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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병원의 최신 경영기법은 이후 차등성과급, 연봉제 등 성과주의 인사제도로 그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병원의 최신 경영기법은 이후 차등성과급, 연봉제 등 성과주의 인사제도로 그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 보건의료노조 건강나눔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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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의 최종 목표는 팀제, 외주화, 차등성과급, 연봉제 등으로 대표되는 성과주의 인사제도일 것으로 보인다. 원가절감의 핵심은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병원들의 인건비 절감 노력들은 이미 진행 중이다. 자동차회사들이 부품들을 모듈화해 하청업체로부터 직접 공급받듯이 병원들도 문구류나 수액 등 일부 의약품을 관련업체에서 직접 받고 있다. 병원내 재고를 줄여 물품보관창고 공간을 확보함과 동시에 관련 부서의 업무가 외주화되면서 인력 구조조정 요소가 발생한 것이다.

비정규 병원노동자가 늘어난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2월15일부터 3월14일까지 산하지부 110개를 대상으로 진행한 성과주의 인사제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약 60%의 병원에서 팀제가 도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진 상당수 병원의 팀제가 일반 사기업처럼 인사권이나 예산 결정권까지 권한이 부여돼 있지 않아 그 파급력이 크진 않지만 병원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은 이미 크다.

윤태석 서울대병원분회 부분회장은 "응급실과 가정의학과에서 팀제가 시행중이다. 두 과에 예산권한은 없지만 일부 인사권은 있다. 그런데 두 과의 노동강도가 다른 과에 비해 상당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인력충원이 안 되는 것을 보면서 조합원들이 팀제의 폐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가정의학과의 경우 정규직 한 명 자리에 비정규직을 두 명을 채용하기도 했다"면서 팀제의 문제점을 전했다.

한편 병원 내 비정규직 비율도 최근 높아지는 추세다. 고려대의료원의 경우, 2004년경 비정규직 70여 명을 정규직화하면서 비정규직이 상당수 사라졌었다. 그런데 2007년 구로병원을 증축하면서 단 몇 년 새 500여 명으로 늘었다. 응급실 영상의학과, 업무직 등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것. 서울대병원 본원도 새로 문을 여는 센터의 경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을 비정규직으로 뽑고 있다. 최근에 문을 연 뇌신경센터의 직원들도 상당수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많은 병원 노동자들은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마지막 단계인 성과급제, 연봉제는 아직 도입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보건의료노조 송은정 정책부장은 "신경영 체제를 도입하면 임금과 연결시켜야 사측이 원하는 걸 달성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병원사업장은 연봉제가 의사급 정도만 들어오고 최근에야 관리자급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단 관리자급으로만 성과주의 인사제도가 들어와도 그 영향력은 클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노조활동이 어려워질 거다. 보통 관리자들은 노조가 잘 싸워서 월급을 올려주면 좋아한다. 하지만 성과급제가 되면 적극적으로 사측 통제를 받게 된다. 일례로 병원 경영진이 부서원들 연월차를 다 쓰게 하라고 하면 관리자들은 성과 때문에 그렇게 할 거다. 그러면 인력이 부족해서 연월차를 쓰지 못하던 직원들이 연월차를 쓰고 나와서 일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간호사, 의료기계직 등 일반직들은 자동승급이 돼 이런 평가체계로 임금까지 연결되지는 않지만 중간관리자가 됐을 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평가는 그때부터가 아니라 지금부터 쌓인다고 여기기 때문에 경영진이 요구하는 원가절감지침 등에 따르게 되고, 그로 인해 조합원들이 개별화되고 노조가 약해질 확률이 높다."

"'협업' 치료행위에 성과급 부적절해"

고려대의료원은 지난 6월9일, 직원들에게 활동기준원가시스템(ABC)에 들어갈 활동가중치를 각자 입력해서 이틀 후까지 제출하라는 공문을 내렸다. 원가계산의 기준이 될 활동가중치 책정을 개인에게 맡겨 버린 셈이다.

조현종 고려대의료원지부 총무부장은 "사측이 갑자기 ABC를 시행한다고 터뜨렸다. 관련 설명회 한 번 없이 ABC가 뭔지도 모르는 직원들한테 무조건 자신의 업무 항목마다 가중치를 적어 내라고만 하고 있다."면서 그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김진용 지부 교육정책부장은 ABC도입에 대해 관리자들도 많이 부담스러워한다고 전했다.

"객관적인 기준도 없이 주관적으로 개인이 기입하라는 데 대해 어떤 부서 팀장은 부서원들에게 아예 말을 안 하는가 하면, 어떤 부서는 부서원들더러 알아서 하라고 맡기기도 했다."

그는 직무분석이나 제대로 됐는지, 직무분석이 힘들어서 직원들 개인에게 활동가중치를 입력하라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했다.

취재 중 만난 많은 병원 노동자들이 병원 업무는 원가계산이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병원에 도착해 차문을 열어주는 업무직부터, 접수 맡는 창구직, 외래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간호사, 병동 담당 의료진, 수납 창구직까지 환자가 치료를 하는 과정에 수많은 의료노동자 '자원'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각 단계의 비중을 정확히 수치화하고, 객관적으로 원가를 분석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의사에 집중된 병원 업무 자체가 성과급 체계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병원은 보험회사처럼 실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다. 특히 의사의 오더에 따르는 체계여서 X-레이과가 아무리 건수를 올리겠다고 목표를 세워도 의사가 오더를 내리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다."

김선화 서울성모병원지부 지부장의 설명이다.

윤태석 의료연대 서울대병원 부분회장은 "병원 일은 협치체계(협동정치)가 중요하다. 그런데 성과중심으로 가면 그 체계가 깨질 수밖에 없다. 동료가 하는 실수가 나의 성과에 도움이 되는 상황에서 그 동료를 돕는 체계가 만들어지겠나. 그런데 병원 측은 협치체계를 깨뜨려 이익이 오도록 하는 시스템을 계속 만들려고 하고 있다"면서 "공공의료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면서 수익성에 치중된  경영방식을 택한 병원들을 비판했다.

도요타의 비극, 병원에 터질까

한 대학병원 로비에서 만난 김형순(가명·52) 씨는 "대학병원을 종종 이용하는데 요즘은 진료시간이 1분이면 긴 편이다. 의사들 진료실 앞에 그날 대기환자가 죽 적혀 있는데 어떤 의사는 적은데 반해 어떤 의사는 200명 가까이 되더라. 나도 환자 많은 의사한테 진찰 받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 의사가 정성스럽게 봐줄까 의문이 들었다. 병원이 친절 친절 이야기하기보다 진료시간을 더 늘렸으면 좋겠다"는 '고객의 소리'를 전했다.

"병원에 대한 평가가 수익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어떤 질병을 얼마나 예방했나, 암환자 조기발견률이 얼마인가 식의 평가가 돼야 되지 않겠나"라는 보건의료노조 송은정 정책부장의 당연한 제기가 새롭게 들리는 건 그만큼 병원이 수익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또 다른 반증일 수 있겠다.

그 과정에서 자본의 보이지 않는 컨베이어 속도 높이기 정책 속에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있고, 상품을 대신해 컨베이어에 오른 '고객'들은 그 속도에 만족하다가 알게 모르게 기본적인 진료권을 침해받고 있다.

병원이 부품 결함에 따른 급발진사고로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도요타의 비극을 따르지 않을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료계 관계자들의 충고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시대다.

사람을 '닦고 조이고 쥐어짜는' ERP의 그늘
[인터뷰] 이황현아 공공노동통제위원회 위원
이황현아 전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은 1990년대 초반부터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현장의 노동통제양상에 대한 추적연구를 해왔다. 그는 자본은 현장에 '가랑비 옷 젖듯' 최신 경영기법을 하나씩 들이고 있다면서 노동조합도 일상적으로 자본의 노동통제 양상 등을 조사하고 점검하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ERP 등 최신 경영기법이 도입된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그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이 계속 도입하는 이유는
"이는 시스템이 아니라 제도와 연관돼 있다. 노동자들은 신기술을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없앤다는 고전적인 고용 문제로 바라보는데 최근엔 워낙 구조조정으로 많이 잘라서 자본의 관심사가 달라졌다. 노동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가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ERP는 전사적자원관리를 뜻하는데, 이 '자원'에 '사람'이 들어간다는 게 핵심이다. 인격을 가진 사람도 그냥 자원, 물건으로 취급한다는 거다.

이 '자원'인 노동자를 어떻게 쥐어짤 것인가. 일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경쟁을 시키는 거다. 최종적으론 높은 점수를 받아야 잘리지 않고 승진하고, 월급도 남들보다 많이 받게 되는 제도, 즉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다."

- 병원이 최신 경영기법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한국 병원은 2~3년 전부터 병원이길 포기한 상황에 이르렀다. 영리병원을 추구하면서 패러다임 자체를 산업으로 돌려 버렸다. 자본이 공공의료나 의료의 보편성 자체를 거론할 수 없게끔 만들어버린 거다. 제조업과 똑같아지겠다는 소리다.

내가 알기론 ERP 시장이 오라클과 SAP로 양분돼 있는데, 오라클은 주로 금융, 정보, 유통쪽에 적합한 프로그램이고, SAP는 자동차부품공장 등 제조업 쪽에 많이 깔려 있다. 그런데 최근 병원, 지하철 등에 SAP형 ERP가 들어오고 있다. '물량 따먹기'로 표현하는 생산현장처럼 공공부분을 수익성, 효율성 논리로 덮어버리겠다는 거다."

- 변수가 많은 병원 업무는 원가분석 등 평가책정이 힘들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자본은 주사액 10ml 넣던 걸 9ml만 넣어도, 또 반창고 3~4cm씩 쓰던 걸 1~2cm씩 쓰면 원가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걸 측정하는 시간이나 이런 신경영 관련 컨설팅을 받고 해당 프로그램 등을 까는데 드는 비용 등을 책정했을 때 병원 자본이 얘기하는 것만큼 그렇게 효율성이 높은지는 잘 모르겠다."

- 신경영체제가 의료의 공공성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원가분석을 하면서 심지어는 간호사별로 주사 놓는 시간까지도 체크하는 곳이 있다. 자본 입장에서 보면 그게 직무 분석일 텐데, 예를 들어 주사를 20초 놓는 사람이 있고, 15초에 놓는 사람이 있으면 다같이 15초로 맞추라고 한다. 그때부터 간호사에게 환자는 15초 안에 주사를 놓아야 하는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료의 공공성 얘기가 먹히겠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병원 신경영, #ABC, #대형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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