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부터 작열하는 태양은 창경궁 홍화문 앞을 달구고 있었다. 그래서 비올 때만큼이나 햇볕에 드러나 있는 궁이 고즈넉해 보인다. 궁 안에는 방학을 맞이해서 열리고 있는 궁탐사 교육이 그늘진 뜰 마루에서 한창이다. 열기는 그 소리도 삼켜버렸다.

 

이런 땡볕에 창경궁을 찾은 것은 궁 안에 있는 야생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옥천교 앞의 명정문은 눈으로 일별하고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금천숲길로 접어들었다. '금천'이란 궁 안에 흐르는 물길이나 왕릉의 홍살문 들어가기 전에 있는 물길을 이른다고 한다(모든 궁과 모든 왕릉에는 금천이 흐르게 되어 있다).

 

 

숲 입구에서 '문주란'과 '물상추'를 만났다. 물상추 두 포기가 연꽃 화분에서 곁방살이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물상추에는 관심이 없고, 문주란과 수련에 푹 빠져 들어 사진기를 들이대느라 강사의 설명도 듣는지 마는지 한다. 물상추는 번식력이 강해 순식간에 물을 덮어 버리는데 식용은 아니라고 한다. 여린 잎을 봐서는 계속 곁방살이 할 것 같게 생겼다.


"문주란 하면 가수가 생각나" 비슷한 나이의 회원들은 모두 동감의 표시를 한다. 문주란의 길게 늘어진 초록의 녹색 잎은 행운목을 닮았다. 다행히 꽃이 피어 있어서 구분이 되었다. 꽃자루가 길게 뻗어 나왔고, 그 위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같은 하얀 꽃덩이를 피우고 있다.

 

씨앗이 스펀지처럼 공기층이 있어 물에 뜨기 때문에 바다를 따라 옮겨 가기도 한단다. 따뜻한 지역의 바닷가 모래언덕 같은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제주도 토끼섬에 자생지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를 따라 옮기다가 제주도의 날씨와 맞아 그곳에 정착을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이들도 있단다.

 

 

숲길에 놓여 있는 물 항아리에는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수련들이 꽃을 피웠다. '황금어리연'의 솜털을 만지면 금가루가 손가락에 묻어나올 듯하고, '가시연잎'은 넓적한 둥근 얼굴에 가시를 잔뜩 박고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위를 살짝 만졌는데 촉감이 대단히 위협적이다. 뒷면은 아예 커다란 가시가 삐죽삐죽 나와 있고 울퉁불퉁한 잎은 산맥 같다. 꽃줄기도 온통 가시다. 날선 가시 속에 보라색 꽃이라니, '보기에는 이래도 나름 부드럽다고' 외치는 듯하다.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한 몸이 되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뿌리가 서로 감기면 연리목이고 가지가 감기면 연리지라고 한다. 연리목이다. 처음 본다. 굵은 둥치와 가지의 옹이들이 세월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사랑나무라고 좋아하지만, 저들끼리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붙어 있는 가지를 펴 주고 싶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빈도리',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일본이 원산지이고 줄기를 끊어 보면 속이 비어 있어서 그렇게 부른단다. 우리가 본 나무는 꽃은 지고 열매만 달려 있었는데, 빈도리 중에서도 꽃잎이 많은 '만첩빈도리'라고 한다. 잎 면을 만져보니 사포처럼 꺼끌거린다. 잎 하나에 벌레집이 있어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니 투명한 탁구공 같은 알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확대경으로 보면 징그러울까 걱정했는데 의외의 예쁜 모습에 너도나도 들여다보고 탄성이다. 강사는 "노린재와 알이에요. 자연에는 꽃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곤충과도 친해져야 해요"한다. 매미가 고스란히 뚫고 나가버린 매미집도 만났다. 만지면 삭정이처럼 바삭 부서질 것 같다. 

 

 

여름이라서 꽃보다는 아직 덜 익은 열매들이 눈길을 끈다. 붉은 팥알 네 개가 사이좋게 붙어있는 나무가 보인다. '병아리꽃나무', 원산지는 한국. 병아리처럼 앙증맞아서 그리 붙인 이름이란다. 잎이 큰 달걀형이고 꽃은 노랑이 아니라 흰색이다. 붉은 팥알이 가을이면 검은 콩처럼 까매진단다. "자연은 주로 삼각구도인데 이것은 사각이네…." 이번에는 꽃꽂이에 조예가 깊은 지인이 덧붙인다. 뜻은 잘 모르겠으나 이런 저런 예화가 곁들여지면 연상 작용에 의해 잘 기억이 되어 좋다.

 

 

숲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있는 '음나무'(엄나무)를 만났다. 엄나무의 새순을 개두릅이라고 한다. 어르신들은 두릅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라서 두릅 앞에 '개'자를 붙여 사람들 손을 덜 타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 떫고 맛없는 열매를 개살구, 개복숭아, 개다래라고 하는 것처럼. 예전에 먹어본 기억으로는 아주 맛있었다. 장성한 큰 둥치에는 가시가 없고 잔가지에 가시가 있단다. 단풍나무처럼 갈라진 잎이 상당히 크다.


숲길 따라 걸으니 왼쪽에 춘당지가 나온다. 춘당지의 물이 명정문 앞의 옥천교 밑으로 흘러드는 가보다. 오른쪽에는 천연기념물이라는 백송들의 자태가 위용을 드러낸다. 꼭대기의 푸른 솔만 아니라면 꼭 고사목 같다. 춘당지 근처에는 식물원(창경궁 자료에는 대온실)과 자생식물학습장이 있다.

 

식물원의 하얀 건물이 햇볕에 은색으로 빛난다. 일제 때(순종)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지으면서 세워진 온실이다. 후에 궁으로 복원하면서 동물원은 옮겼으나 온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근대문화유산의 의미를 지닌다고 해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단다.

 

 

먼저 다래덩굴로 아치문을 만들어 놓은 학습장 숲으로 들어갔다. 다래덩굴가지는 속이 비었단다. 해서 아이들 비누방울 놀이에 적당하다고 한다. 다래열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래열매를 따 먹고 자랐으면서도 딱히 다래나무가 분간이 안 된다. 앞서 가던 사람이 느릅나무 잎을 주어 보이면서 '짝궁뎅이'라고 말한다. 잎자루 쪽의 한 곳이 꼭 뜯은 것처럼 잎의 균형이 깨져 보인다. 느릅나무의 특징이란다. 예전에는 잎이나 껍질 등으로 떡을 해 먹기도 한 구황나무였다.

 

 

온실 앞에 '쉬나무'가 아직 개화하지 않은 꽃봉오리를 참깨처럼 하얗게 달고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쉬나무의 열매는 기름을 짤 수 있는데 예전에는 등잔용 기름으로 활용했단다. 옛날 과거시험을 보던 사람들 집에는 회화나무와 쉬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회화나무의 잎으로 차를 달여 먹으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해서 학자나무라는 별칭이 있고, 쉬나무는 기름을 짜서 밤새도록 공부하는데 밝힐 등잔의 기름이 되었기 때문이란다.

 

 

자생단지와 온실 안의 수많은 야생초들은 눈으로만 훑기에도 바빴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오늘 본 것이 이것 뿐만은 아니지만(너무 많은 게 탈이다) 몇 종류만 간추려 확실히 기억하려고 다시 자료를 찾아가며 정리를 해서 복습했다.


언젠가 야생초 전시회에 간 적이 있다. 이름들을 외워가며 돌아보고 나오는데 길가에 전시회에서 본 풀꽃이 보인다. 반가워 이름을 떠올려 보았지만 전시회에서 보았던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둥둥 떠다닌다. 이름이 뱅뱅 돌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끙끙 댔던 적이 있다. 그래서 자연공부는 절대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태그:#마들 꽃사랑회, #야생초 교실, #창경궁숲, #가시연, #창경궁식물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기자가 되어 기사를 올리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