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주니어핸드볼대표팀

한국 여자주니어핸드볼대표팀 ⓒ 대한핸드볼협회


후반전 17분 55초, 드디어 짜릿한 역전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경기 시작 후 12분이 넘을 때까지 1-5로 끌려가던 그녀들이 아니었다. 역시 핸드볼은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릴 순간까지 실수를 줄이고 침착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백상서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주니어핸드볼대표팀은 25일 낮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벌어진 제17회 세계여자주니어핸드볼선수권대회 메인 라운드 1그룹 두번째 경기에서 예선 라운드 A그룹 2위로 올라온 강팀 독일을 맞아 후반전 중반까지 끌려다녔지만 마지막 15분 동안 매우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며 24-22(전반 11-1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센터백 '이은비'의 중심 잡기

33초만에 터진 레프트백 이세미의 선취골로 상쾌하게 출발한 우리 선수들은 자프와 뮬러에게 나란히 두 골씩을 얻어맞으며 12분까지 정신 없이 끌려다녔다. 상대에게 다섯 골을 내주는 11분 사이에 우리는 단 한 골도 터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문제였다.

아무리 경기 초반이라 하지만 경기 운영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은비가 센터백 자리에서 공을 쥐고 라이트백 류은희와 눈빛을 주고 받았지만 독일 수비벽이 한없이 높아 보였다.

 센터백 이은비

센터백 이은비 ⓒ 대한핸드볼협회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모자란 체격 조건 탓만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높은 벽이라도 잘 짜여진 패스 플레이가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넘을 수 없는 벽은 없는 법이었다. 조효비(왼쪽)와 김선화(오른쪽)가 뛰는 날개 공격이 잘 먹히지 않은 것이 조금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가운데에서 자리를 바꿔 가며 공을 주고받는 셋(이세미-이은비-류은희)의 호흡이 조금씩 그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센터백을 맡은 이은비의 활약이 눈부셨다. 전반 25분에 나온 이은비의 귀중한 동점골(9-9)이 그 가능성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역시 이은비의 따라붙는 골로 전반전을 한 골 차(한국 11-12 독일)로 끝냈다는 것은 결과를 놓고 봐도 그 의미가 컸다.

어린 선수들답지 않았던 '노련함'

후반 17분 55초에 같은 소속팀(벽산건설)의 두 선수가 첫 번째 역전골(20-19)을 만들어냈다. 라이트백 류은희의 재치있는 넘겨주기 패스가 오른쪽 날개 김선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곧바로 이어진 독일의 공격 상황에서 간판 류은희가 무리한 잡기 반칙으로 2분간 쫓겨나는 위기를 맞이한 것. 든든한 피벗 플레이어 남영신이 버티고 있었지만 그나마 상대 선수들과 높이(178cm)가 엇비슷한 류은희의 빈 자리는 클 수밖에 없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무실점으로 버틴 힘은 센터백 이은비와 왼쪽 날개 조효비의 훌륭한 경기 운영 능력 덕분이었다. 노련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지 않는 어린 소녀들이었지만 효율적인 패스를 바탕으로 시간 관리를 아주 깔금하게 해 주었다. 핸드볼 경기에는 보다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위해 패시브 플레이 규정이 있지만 여기에 걸려들지 않을 정도로 그녀들은 패스와 슛을 적절하게 버무려가며 공격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렇게 2분을 잘 흘러보낸 우리 선수들은 류은희가 다시 들어오자마자 기습적인 왼손 언더슛으로 21-19를 만들며 승리의 기운을 충분히 느끼기 시작했다. 경기 시간을 5분 가량 남겨놓고 독일의 그로스만에게 속공을 내주는 바람에 다시 한 번 점수(21-21)가 같아졌지만 이은비와 이세미의 재치있는 골이 연거푸 터지면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에 문지기 박소리의 뛰어난 선방도 한 몫 하면서 짜릿한 역전 드라마는 절정에 이르렀다. 사실, 독일로서는 충분히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센터백 보니하우젠의 어이없는 패스 실수 두 개와 자프의 오버스텝 반칙으로 공격권을 한국에 넘겨주면서 스스로 무너져 버렸다.

개최국으로서 조심스럽게 우승을 노리고 있는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실질적인 첫 번째 고비를 맞이하게 된다. 27일 낮에 유럽의 강팀 노르웨이와 메인 라운드 1그룹 1, 2위 다툼 맞대결을 남겨놓은 것. 여자핸드볼 종목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는 노르웨이는 A그룹 예선 라운드에서 독일을 35-23으로 가볍게 이긴 기록만으로 봐도 우리 선수들에게 버거운 상대임에 틀림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제17회 세계여자주니어핸드볼선수권대회 메인 라운드 1그룹 경기 결과, 25일 고려대 화정체육관

★ 한국 24-22(전반 11-12) 독일

◎ 한국 선수들의 득점/선방 기록
문지기 박소리 : 선방 12개(방어율 3.4%)
조효비 1득점, 김선화 3득점, 남영신 2득점, 이은비 9득점, 이세미 5득점, 정유라 2득점, 류은희 2득점

◇ 메인 라운드 1그룹 현재 순위
노르웨이 3승 6점 97득점 69실점
한국 3승 6점 107득점 92실점
독일 2승 1패 4점 77득점 84실점
크로아티아 1무 2패 1점 77득점 83실점
네덜란드 1무 2패 1점 74득점 92실점
세르비아 3패 0점 82득점 94실점
이은비 류은희 조효비 핸드볼 백상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