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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쫄따구'였을 때는 말이지...

 

대한민국의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 겪어봤을 군대 내 폭력. 그저 젊었을 때의 추억이라고 묻어버리기에는 가슴 아픈 기억이다. 입대한 지 이십 년 가까이 지난 옛일이지만 바로 엊그제 일처럼 또렷한 것은 그때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새삼 알게 해준다.

 

훈련소에서 가족들과 손 흔들자마자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은 이른바 '사제물'을 확실히 빼주겠다며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거침없는 호루라기 소리에 흙먼지 풀풀 날리는 연병장을 뒹굴면서부터 군대 내 폭력에 둔감해졌고 시나브로 동화되어 갔다.

 

자대 배치를 받은 후에도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되레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훨씬 더 다양해지고 '세련되어' 갔다. 엎드려 뻗친 상태에서 허벅지를 맞거나, 뒷짐 진 상태에서 머리를 땅에 거꾸로 박는 등의 '전통적'인 방식은 줄었지만, 겨울철 몸에 물방울 튀기기, 여름철 맨몸으로 모기에 헌혈하기, 불침번 돌아가며 잠재우지 않기 등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갈굼'에 이르기까지 기상천외한 폭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업그레이드됐다.

 

폭력을 행사하는 선임병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군기가 빠져가지고…", "내가 '쫄따구'였을 때는 얼마나 심했는지 알아?", "너희들이 '쌍팔년도' 군대를 알기나 해?" 결국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의 폭력은 '자주국방을 위한 전투력 함양'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단지 그들의 후임병 시절을 심리적으로 보상받기 위한 보복이었던 셈이다.

 

험상궂은 얼굴로 신병들을 굴려대던 빨간 모자의 교관도, '쌍팔년도' 군대 운운하며 군기 잡기에 혈안이 돼 있던 그 선임병도, 한 두 해 전 하나같이 힘든 신병 시절을 겪었을 텐데 그들에게서 '아픈 과거'는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거친 폭력은 이른바 '본전 생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후배였을 때는 말이지...

 

얼마 전 학교에서 1학년과 3학년 학생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동급생들끼리와는 달리 선후배 사이에서 일어난 다툼은 일방적 폭력일 수밖에 없다. 어떻든 그 둘을 따로 불러다가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현장을 목격한 교사로서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고 이해시켜 앙금을 가라앉히고 화해시키려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둘을 화해시키기는커녕 심판과 중재자 역할조차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3학년 학생을 나무라며 혼쭐내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욕설을 퍼붓고 드잡이한 건 맞지만 1학년 후배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려는 의도였다는 그의 말을 조금도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조목조목 열거한 1학년 후배의 잘못은 이랬다.

 

선배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1학년 중에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많다, 급식소나 매점에서 3학년보다 새치기를 더 많이 한다, 3학년보다 1학년이 머리가 더 길다, 그리고 대부분의 3학년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다 등등. 정작 그가 드잡이한 후배와 관련된 건 거의 없었다. 단지 1학년 전체에 대한 그의 좋지 않은 감정이 '재수 없이' 걸린 그 후배에게 쏟아진 것이다.

 

모든 면에서 그는 선배답지 못했다. 흡연이나 새치기 등 학생답지 못한 행동을 후배들에게 충고하는 방식이 고작 욕설과 폭력인 것도 그렇지만, 입버릇처럼 '우리 때는 안 그랬다'고 되뇌며 눈을 부라리는 그의 비뚤어진 인식에 혀를 내둘렀다. 한 시간이 넘도록 그와 대화하며 납득시키려했지만 서로 간에 반감만 커질 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학교생활에 아직 서툴고 어린 후배들을 잘 다독이고 이끌려는 솔선수범의 자세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후배 시절 선배들에게 당했던 수모를 고스란히 앙갚음해주겠다는 보복 심리와 살벌한 위계 의식만 남았다. 역시 추한 '본전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곧, 군대에서 선임병의 후임병들에 대한 태도와 인식은 학교에서 선배가 후배들을 대하는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마치 일란성 쌍생아 같은 전자와 후자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만나고 전수됐을까 고민해본다면, 결국 그들의 매개체는 기성세대인 학부모와 교사일 수밖에 없다.

 

나이와 직급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본 경험 없는 탓

 

우리 사회가 선임과 후임, 선배와 후배, 상급자와 하급자 등 위계와 권위에 익숙해있을 뿐, 나이와 직급을 떠나 '인간 대 인간'이라는 동등한 관계와 만남을 겪어보지 못한 탓이다. 그러다보니 군대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시민을 육성해야 할 학교 내에서조차 욕하면 듣고, 때리면 맞고,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는 상명하복 문화만 판치고 있는 것이다. 버젓이 '군기'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마당에 선후배와 사제지간이라는 관계를 벗어나 이른바 계급장 떼고 옳고 그름을 겨뤄보려는 건 무모한 짓이며, 그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근래 들어 기성세대를 향해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두고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어쩌면 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광경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학생인권조례가 시기상조? 과연 언제가 적기일까

 

얼마 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체벌 전면 금지 조치가 발표되는가 하면,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두고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듣자니까 교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며 정상적인 학교교육활동이 불가능해질 거라는 현실론이 등장하면서, 속도를 조절하자는 절충안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가장 소리 높여 반대하는 쪽은, 놀랍게도, 민주시민 육성의 사명을 띤 교사 집단이다. 교육이 곧 훈육인 현실에서 체벌은 가장 유용한 수단이니, 그들에게 체벌을 금지시키는 건 곧 교육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천부적인 학생인권을 고작 체벌 금지에 방점을 찍고 이해하려는 것은 조금 우스꽝스럽긴 해도 굳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이, 군대는 물론 학교마저도 권위적이고 폭력적으로 물들인 우리 문화를 되돌아보게 하고 인식의 틀을 바꾸는 데에 기여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후배를 나이가 어리다고 낮춰보기에 앞서, 학생을 피교육자라고 교사의 권위를 내세우기에 앞서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똑같은 '인간'으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굳이 '학생'의 인권을 거론하는 건 그들이 학교 내에서 상대적인 약자기 때문이지, 교사의 권리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요컨대,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교사와 학생 간은 물론, 선후배 학생 간, 또 교사 간에 강압이나 폭력에 쉽게 이끌릴 수밖에 없는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를 벗어나 진정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고민해보는 더 없이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실 학부모와 교사들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과 체벌을 통한 훈육으로는 진정 학교교육의 목표인 민주시민의식을 함양시킬 수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보는 기회가 주어질 때라야 시나브로 길러지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이 그런 기회가 될 수는 없을까. 기성세대의 우려처럼 시기상조라면 과연 언제가 적기일까.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myhb0211)에도 실었습니다.


태그:#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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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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