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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전국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약칭 환생교) 소속 교사들과 '청년 낙동강 순례단('잉여'들의 낙동강 공습)'이 낙동강 순례차 대구에 왔습니다. 그 순례에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사람들'이 동행·안내하면서 낙동강에 들어서고 있는 강정보, 달성보, 합천보 건설현장과 낙동강 곳곳에서 일어나는 준설현장을 목격하면서 4대강사업의 진면목을 함께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런 후 이들은 낙동강의 한 지천인 '회천'으로 가서 살아있는 낙동강의 원형을 만났습니다. 특히 그곳에서 만난 작은 생명들인 재첩들은 강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들을 회천의 모래톱에서 살고 있으면서 강에 왜 모래가 필요한 것인가를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실어봅니다. - 기자 말


낙동강의 지천, '회천'의 모래톱에서 만난 '낯선' 생명들

 

모래 속을 기어가는 작은 생명체들을 본 적이 있나요? 모래 위에 선명한 길을 만들며 기어가는 그 눈물겨운 움직임을 본 적이 있는지요? 지난 주말 낙동강의 한 지천인 '회천'에서 만난 그 경이로운 모습을 보고 우리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느릿느릿, 하지만 규칙적으로 한 호흡 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어가는 녀석들의 움직임엔 절제된 아름다움과 생명의 질서가 그대로 전해져옵니다.

 

그렇습니다. 그 녀석들은 작은 조개들인 재첩들이었습니다. 지난 주말 낙동강의 지천인 회천, 가야산에서 발원한 두 물줄기가 고령에서 만난다고 해서 모일 회(會)자를 써 회천(會川)이라 불리는 그 생명의 강에서, 그 '낯선' 녀석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그곳 회천은 낙동강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강물은 맑고 모래톱이 발달해 있으며 수심이 얕은 그곳엔 아직까지 재첩을 비롯한 칼조개와 같은 조개류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낙동강에 이미 사라진 그 생명들이 불과 수 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그곳에선 어떻게 삶을 이어오고 있는지 마냥 신비할 따름이었습니다. 그 존재감만으로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그 생명들은 회천의 그 고운 모래톱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갯벌의 그것들인양 모래톱 곳곳에 숨구멍을 내어놓고는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함께한 순례 일행은 마치 개펄의 조개잡이를 하듯이 숨구멍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바로 바로 나타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기 바쁩니다.

 

모래펄에 숭숭 뚫린 그 구멍 안에는 여지없이 씨알이 굵은 재첩들이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모래밭은 그들의 보금자리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물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 해녀들(?) 마냥 모래톱 안 자신들의 집에서 숨구멍만 조금 내어놓고는 그렇게 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녀석들을 잡기가 미안할 지경인데, 함께 한 선생님 한분이 말씀하시더군요. "요런 녀석들을 잡아서 재첩국이라도 끓여먹어 보아야, 강의 생명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일리 있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일행은 그 선생님이 부여해준 재첩사냥의 면죄부를 한 손에 받아 쥐고는 한손엔 들고 간 봉지에 한주먹 만큼씩 재첩을 잡습니다. 그러고는 모래톱에서 강과 함께 뒹굴었습니다.


모래가 사라진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강의 모래는 단순한 건설 자재가 아닌, 재첩들의 삶에서 보듯이 수많은 생명을 보듬어 안고 그들의 생명을 영위하게 만드는 생명의 자궁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 고운 모래펄에는 조개류를 비롯한 수많은 수생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낙동강에선 그 모래들을 모조리 파내어버립니다. 평균 6미터의 깊이로 강바닥의 모래를 준설하기 때문에 낙동강의 모래는 거의 대부분 사라지게 됩니다. 그 양이 무려 4억 4천만 입방미터(루베)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낙동강의 모래는 씨가 남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모래를 채취해서 살아온 골재노동자들은 4대강 사업으로 평생의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지요.

 

낙동강 전 구간은 지금 거대한 공사장입니다. 특히 대구 위쪽의 낙동강의 모습들은 더욱 처참한 지경인데, 26일 둘러본 구미 해평습지는 정말 그 아름다웠던 모습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모래로 유명하던 해평습지는 점점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마치 중동의 공사판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사막의 공사판을 옮겨 놓은 것과 같은 삭막한 풍경이었습니다. 해평의 모래들은 수많은 덤프트럭에 실려, 예전에 논과 밭이었던 모래적치장으로 빠르게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풍경은 비단 어느 특정 구간의 이야기가 아니고, 낙동강의 전 구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모래가 사라진 강을 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모래가 사라진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호수입니다. 4대강 사업은 지금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을 거대한 인공의 호수로 만들어버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준 위대한 질서를 파괴해버리는 심각한 만행입니다.


저 모래펄에 본 재첩들과도 같은 수많은 생명들이 삶을 영위하는 모래들이 모두 사라지면 낙동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닌 인공의 거대한 호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그 강에서 조개를 잡을 수도, 멱을 감을 수도 없는 '위험한' 호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회천의 저 작은 생명들이 온몸으로 가르쳐준 생명의 질서는 4대강 사업이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낙동강 모래, 그것은 생명의 자궁입니다. 제발 제발 그대로 두시길.

 


태그:#낙동강 , #재첩, #회천, #모래, #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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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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