소 김은미씨는 "왠지 미안해서 3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일부러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이포보 시공사 측은 고공 농성자들을 향해 '이포보에 올라간 목적이 달성됐으니 이젠 내려오라'고 말을 한다. 염 처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민들에게 많이 알렸다는 측면에서 보면 성과가 있긴 한데, 정부가 요지부동이기 때문에 사실 실질적인 성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쓰러질 때까지 최대한 노력을 할 겁니다. 사회적인 논의 기구라도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야당에서 국회에 특위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그런 형태라도 꼭 추진됐으면 좋겠습니다."

- 국회 차원의 4대강 사업 조사특위가 마련되면 내려 올 수 있다는 말인가요?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고맙게 생각하고 내려갈 겁니다."

- 여권에서는 특위 구성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은데... 언제까지 농성을 지속할 생각인지?
"처음에는 농성이 빠른 시일 내에 진압될 것으로 봤습니다. 열흘 정도쯤이면 저쪽에서 우리를 끌어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정부 측에서는 그냥 두겠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단식을 포함해서 우리의 뜻이 받아들여지는 순간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서 끝은 지금 장담할 수 없습니다."

소나기가 물러간 후 이포보 풍경(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전송됐습니다).
 소나기가 물러간 후 이포보 풍경(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전송됐습니다).
ⓒ #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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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처장에게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이유를 세 가지만 들어서 설명해달라고 했다.

"첫 번째로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새 한 마리의 무게가 내 목숨의 무게와 같다고 하는데 지금 4대강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규모 공사로 순식간에 생명들이 피하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윤리의 측면에서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는 당초 사업비가 22조 원이었는데,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30조가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막대한 예산을 효용성이 없는 사업에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국민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절대 다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바른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잘못된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적 논의에 부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주장하는 홍수 예방 효과와 수질 개선 효과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작은 홍수로 11명이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4대강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번 홍수 피해도 예방할 수 없습니다. 홍수가 나는 것은 본류가 아니고 지류입니다. 또 관리가 부실한 도시지역이기 때문에 대규모 토목사업이 아닌 소규모 지천 관리를 통해 해소해야 합니다.

물 부족으로 시달리는 곳은 산간지방입니다. 이런 곳들은 4대강에 댐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물을 끌고 갈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의 농촌 지역도 수돗물 공급이 잘 안 되는 지역이 있는데, 4대강 사업에 의해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입니다."

환경연합 활동가 3명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경기도 여주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7월 29일 오후 이포보 부근 '대신 희망 장승공원'에서 열린 '4대강 공사 중단과 대안기구 마련 촉구 이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농성자들의 이름을 외치며 격려하고 있다.
 환경연합 활동가 3명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경기도 여주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7월 29일 오후 이포보 부근 '대신 희망 장승공원'에서 열린 '4대강 공사 중단과 대안기구 마련 촉구 이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농성자들의 이름을 외치며 격려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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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처럼 강 위의 '명박산성'을 넘는 사람들

- 그렇다면 지역개발 효과는?
"이포보의 경우도 3163억짜리 공사인데 인부들은 50여 명에 불과합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입니다. 고용창출이라는 측면에서도, 환경파괴라는 측면에서도 지역발전에 도움이 안 됩니다."

-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나 정치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은?
"우선 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좀 더 견뎌달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보다 더 바쁘게 지원업무를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국민들께서는 4대강 사업의 본질에 대해서 잘 살펴주시고 정부의 각성을 위해서 전화라도 한번 해주시고 인터넷으로 4대강 사업의 본질을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이곳에서 고공농성장은 '이포 바벨탑'으로 불린다. 상황실에서 무전을 칠 때도 '이포 바벨탑 나와라'라고 외친다. 이들은 왜 고공 농성장을 '이포 바벨탑'이라고 칭하는 것일까?

"바벨탑은 인간의 오만, 인간의 무지가 만들어낸 탑이잖아요. 결국 징계받은 탑입니다. 우리는 4대강 사업이 엄청난 죄업을 짓는 무지의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죄가 하늘에 닿으면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바벨탑이라고 칭했고, 바벨탑이 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2일 경기도 여주군 이포보 농성장을 방문한 문규현 신부가 농성자들을 향해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고 있다.
 2일 경기도 여주군 이포보 농성장을 방문한 문규현 신부가 농성자들을 향해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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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처장이 좋아한다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 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3명의 환경운동가들은 지방선거 참패에도 불도저처럼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가 강을 가로막고 세운 '명박산성'을 말없이 올랐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 상황실을 찾아와서 그 벽을 함께 오르고 있다. 그 발자욱들은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절망의 콘크리트 벽에 실뿌리를 깊게 박으면서 오르고 있다.   

다음은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시 전문이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덧붙이는 글 | *6일 오후 상황실에서 취재해 온 후배 기자에게 전화를 하니, 선식이 다 떨어져서 추가로 선식을 올려보내줄 예정이며, 경찰도 '이포 바벨탑' 밑의 상판에 3-4인용 텐트를 치고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도 '명박 산성'에 함께 오른 셈(?)이다.



태그:#4대강, #염형철, #이포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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