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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 하늘도시 조감도
 영종 하늘도시 조감도
ⓒ 영종하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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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오늘도 나의 옆자리 동료 박 주임은 깊은 한숨부터 쉬고 업무를 시작한다. 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아파트를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월차까지 내서 은행을 왔다갔다 하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의 앞에서 아파트의 '아'자도 벙긋하지 못 한다. 떨어지는 아파트 가격에 그는 요즘 웃음마저도 잃었다.

박 주임 앞에선 아파트의 '아'자도 꺼내지마

박 주임이 분양을 신청한 곳은 영종도 하늘 신도시. 그가 굳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가며 영종도 하늘 신도시에 아파트 분양을 신청한 것은 그의 고향이 바로 영종도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영종도와 가까운 인천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던 그에게 정부가 제시한 영종 하늘 신도시의 조감도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공항을 전제로 개발되는 영종도의 집값이 어찌 떨어지겠냐던 그의 생각.

그러나 문제는 이후 아파트 집값이 떨어지면서 시작됐다. 기존의 집을 판 뒤 영종도 부모님 집에 얼마 정도 기거하다가 아파트가 완성되면 들어가려 했던 박 주임의 계획이 기존의 아파트가 제 값을 못하게 되면서 처음부터 틀어지게 된 것이다.

5년 전 2억 4천에 들어갔던 아파트가 현재 2억 5천만 원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 현실. 은행 대출 이자는 매달 자신의 수입의 1/5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박 주임은 어떤 해결책도 가지지 못한 채 꼬박꼬박 그 이자 갚는 데 힘겨워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그 고통은 박 주임만 짊어진 것이 아니다. 함께 고향에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출가한 형님, 누나 등 박 주임 집안 모두가 영종 하늘도시로 분양을 신청한 것이다. 그러니 박 주임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갈 수밖에. 덕분에 박 주임은 예전과 달리 6·2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안상수 전 시장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고 한다. 그를 뽑아야 기존의 토목사업이 유지된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인천 시민들은 송영길 전 의원을 뽑았고, 현재 박 주임은 그 송영길 시장이 전 시장이 벌여 놓은 토목·건축사업들을 축소하는 건 아닌지 늘 노심초사하고 있다. 성남시의 모라토리움 선언에서 볼 수 있듯이, 부동산 폭락과 함께 인천의 하늘도시의 건설도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과연 아파트가 건설되더라도 기존 계획처럼 사람들이 입주하여 새로운 신도시가 탄생할 수 있을까? 현재 지방은 미분양도 모자라 평당 백 만원에 땡처리되는 아파트까지 속출한다는데 하늘도시는 유령도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래저래 박 주임의 한숨은 깊어만진다.

부동산 투기꾼? 그냥 보통 서민입니다

아파트를 향한 욕망은 이제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다. 그 거품의 여파는 고스란히 서민들이 떠안고 있다.
 아파트를 향한 욕망은 이제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다. 그 거품의 여파는 고스란히 서민들이 떠안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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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지만, 어쨌든 아파트 가격 상승을 전제로 은행 대출을 받아 자산을 투자한 박 주임.

그는 결코 전문적인 투기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위 서민으로 분류되는 지극히 소박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며, 근 10년간 모은 돈으로 인천항 주변의 30평 남짓 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의 영종 하늘도시 아파트 분양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을 통한 자산증식이 얼마나 일반화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일 뿐이다.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저금이 더 이상 효용가치를 갖지 않은 지금, 부동산 불패의 신화야 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고 있는 자산증식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들을 보라. 강남의 벼락부자부터 시작해서 아파트 매매를 통해 자산을 모은 복부인, 고속도로가 깔리는 땅을 가지고 있다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까지. 비록 착실한 노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 사회는 그와 같은 자본의 운용도 능력이라 칭송하고, 억울하면 너도 하라며 부추겨왔다. 물론 추후에 고위 공직자와 같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조금 부끄럽기야 하겠지만, 그 역시도 미안하다는 한 마디면 해결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 아니던가.

다들 그렇게 돈을 불리는데, 누가 고상한 척하면서 쉽게 벌 수 있는 돈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자본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돈을 굴리는 재주가 어설프게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호시탐탐 돈 놓고 돈 먹는 시장을 곁눈질 할 수밖에. 투기는 재테크로 탈바꿈되었고, 노동은 재테크를 위한 종잣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결국 현 정부의 탄생은 이와 같은 욕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을 억제할 것이라 믿었던 참여정부 때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람들은 정부의 시장에 대한 통제능력을 불신하게 됐다. 역으로 그 욕망을 추종하게 되면서 그 정점에 선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시켰다. 그의 당선이 곧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리라 착각한 것이다. 대운하를 파면 그 주변의 사람들은 부자가 될 것이고, 재개발을 하면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돈벼락을 맞을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착각.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그 부동산 신화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현 정권 하에서 폭등할 것 같던 집값이 오히려 폭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균열이 정부의 단기적인 정책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저출산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이유에 기인한다고 하니, 회복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조정해 왔지만 이제는 그 한계까지 도달한 것이다. 21일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불발로 그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위기의 징후이다.

결국 이와 같은 부동산 폭락에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박 주임과 같은 서민이다. 부동산 시장의 전체적인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해, 소위 '끝물'을 타는 건 가장 정보력이 부족한 서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다시금 돈을 푼다고 생색을 내고 있지만 그 돈은 결코 서민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서민들로부터 일정자본을 받을 수 없는 건설사들에게 흘러갈 뿐이다.

부동산 거품, 그 여파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최근 친서민 행보를 천명한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강서구 화곡동 까치산시장을 방문해 분식집에서 만두를 맛보고 있다.
 최근 친서민 행보를 천명한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강서구 화곡동 까치산시장을 방문해 분식집에서 만두를 맛보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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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박 주임은 속수무책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팔릴 생각을 않고 있고, 또 만약에 팔려서 영종도로 간다고 한들, 영종 하늘 도시가 초반의 장밋빛 꿈처럼 최적의 주거 환경을 갖춘다고 생각하기도 요원하다.

뾰족한 수가 없는 탓에,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박 주임. 그러나 이렇게 계속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간다면 그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이야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은행이자를 갚아 나가고 있지만 3개월 뒤 둘째가 태어나면 그만큼 부담이 늘 것이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저당 잡힐 수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이와 같은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이다. 토목자본과 결착한 현 정부는 현재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유지를 위해 위와 같은 부동산 발 경제위기를 연착륙시키기보다는 임시방편적인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고통의 총량만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비록 친 서민을 외치고 있지만 서민들의 세속적 욕망만 부추길 뿐,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는 그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부동산 폭락은 토목이 비정상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우리의 산업구조가 정상이 될 때까지 앞으로 계속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부동산 자산을 근거로 치솟았던 우리의 욕망의 거품이 꺼지는 과정이 될 텐데, 아마도 많은 서민들이 그 여파로 인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이 고통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그것을 최소화 시키고 관리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부디 정부가 이와 같은 위기관리의 필요성을 빨리 인식하길 바란다.


태그:#아파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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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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