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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수 킬로미터 떨어진 해변공원에서 불꽃놀이 대축제가 열리고 있는 나가사키. 가운데 푸른빛의 조명을 발하는 곳은 '여신의 다리'라고 불리는 신축 대교다. 나가사키의 야경은 시내 곳곳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백만 불의 야경'이라 불린다.
▲ 나가사키 대학 병원에서 바라본 불꽃놀이 멀리 수 킬로미터 떨어진 해변공원에서 불꽃놀이 대축제가 열리고 있는 나가사키. 가운데 푸른빛의 조명을 발하는 곳은 '여신의 다리'라고 불리는 신축 대교다. 나가사키의 야경은 시내 곳곳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백만 불의 야경'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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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참 좋아한다. 불꽃놀이뿐 아니라 크고 작은 규모의 축제가 전국 각 지역마다 발달해 있다. 특히 요즘 일본열도는 전국 곳곳에서 불꽃놀이 축제가 한창이다. 어린 아이가 엄마 손을 잡거나 아빠 품에 안겨 불꽃놀이를 보러 나오기도 하고,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젊은 아들 딸들이 손자까지 대동해 3대가 나들이에 나서기도 한다. 젊은 언니 오빠들, 어린 누이들이 꽃단장을 하고 외출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꽃놀이가 가까워 오는 시각이면 시내는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수 년 전, 월드뮤직을 전문으로 방송하는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 목소리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음악을 지어내고 연주하는 재주는 없어도 듣는 귀는 있다며 세계 각국의 음악에 대해 '귀 명창'을 자칭하던 내가 직접 선곡한 6곡의 월드뮤직을 직접 소개하는 청취자 참여 코너였다. 방송 녹음을 위해 사전에 작가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그 본인도 음악을 하는 예술적 끼가 농후한 작가였던 때문일까. 이메일 뒤꼭지에 "불타는 주말을 보내세요"라는 인사가 달렸다. 어떻게 보내야 '불 타는가'하고,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어떻게 주말을 불태우나' 하는 호기심이 문득 들었다.

축제가 있는 곳이면 팥빙수, 타코야키, 각종 먹거리 등이 가득한 노점들이 줄지어 선다. 유타카를 입고 꽃단장을 한 여학생들도 저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다양한 간식거리를 입에 물고 다닌다.
▲ 축제 현장에 늘어선 노점 축제가 있는 곳이면 팥빙수, 타코야키, 각종 먹거리 등이 가득한 노점들이 줄지어 선다. 유타카를 입고 꽃단장을 한 여학생들도 저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다양한 간식거리를 입에 물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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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가사키와 일본 방방곡곡이 7월 중순부터 주말 저녁마다 불꽃놀이로 불타오르고 있다. 하늘도 불꽃으로 타오르고, 젊은 언니 오빠들의 가슴에도 불꽃이 튀어오른다. 불꽃놀이는 남녀노소가 즐기는 축제지만, 특히 진풍경은 불꽃놀이를 보러 외출 나온 10대 소녀들이 알록달록 다양한 유카타(여름 기모노)를 입고, 머리에는 꽃을 꽂고 나막신을 또각또각 신고서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는 장면이다.

학창시절, 선생님이나 외부 손님들이 학교를 오면 꼭 하는 말이 "여러분 때에는 뭘 입어도, 얼굴에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아도 전부 예뻐요"였다. 그런데 내 눈에도 꼭 그렇게 보인다. 때로는 과도하게 샛노란 염색을 하거나, 눈화장을 심하게 해서 살짝 거부감이 드는 친구도 있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전차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이 소녀들의 유카타 입은 모습이 참 사랑스럽고 활기차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행복해질 정도다. 

바다 축제와 함께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해변공원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올해 일본의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인 드라마 '료마전'을 매개로 한 사마모토 료마 드라마 홍보 퍼레이드도 있었다.
▲ 불꽃놀이 보러 가는 길 바다 축제와 함께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해변공원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올해 일본의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인 드라마 '료마전'을 매개로 한 사마모토 료마 드라마 홍보 퍼레이드도 있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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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대규모 불꽃놀이 축제를 구경한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4월 26일, 나가사키 시내의 항구 쪽에는 뉴욕의 센터럴 파크못지 않은 멋진 공원이 하나 있다. 도심 한가운데는 아니지만, 해변에 넓게 펼쳐진 이 공원에서 그해 봄 '범선 축제'가 열렸고, 주말 밤에는 대규모 불꽃놀이가 있었다.

일본에 온 이래로 뭐든 작은 정보라도 필사적으로 주워 담아온 기자는 토요일에 강연회와 뒤풀이를 마치고, 혼자서라도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공원으로 달려갔으나 바람이 거세어 행사가 취소되고 말았다. 꿩대신 닭이라고 그대로 발길을 돌릴 수가 없어 그날 밤은 한국에서 출항해 온 범선에 들어가 한국인, 일본인, 캐나다인, 러시아인과 뒤섞여서 흰 밥에 다국적 술을 마셨다. 그리고 이튿날 다시 나홀로 해변을 찾았다. 관광지에 살고 있는 덕분에 걸어서 5분이면 불꽃놀이 해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직은 저녁이면 찬 바람이 불었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촌 사람이 생전 처음 도시 구경 나온 마냥, 꼬마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영화 촬영 현장이라도 구경하는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놀이문화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했던 기자에게는 불꽃놀이 역시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 그림의 떡이었다. 지난해 내 생애 첫 불꽃놀이 나들이에서는 '아, 이런 건 남자친구랑 봐야 하는데. 혼자 보기 참 아깝네'라고 생각하며 사진기만 찰칵찰칵 눌러댄 기억이 있다.

지난 해 봄, 나가사키 해변공원에서 세계각국 범선 축제와 동시에 열린 불꽃축제.
▲ 범선축제와 함께 열린 지난해 봄 불꽃축제 지난 해 봄, 나가사키 해변공원에서 세계각국 범선 축제와 동시에 열린 불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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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불꽃놀이 축제는 7월 내내 열리고 있다. 보통은 7월 중순부터 시작되어, 현재 나가사키에서도 불꽃놀이가 주말마다 열리고 있다. 지지난주에는 범선 축제와 함께 토,일요일 밤 각각 1000발 씩의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그리고 지난 주말 밤에는 각각 5000발씩의 불꽃이 도시의 밤을 수놓았다.

기자는 유카타를 입고 불꽃놀이를 갈 만큼 어리지도 않고, 유카타와 나막신을 사 신을 물질적 조건과 심리적인 의욕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지난 주말 밤에는 대학병원 10층 휴게실에서 불꽃놀이를 관람했다. 며칠 전부터 남자친구가 병으로 입원해있는 나가사키 대학 병원 10층에서는 이날 밤, 쉼터의 전기불을 전부 소등했다. 어둠 속에서 멀리 항구쪽의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서로 몇 호의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각자 따로 모인 환자와 간호사와 가족과 친구가 뒤섞여 조용히 잠들고 싶은 병실의 환자 분들께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매우 얌전하게 불꽃놀이를 즐겼다. 종종 속삭이는 목소리로 여기저기서 "와, 크다." "아, 예쁘다.", "대단하다"를 외치는 나직한 감탄사가 들려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젊은 언니들. 백화점은 축제 현장과 가까이에 있어서 젊은 청춘남녀가 서로 만나는 기다림의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 해변 가까이에 있는 시내 대형 백화점 횡단보도를 건너는 젊은 언니들. 백화점은 축제 현장과 가까이에 있어서 젊은 청춘남녀가 서로 만나는 기다림의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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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몇 주 전부터 불꽃놀이 일정을 꿰뚫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본 남자친구는 자신이 큰 병으로 입원해 있으면서도,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명당자리를 알아 뒀어.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여기가 불꽃놀이 일등석이래"라며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해서 기자는 그날 밤 대학병원 10층의 휴게실 '1등석'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해변공원의 불꽃놀이 축제를 끝까지 다 보았고, 병원의 밤은 그렇게 조용히 저물었다. 노면전차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류장과 전차 안, 시내 거리 곳곳에서 또 다시 유카타를 입은 어여쁜 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도 사진기 속에 브이자를 열심히 새기며 추억을 많이 만들었겠지. 남자친구랑 뽀뽀도 하고 여자친구들끼리 맛있는 포장마차 간식거리도 잔뜩 먹었겠지. 밤하늘에 떠오른 하트 모양의 불꽃처럼 나가사키의 여름밤은 낭만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



태그:#불꽃놀이, #여름휴가, #일본, #여행,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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