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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중앙로에 가면 지금은 찾기 힘든 한 양복점이 있다. 낡고 허름한 간판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해 주는 곳, 바로 '시온테라' 양복점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 역시 빛바랜 물건들이 오랜 시간 이곳과 함께 했음을 보여준다.

조용히 울려 퍼지는 라디오 소리, 오래된 이곳의 풍경과 어울리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 한 느낌을 갖게 한다. 양복점 한 쪽에 멋진 빵모자를 쓰고 가위질을 하는 한 노신사가 보인다.

장영문(67)씨. 가위를 잠시 내려놓는다. 세월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그가 양복 일을 시작한 것은 어린 나이, 14살 때부터다. 올해 나이 67살이니 양복 일을 시작한 지 어느 덧 5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가난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14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양복 일. 하지만 이제는 지나온 힘들었던 세월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바치고 있다.
▲ 양복 만들기 53년 외길 인생 가난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14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양복 일. 하지만 이제는 지나온 힘들었던 세월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바치고 있다.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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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도 못 받고, 하루 4~5시간 자며 배운 양복기술

그가 처음 양복 일을 시작한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농사일을 하셨는데,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이 다 그랬듯 저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어. 10여일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지. 공부 꽤나 한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그때 많이 울었던 걸 보면 공부를 너무 하고 싶었나봐. 하지만 가난했으니 어쩔 수 있나. 할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기술을 배우게 됐고, 그 때 선택한 것이 양복 쪽 일이었어. 그때부터 양복과의 인연이 시작된 거지."

그가 양복기술을 배우던 시절은 1950년대 후반. 월급도 따로 없었고, 기술은 눈치껏 보고 따라 해야 했다.

"그 당시에는 구타당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어. 배우는 동안은 월급도 없었고, 용돈 정도로 1천환(현재 환산 100원) 정도 받았지. 기술도 어깨 너머로 눈치껏 배웠어. 다들 옷 한 벌이라도 더 만들어야 하는데 나 같은 사람한테 가르쳐 줄 시간이 있간디. 잡일이 많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했는지 생각만 해도 징글징글혀. 그래도 먹고 살려니 할 수 있나. 죽어라 일 했지.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됐구먼."

그렇게 쉴 틈 없이 일했고, 1년 반이 지나 하의를 만들고, 또 3년의 시간이 지나 상의를 만들고, 그리고 재단사가 되었다. 1주일에 16~20장의 옷을 만들어 냈고, 하루에 잠은 4~5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먹고 살기 위해 만든 양복, 이제는 '작품' 만들고파

고단한 20여년 시간을 그렇게 공장에서 일했고, 73년 10월, 전라북도 전주가 고향인 그는 고향 바로 옆에 자리한 전북 군산에 있는 '신영테라' 양복점의 재단사로 스카우트 되면서 현재의 군산에 정착하게 된다.

"신영테라에서 받은 월급 2만5천원을 아직도 기억하네. 그곳에서 8년을 근무하고, 지금의 제 양복점을 낼 수 있었지. 교회 가야하는 주일 빼고 매일 일만 했어. 한 달에 25벌, 1년에 300벌 이상의 옷을 만들어 냈지."

하지만 어느 날부터 등장한 기성복에 밀려 더 이상 수제양복이 설자리가 없어지고, 열심히 일했고, 한의사와 약사, 학원 원장 등으로 아들과 딸이 모두 컸으니 이제 그만 일손을 놓을 때도 됐으련만 그의 손에는 여전히 바늘과 실이, 그리고 가위가 놓여 있다.

"기성복의 보급화로 일거리가 거의 없지만 3대째 찾아오는 단골손님부터 기성복이 맞지 않아 오는 손님들까지 한 달에 3~4벌은 족히 지어. 글쎄, 예전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이 일을 했는데, 뭐랄까 이제는 작품을 만든다는 심정으로 양복을 만든다고나 할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는 장영문씨. 53년 양복과 함께 한 그의 작은 소망은 먹고 살기 위해 만들었던, 팔기 위해 만들었던 양복이 아니라, 자신만의 혼이 담긴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 한다.


태그:#양복,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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