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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9일 <심리극장 청자다방>에 모인 '어르신사랑연구모임' 회원들. 이 날의 주제는 <감정으로부터 편해지기>.

 

우선 자신이 친하게 느끼는 감정(화와 분노 / 슬픔 / 두려움, 불안, 공포 / 수치심, 죄책감, 모멸감)에 따라 네 가지 색깔 의자 주위에 모여 앉았다. 그리고는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만난 사람도 있지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은 아니다.  

 

 

스스로 심리극의 주인공이 되어보겠다고 자청한 40대의 주부가 앞에 나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늘 우울하고 슬프다고 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누워서 잠을 자거나, 오히려 일정을 촘촘하게 짜서 정신없이 돌아친다고 했다.

 

의자를 밤 12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시를 가리키는 시계 바늘처럼 놓고 일부러 바쁘게 만든 하루 일과를 몸으로 표현하도록 하니 그의 발걸음이 쉬지 않고 의자 사이를 종종거리며 돌고 또 돈다.

 

지도자는 차분하면서도 핵심을 짚어내는 질문을 한다. 때로는 눈물과 함께, 때로는 생각에 잠긴 눈빛과 함께, 때로는 고함 소리와 함께 그가 겪고 있는 감정들이 드러난다.

 

첫딸을 둔 40대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는 두 번째도 딸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그만 두 살 즈음에 죽는다. 그리고나서 태어난 딸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데, 병약한 이 아이는 홍역을 심하게 앓아 사경을 헤맨다. 심리극 진행 중 어느 사이엔가 어머니가 된 그는 종이 방망이를 의자에 내려치며 울며 불며 자기의 팔자를 한탄하고 화를 낸다.

 

...딸 잡아 먹은 어미라고 구박하는 시어머니,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는 남편, 젖도 제대로 못 먹이고 떠나보낸 둘째 딸, 아픈 세째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세째마저 또 잃을까봐 무섭다, 그런데도 죽은 둘째가 생각 나 세째에게 젖도 제대로 못먹인다, 그저 내 팔자가 원망스럽고 한스럽다...

 

죽은 둘째를 만나고 싶다는 어머니(주인공이 자신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중이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나와 죽은 둘째가 되어 그 앞에 선다. 서로 못다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녀. 한 번은 어머니가 되었다가 한 번은 두 살에 죽은 어린 딸이 되었다가 하면서 수시로 역할을 바꾸어 상대의 자리에 서본다.   

 

재회하고 있는 두 모녀 옆 바닥에는 또다른 참가자가 심한 홍역을 앓고 있는 세째가 되어 검은 천을 덮고 누워있다.

 

당장이라도 너한테로 가고 싶다며 우는 어머니에게 어린 딸은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모녀의 이별의식. 안아주고, 못다한 사랑을 상징하는 예쁜 천을 옷처럼 입혀 떠나보낸다.

 

이번에는 어머니와 몹시 앓고 있는 세째와의 이야기. 세째는 죽은 둘째(언니)만 생각하며 자기를 봐주지 않는 어머니에게 화가 나고 서운하고 슬프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세째 역시 역할을 수시로 바꿔가며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어머니, 어머니가 봐주지 않아 슬프고 화가 나서 죽고 싶은 마음에 계속 아팠다는 딸,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모녀는 다정히 안고서 영원히 서로 떨어지지 말자고,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런 약속을 상징하듯 굵은 천이 두 사람의 허리를 동여맨다.

 

한몸으로 묶인 두 사람이 함께 옆으로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10년 씩 세월이 더해진다. 이 때 주인공은 어머니가 아닌 딸, 즉 자기자신이 되어 이야기를 한다.

 

...엄마한테 화가 났었다고 말하는 두 살 딸...전학을 오니 아이들이 사투리를 쓴다고 놀려서 속상하다고 응석을 부리는 열 두살 딸...연애한다는 고백을 하는 스물 두살 딸...(행복한 순간이 잠시 이어지더니 한 걸음 더 옮기자 갑자기 딸이 울음을 터뜨린다)...두 아들을 두고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며 슬프게 우는 서른 두 살 딸...대학원에 다니면서 논문 쓰고 있다며 자랑하는 마흔 두 살 딸...

 

어머니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하기도 하고, 함께 부둥켜 안고 울기도 하고, 장하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영원히 함께 있기로 했던 약속을 다시 한 번 깨우쳐준다. "니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엄마는 니 옆에 있어!"

 

 

실제로 주인공의 어머니는 주인공이 서른 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산 자의 죽은 자의 길이 다르고 그 자리가 엄연히 구분된다는 것은 이미 인정했기에 어머니와 죽은 둘째 딸처럼, 어머니와 세째인 주인공도 이제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다.

 

딸은 어머니를 안았다가 놓고 안았다가 놓기를 반복한다. 원할 때 언제든지 옆에 있어주겠다는 어머니의 약속에 드디어 딸이 말한다.

 

"엄마, 이제 가도 돼! 이제 언니한테 가도 돼!"

 

주인공은 어머니도 되었다가, 어려서 죽은 둘째(언니)도 되었다가, 자신의 어린시절로 돌아가기도 하면서 자기 안에 있던 여러가지 감정을 표현했다. 슬픔, 화, 서러움, 외로움, 미움, 원망...

 

어머니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음을 토해낼 때, 어머니와 죽은 둘째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때, 역시 어린 아기였던 세째가 홀로 누워 외로웠다고 고백할 때 나는 울었다.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 평소에 들여다보지 않았던 느낌들이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은 "늘 슬프고 우울한 나 자신의 감정을 만나보고 싶었고, 그 감정에서 편해지고 싶었는데 심리극을 통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심리극 지도를 마친 최대헌 심리극장 청자다방(http://www.kmcri.com) 대표는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란 없으며, 다만 적절한 감정과 부적절한 감정이 있을 뿐"이라며 "정서적 능력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정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기분과 함께 움직이므로 감정으로부터의 자유를 통해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나는 솔직히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어 일상이 늘 피곤하고 짜증스럽다. 고3 엄마인 내 처지만 탓했는데, 이럴 때일수록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내가 행복하고 편안해야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고 편안한 것은 당연한 일. 내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들여다보며 나를 좀 안아주고 다독여줘야겠다. 


태그:#심리극, #심리극장 청자다방, #청자다방, #감정, #싸이코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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