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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시 성환읍에 살고 있는 박민수(가명.50)씨. 1톤 트럭에 채소를 싣고 행상을 하는 박씨는 고혈압에 왼쪽 다리까지 아파 2년 전 장사를 포기했다. 건강이 안 좋아 다른 일에도 손을 댈 수 없었다. 무직 뒤 여동생이 매달 보내주는 10만원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다. 작년 여름부터는 여동생의 아들마저 실직되어 생활비 지원이 끊겼다.

방 한 칸에 난방도 없이 지내며 건강은 더 나빠졌다. 병원은 갈 수 없었다. 다달이 밀린 건강 보험료가 족쇄였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한 여건에 체납된 건강보험료가 60여만 원을 넘었다. 보험료 체납으로 병원 이용을 못해 건강은 갈수록 악화됐다.

지난 5월 한줄기 빛이 비쳤다. 천안시 서비스연계팀의 도움으로 충남도 공동모금회에서 100만 원을 지원받아 그동안 밀린 건강보험료를 모두 납부했다. 병원에 다시 걸음할 수 있게 됐다. 6월부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조건부 수급자로 책정되어 건강보험료 부담에서 풀려났다.

시민 10명 중 1명, '아파도 치료 못 받아'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병원 이용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은 건강보험료 지원 시책 마련을 촉구하는 캠페인 광고의 모습.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병원 이용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은 건강보험료 지원 시책 마련을 촉구하는 캠페인 광고의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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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료가 체납됐다고 모든 사람이 민수씨같은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료가 6회 이상 체납되면 건강보험 급여 제한으로 병원 이용에 제약을 받는다.

병원 출입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되면 그만큼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많아져 병원 이용이 힘들어진다. 아파도 병원을 멀리하게 되면서 이들은 의료사각지대로 전락하게 된다.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인한 급여제한은 주로 지역가입자에서 발생한다. 직장 가입자는 월 급여액에서 보험료가 원청징수되고 납부 의무가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에 체납되더라도 사용주에게만 급여 제한이 이루어진다.

천안은 다른 지역보다 건강보험료 체납 비율이 높다.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09년 6월 기준해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내지 못해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된 체납세대의 전국 지역가입자 대비 비율은 20.1%. 천안은 23.4%로 전국 평균을 상회한다.

건강보험료 체납에 따른 병원 이용의 제약은 또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백석대 산학협력단은 지역 주민 1백88명을 대상으로 보건의료분야 복지욕구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국민건강보험 가입율은 직장의료보험 50.8%, 지역의료보험 41.2%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86.1%는 건강보험료 체납 경험이 없었지만 12.3%는 과거에 보험료를 체납한 경험이 있었다.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건강보험 사용을 제한받은 기간은 3개월 이내가 58.8%로 가장 많았다. 6개월에서 1년 이내도 17.6%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1년간 아파서 치료를 받지 못한 경험은 10.2%로 나타났다. 원인은 응답자 16명 중 60%가 '경제적 이유'를 꼽았다.

백석대 산학협력단은 건강보험료를 내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이 다수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지원 대상 확대해야

저소득층이 소액의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병원 이용을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천안시는 지원 시책을 시행하고 있다.

2009년 1월부터 시행중인 '천안시 저소득층 국민건강보험료 및 장기요양보험료 지원조례'가 그것이다. 조례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건강보험료 월 부과금액이 1만1000원 미만인 65세 이상 노인 세대, 장애인 세대, 한부모가족 세대는 시에서 매달 건강보험료가 지원된다.

올해만해도 1월부터 6월까지 1만2190세대, 한달 평균 2천31세대에 건강보험료가 지원됐다. 세대별 분포는 노인세대가 절반을 넘는 65%를 차지했다. 장애인세대와 한부모세대가 각각 28.3%, 6.6%로 나타났다. 6개월간 지원된 건강보험료의 총액은 6400만원. 천안시는 올해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지원 예산으로 1억6800만원을 편성했다.

건강보험료 지원 조례 제정과 시행으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제도권 밖 저소득층이 어느정도 도움을 받고 있지만 현행 제도만으로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타 자치단체와 견줘볼 때 이런 주장은 설득력 있다.

포항시는 건강보험료 지원 범위가 월 1만원 이상, 1만5000원 미만으로 천안보다 폭 넓다. 대상도 20세 이하 소년소녀 가장세대, 국가유공자 세대, 만성질환자 및 희귀난치성환자가 있는 세대까지 포괄한다. 서울시 중랑구, 용산구, 인천 서구는 노인이나 장애인, 한부모 세대 외에도 '기타 보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구청장이 인정한 세대'라는 기준을 두어 그 밖의 소외계층까지 아우른다.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김진영 간사는 "천안시도 하루 빨리 조례를 개정해 만성질환자 및 희귀난치성 환자가 있는 세대, 그 밖에 보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방자치단체장이 인정한 세대 등으로 지원대상을 확대, 빈부격차에 따른 건강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안시 생활보장팀 관계자는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지원 대상 확대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확대 시행 여부를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84호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안시, #건강보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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