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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에서 조아니따 필리핀 이주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에서 조아니따 필리핀 이주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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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우리는 한 베트남 이주여성을 떠나보냈습니다. 그 여성의 이름은 탓티 황옥입니다. 그녀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녀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녀가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0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여성들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10여 명의 이주여성은 묵묵히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분홍색, 하늘색 등의 손팻말에는 "황옥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우리도 인간이야, 때리지 마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색색의 손팻말과는 대조적으로,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검은색이나 흰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표정 역시 침울했다. 그녀들은 "절박한 마음을 전하겠다"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참석자 중 한 명인 조아니따(59)는 "31년 전 한국에 와 고생이 참 많았다"며 "(앞으로 고생하는 일이 없도록) 결혼하기 전에 (결혼할 남녀를) 교육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앞으로 누군가 당신처럼 될까봐 두렵고, 걱정스럽다"

결혼 8일만에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20)의 유족들이 15일 오전 부산 영락공원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결혼식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사용해서 화장장으로 향하고 있다.
▲ 결혼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결혼 8일만에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20)의 유족들이 15일 오전 부산 영락공원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결혼식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사용해서 화장장으로 향하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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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한국에 있는 이주여성과 베트남 이주여성인 황희따오씨가 아들을 안고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에 참석해 아시아 여성을 상품화하는 상업적인 결혼중개업에 대한 단속과 관리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한국에 있는 이주여성과 베트남 이주여성인 황희따오씨가 아들을 안고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에 참석해 아시아 여성을 상품화하는 상업적인 결혼중개업에 대한 단속과 관리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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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회견은 결혼해 한국에 온 지 8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던 남편에 의해 20세로 짧은 생을 마감한 베트남 이주여성 고(故) 탓티 황옥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나도 그 베트남 이주여성일 수 있습니다"라고 쓰인 펼침막이 사회자 뒤편에 있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티마이 투(25)는 고(故) 탓티 황옥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여성이다.

그녀는 "고(故) 탓티 황옥의 장례식에서 만난 그녀의 부모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말 가슴 아프고 죄송했다"며 "우리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추모 기자회견을 준비했다"고 입을 열었다.

잠깐 추모의 묵념을 올린 후 지금까지의 경과보고가 있었다. 사회자는 레티 빅녀(29)를 소개했다. 그녀 역시 베트남에서 온 이주여성으로 양산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고(故) 탓티 황옥의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죽 읽어나갔다. 목소리가 다소 떨리고 있었다. 고(故) 탓티 황옥의 사망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어 장지연(27)씨가 고(故) 탓티 황옥의 사건을 접하고 난 후의 소회를 편지글을 통해 밝혔다. 장지연씨 역시 이주여성으로 인천여성의전화 아이다마을(아시아 이주여성 다문화공동체 마을)의 베트남 모임인 '궁남따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꽃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탓티 황옥씨에게'라는 제목의 편지글에서 고(故) 탓티 황옥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폭력'에 분노를 드러냈다.

"어리고 꽃다운 나이에 부모님 도와주겠다고 해서 이렇게 먼 땅까지 찾아온 당신에게 이렇게 대해준 사람들은 사람으로 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 사람들은 평생 자책감 속에서 살아도 당신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할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누군가 당신처럼 될까 봐 두렵고, 걱정스럽다"며 "당신이 못다 살다 간 이 한국 땅에서 또 다른 탓티 황옥씨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낭독을 끝냈다.

"고(故) 탓티 황옥, 좋은 이웃이라도 있었더라면"

다음으로 사회자는 "이번 사건은 결혼이주여성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자유 발언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발언에 나선 중국 출신의 이주여성 포우러(32)는 먼저 결혼 전 정신질환을 앓은 남편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재의 검증 체계를 비판했다. 그리고는 고(故) 탓티 황옥의 가족들 역시 책임이 있다며 "가족들이 책임지지 못하면서 언어, 문화도 통하지 않는 외국 여성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여성들이 억압받는 현실을 토로했다. "직장생활을 못하게 하고 이주여성들의 모국어도 못하게 하고 심지어 외출도 금지하며 생활비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 중개업체에게도 "상품을 사서 금전으로 매매하듯이 도구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혔다. 그리고 정부에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꿈을 품고 이곳에 왔다. 우리들 자신의 인권이 피해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다음으로 자유 발언에 나선 필리핀 출신의 이주여성 김낸시(42)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말이 나오지 않았다"며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그녀 역시 이주여성을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한 정부에 비판의 의견을 전달했다.

"가정폭력에 피해 받는 친구들이 있다. 어떻게 국가에서 감시하지 않고 있나. 어떻게 8일 만에 그 신부(故 탓티 황옥)가 죽을 수 있나."

"(한국에 처음 왔을 때) 2년간 말을 못하고 지냈다"는 그녀는 고(故) 탓티 황옥이 한국에서 얼마나 답답한 심경이었는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행복하게 살려고 왔는데, 우리도 떨린다"며 한국 사람들이 이주여성에게 관심을 가져 줄 것과 정부가 엄격한 법을 적용해줄 것을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정리 발언에 나선 사회자도 한국 사람들이 이주여성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고(故) 탓티 황옥에게 좋은 이웃이 있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검증 없이 국제결혼을 중개하는 업체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요청했다. "그런 노력이 모이고 모여 고단하고 안타까웠던 삶을 살다 간 고(故) 탓티 황옥의 긴 여행을 위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라는 사회자의 말로, 이날 기자회견은 마무리되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한국염 대표는 "(고(故) 탓티 황옥 부부가) 부부 싸움한 것을 이웃이 듣고도 방치했다"며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더라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또 기자회견이 "이 분들(이주여성들)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같은 날 오후에 여성가족부와의 간담회를 열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간담회에는 한 대표와 레티마이 투, 그리고 레티 빅녀가 대표로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한국에 있는 이주여성들이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 여성을 상품화하는 상업적인 결혼중개업에 대한 단속과 관리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한국에 있는 이주여성들이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 여성을 상품화하는 상업적인 결혼중개업에 대한 단속과 관리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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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미나 기자는 오마이뉴스 12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탓티황옥, #이주여성, #기자회견, #인권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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