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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했다. 글쓰기 아마추어들이 작정하고 덤볐다. <오마이스쿨> '세상과 소통하는 생활․취재글쓰기(광주)'를 듣는 수강생들이 '지리산 둘레길' 취재에 나섰다.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00km를 걷는 도보길로, 현재는 남원시 주천에서 산청군 수철까지 70여km가 열려있다. 개통된 지 이제 갓 3년 됐지만, 올레길과 더불어 전국에 걷기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둘레길 기획 제 1부는 시범구간으로 지정돼 둘레길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매동마을에 돋보기를 들이댔고 2부에서는 매동~금계구간을 다뤘다.... 기자 주

지난 10일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정마을. 마을회관 앞 주차장에는 차가 여러 대 주차돼 있었지만 여행객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서 할아버지는 "방금 전에도 서울 사람들이 많이 와서 출발했다"며 "아마도 하루 종일 사람들 방문이 끊이질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산내면 근처의 농협 하나로마트 직원 역시 "주말이면 쉴 새 없이 사람들이 찾아온다"며 매동마을의 인기를 전해 주었다.

세 번째 걷기, "혼자 민박까지 해보는게 소원"

매동마을을 지나 지리산 둘레길 입구에 들어서자 선명한 붉은색 화살표가 여행자를 안내했다. 산길을 지나 숲길로 들어설 무렵 뒤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여행자가 있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 더운 여름인데도 긴 팔 등산복에 등산화, 모자, 배낭 등을 완벽하게 갖췄다. 전주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다는 김수정(여, 48)씨였다. 그녀는 "혼자 여행을 자주하는데 둘레길만 세 번째"라며 둘레길 얘기에 마스크를 벗고 손짓과 표정까지 곁들이며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매동마을 입구에서 만난 김수정 선생님과 중황마을 쉼터에서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수정 선생님과 함께 매동마을 입구에서 만난 김수정 선생님과 중황마을 쉼터에서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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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은 각 구간마다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운봉-인월 구간은 논둑을 따라 조용히 길을 음미하면서 걸을 수 있고, 인월-금계의 장항마을까지는 산길로 좋은 공기와 산을 즐길 수 있어요."

각 구간의 매력을 흠뻑 느끼고 온 듯한 표정에서 금계까지 종주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김 교사는 오르막길이 이어져 말을 잇기 힘들어지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전주에도 둘레길 닮은 길이 3개 있어서 전북도민일보에 여행기를 써보려고 했어요. 여행하고 글 쓰는 쪽에 관심이 많답니다. 둘레길은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친구며 걷는 것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또 걸으면서 혼자서 생각하고, 느끼는 기쁨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로 교사 생활이 20여 년째인 김씨는 교사 생활이 힘들어 자신에게 휴식을 주자는 생각에 2년 전부터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주말이면 등산을 다니거나 가까운 걷기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둘레길은 참 신기해요. 모르는 사람인데도 길에서 만나면 서로 아는 사람처럼 웃으면서 인사를 하게 되더라구요. 처음에는 혼자 걷는 길이 무서웠는데 마을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혼자 걷는 게 편해졌어요. 앞으로는 길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꿈을 키우면서 혼자 민박까지 해 보는 게 소원이랍니다."

은퇴한 나그네의 '돌아보는 재미'

산길이 끝나고 확 트인 밭고랑 사이를 걷다보면 중황마을 입구에 이른다. 중황마을 쉼터는 지리산 봉우리들이 멀리 보이고 푸른 밭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경사진 땅에 위치해 있다. 쉼터에는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황마을 쉼터의 주인장은 좁은 탁자 주변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손님 맞을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서울에서 매주 3만원에 점심까지 제공하는 둘레길 코스가 있어서 주말이면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이제 곧 서울 팀이 도착할 시간이라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평소에는 조용한 시골길이 주말만 되면 시끌벅적해지는데 6월은 월드컵 열기 때문에 조용한 편이었어요. 아이고, 이제 7월이면 전쟁 시작입니다."

주인장은 '정신없는 전쟁'이 싫지 않은 듯 연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쉼터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던 김치국(광주, 남)씨를 만났다. 넉넉해 보이는 인상인 그는 전남 교육청에서 퇴임하고 시간 보낼 소일거리를 찾다가 둘레길을 만나게 됐다.

"인월-금계 구간만 세 번째 다니고 있어서 내가 전문가가 다 되었네. 둘레길 다니면 소일거리도 되고 취미도 되지. 자연도 둘러보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인생도 돌아보고, 나도 돌아보고 …, 얼마나 좋은가?"

이번에는 남원에 사는 여동생 부부를 초청해서 왔다. 이들 부부들은 김씨 옆에서 웃으면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둘레길에 관한 책자와 정보지를 꺼내 놓으며 얘기를 하던 김씨는 자연 그대로의 길을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뿐만 아니라 쉼터에서 만난 다른 둘레꾼들 또한 둘레길을 칭송하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미혼과 기혼의 마음을 엮은 지리산 둘레길

쉼터 뒤쪽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앞 쪽으로는 푸른 밭과 지리산 봉우리들이 훤히 보인다.
▲ 상황쉼터 이정표 쉼터 뒤쪽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앞 쪽으로는 푸른 밭과 지리산 봉우리들이 훤히 보인다.
ⓒ 김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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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지리산 토종 나물이 맛있는 중황마을 쉼터를 지나 금계마을을 향해 20분 정도 걷다 보면 상황마을이 나온다.

상황쉼터 부근 논두렁에서는 탁 트인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의자가 3개 놓여 있다. 몇 몇 둘레꾼들이 이곳에서 땀을 식히다 가곤 했다.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잠시 쉬기 좋을 뿐 아니라 경치도 좋아 사진 찍기에도 제격이었다.

상황마을에서 등구재를 앞두고는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왔다. 이곳에서 오르막길을 즐기듯 쉬엄쉬엄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 젊은 여자 여행객 둘을 만났다. 천안에 사는 명선형(37)씨와 이진명(37)씨는 걷기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사이다. 명씨는 결혼을 했고, 이씨는 아직 미혼이라 친하면서도 마음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둘레길이 서로를 엮어주었단다. 

"걷기 여행을 좋아해 올레길도 가봤는데 둘레길은 올레길과는 다른 매력이 있네요. 올레는 상업화되고 편안한 여행인 반면 둘레길은 순박하고 자연을 그대로 살린 것 같아 순수해요."

상황마을 쉼터 주변의 아름다운 정경이 둘레꾼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 상황마을 쉼터 상황마을 쉼터 주변의 아름다운 정경이 둘레꾼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 김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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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제주도의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면서 유행 따라 길도 만들어버리는 요즘 세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요즘은 걷기 열풍 덕에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 많은 것 같아요. 자연 그대로 둬야 아름다운 곳들을 여기저기 파헤치고……. 천안에도 둘레길 흉내 내려고 멀쩡한 산을 잘라 길을 내고 있어요. 그곳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이야기를 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명씨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고 걱정스러워 보였다.

"나무들과 대화하면서 걷을 수 있는 길"

등구령 쉼터에서 만난 김학송 씨는 맨발로 나무들과 풀들과 대화하면서 걷고 있었다.
▲ 나무사진여행가 김학송 씨 등구령 쉼터에서 만난 김학송 씨는 맨발로 나무들과 풀들과 대화하면서 걷고 있었다.
ⓒ 김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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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구령 쉼터는 다른 쉼터에 비해 넓고 재미있게 생긴 술병과 병뚜껑, 갖가지 생활 용품 등 독특한 물건들을 모아놓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곳에서 일곱 명의 남녀가 쉬고 있었다. 이들은 동국대에서 여행작가 과정 강의를 듣는 모임회원이었다. 그동안 남해군 일주 등 각 지역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을 글로 쓰곤 했단다. 둘레길은 처음이라는 이들은 연신 재잘거리더니 "차 시간이 빠듯하다"며 바쁘게 길을 나섰다.

그 무리 뒤쪽에서 김학송(남, 41)씨가 맨발로 걷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느림을 즐기듯 사진을 찍어가며 천천히 걸었다.

"어렵게 찾은 길인만큼 자연을 걷고 싶었는데 중간 중간 시멘트 포장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펜션 공사가 한창인 곳이 많아 안타깝네요. 지리산의 원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씨는 자신을 "나무여행작가"라고 했다. 짊어진 배낭만큼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로 길섶에 있는 나무와 풀과 꽃들을 연신 들여다보는 그의 이마에 맑은 땀방울이 맺혔다.

"둘레길은 숲길도 좋고, 길을 걷다 만나는 주민들도 편안하고 친절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나무들과 대화를 하면서 길을 걸을 수 있어 너무 좋은 길입니다. 다음에 다시 꼭 오고 싶네요."

광주에서 온 이민범씨는 맨발로 걷는 자연을 예찬하며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
▲ 광주에서 온 이민범 씨 광주에서 온 이민범씨는 맨발로 걷는 자연을 예찬하며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
ⓒ 김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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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 무리에 있던 한 남자가 김씨를 보고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광주에서 온 이민범(남, 36)씨다.

"피곤에 지친 일상을 피해 시간이 날 때면 산을 찾았어요. 산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다른 운동들도 많이 했는데 산에 오르면 운동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듭니다. 오늘 처음 온 둘레길은 산길과는 조금 다른 듯 하지만 산내음을 맡을 수 있고, 산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너무 좋네요."

그는 시멘트 길을 만날 때까지 내내 맨발로 둘레길을 걸었다.

50대 부부, 서로에게 다가가는 대화를 나누다

창원마을의 당산쉼터에서는 그동안 마주쳤던 둘레꾼들을 모두 만났다. 당산쉼터는 터가 넓고 시원해 땀을 식히고 간식을 먹으며 힘을 추스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당산나무 아래엔 옛날 그네도 매달려 있어 둘레꾼들의 동심을 자극했다. 평상까지 마련돼 있어 일행들끼리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에도 맞춤이었다.

그곳에서 쉬던 다정해 보이는 50대 부부 한 쌍이 지리산 복분자를 사다가 물통에 넣으며 떠날 채비를 했다. 이영춘, 정경희(50대) 부부는 서울에서 온 단체여행객의 일원이었다. 이 부부는 오전 7시 서울에서 출발해 금계까지 걸은 후 오후 5시 서울로 올라가는 일정이다.

"둘레길은 마을을 중심으로 구성한 길이라서 소박하고 소소한 재미는 있는데 가끔씩 나타나는 시멘트 길에선 지루한 느낌이 드네요. 올레길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둘레길을 걸으면서 일상적인 대화에서 벗어나 좀 더 서로에게 다가가는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내면의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도 알게 되고, 아무래도 둘레길 걸은 다음엔 더 다정해지겠죠?"

창원마을을 벗어나자 길은 산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뭉쳐 걷던 사람들이 한 줄로 흩어졌다. 곳곳에서 단체 여행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들과 아빠, 친구, 가족동반 등 다양하게 짝을 이뤘다. 이들 일행들은 금계마을 입구에서 일제히 관광버스에 올랐다. 다시 온다면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길'을 즐기면서 여행하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러려면 단체관광은 어울리지 않을 듯싶었다.

매동마을에서 금계까지는 4시간 가량의 길지 않은 걷기 여행 코스이다. 이 코스에서 만난 다양한 여행객들은 대부분 걷기 여행이 주는 기쁨에 만족했다. 동시에 둘레길의 다른 코스도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지리산이라는 자연조건과 걷기라는 여행방법이 어우러져 훌륭한 여행코스가 된 둘레길. 오늘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있다.


태그:#둘레길, #걷기여행,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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