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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를 보자마자 이번엔 시험부정 소동으로 시끄럽다. 충북 제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지난 13일과 14일에 치러진 일제고사에서 시험 감독을 하던 교사가 학생들에게 정답을 가르쳐 줬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제천교육청은 해당 초등학교에서 과학시험을 감독하던 교감이 학생들에게 3개의 문제의 답을 가르쳐 줬다는 신고를 받고 진상 파악에 나섰다.

해당 학교 교감은 답을 가르쳐준 게 아니라 힌트만 줬다고 설명하고 있다. 충북교육청은 일부 학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교과부는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다. 일제고사가 국가수준 시험이라고 요란하게 관리하더니 왜 이런 사건에 별 이야기가 없을까? 혹 이런 문제가 한 학교에서만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힌트만 줬다고요?

그러나 주변 교사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교사들의 설명에 따르면 학교마다 답을 가르쳐주거나 힌트를 줬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6학년 교사들은 논란됐을 시험 문제로 아래 내용들을 꼽았다.

2010년 일제고사 초등 6학년 과학 서답형 문제 3번입니다. 정답은 A, B 둘 중에 하나가 됩니다.
 2010년 일제고사 초등 6학년 과학 서답형 문제 3번입니다. 정답은 A, B 둘 중에 하나가 됩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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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실험은 5학년 때 배운다. 식물의 잎이 광합성작용으로 녹말을 만들어내려면 반드시 햇빛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내는 실험이다. 그래서 햇빛을 받는 잎과 안받는 잎의 차이를 알기 위해 하루 전에 잎에 은박지를 씌워놓는다. 햇빛을 받은 B만 묽은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렸을 때 색깔이 보라색이나 청남색으로 변하는 걸 보고 녹말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알코올을 중탕하는 것이나 초록색 잎이 물이 빠져 허옇게 되는 것 자체부터 신기해하는 실험이다.

초등 과학 서답형 3-(2)번 문제입니다.
 초등 과학 서답형 3-(2)번 문제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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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의 정답은 A아니면 B가 된다. 서답형이지만 결국 둘 중에 하나 고르는 문제가 된 것이다. 이런 문제 앞에서 교사가 서성이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면 결국 답을 가르쳐주는 결과가 되고 만다. 

6학년 과학 서답형 4번 문제도 마찬가지다. 바다와 육지의 기온차에 의해 바람이 부는 방향을 화살표로 그리는 내용이다. 낮에는 바다에서 부는 해풍이므로 아래 문제에 대해 화살표를 → 라고 써야 한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도 둘 중에 하나를 쓰는 것이므로 교사의 한 마디나 제스처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역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유형입니다. 게다가 바다 그림이 너무 조악하여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문제입니다.
 역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유형입니다. 게다가 바다 그림이 너무 조악하여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문제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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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6학년 교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느 학교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시험 준비 시간에 미리 시험지를 나눠준다거나, 아이가 정답을 쓴 OMR답안지가 틀렸다고 생각해 바꿔달라고 할 경우 시험감독인 교사가 'OMR답안지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 과학 시험지에서는 맞는 걸 고르라거나 옳지 않은 것을 고르라는 문제가 많아 혼동하는 아이들에게는 시험지를 보면서 다시 보라는 힌트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제고사 점수 공개 방침에 교사들은 죽을 맛

제천 사건이 터지기 전에 시험부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교과부가 일제고사 점수를 공개하고 올해는 특히 학교별로 결과를 3단계로 발표한다고 해서 학교간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파행에 대한 교사들의 감각도 무뎌질대로 무뎌진 상태였다.

"다른 학교는 8교시도 한 대. (7교시 하는 )우리는 좀 낫지."
"놀토에 안나오니 우리는 좀 낫지."

강제보충수업이나 휴일 등교 뿐 아니라 문제풀이 수업 자체가 학생들의 학습흥미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해서는 안될 일이다. 하지만 교과부나 교육청이 공문만 내보내고 어떤 교육청은 심지어 다른 학교에 비해 보충수업 시간이 적다고 압력을 주는데 교사 혼자 견디기가 쉽지 않다.

특히 현직 교감은 교장 승진을 앞두고 학교별 점수를 반영한다는 소식이 암암리에 돌아 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제천이나 옥천처럼 외곽에 있는 관리자들은 청주시내로 들어오는 데 일제고사 점수 올리는 게 최고의 과제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렇게 점수 1점이라도 올리는 것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교사들의 도덕성도 상대적 기준으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

충북교육청의 자업자득

충북지역은 2009년부터 온갖 교육과정 파행으로 언론을 장식해 왔다. 도교육청에서 장학사를 파견해 지역교육청을 다니고 지역장학사는 학교를 직접 방문해 교육과정 파행을 주문했다. 올해는 지역교육청 순위와 도순위까지 있는 공문이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그 파행정도가 더 심각했다. 청주교육청은 점수가 낮은 학교 관리자를 불러다 혼을 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지난 7월초 시험지옥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시민모임에서 서명운동을 할 때 학생과 학부모들이 일제고사와 보충수업에 대해 강하게 거부한다는 표현을 스티커로 대신 하였습니다.
 지난 7월초 시험지옥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시민모임에서 서명운동을 할 때 학생과 학부모들이 일제고사와 보충수업에 대해 강하게 거부한다는 표현을 스티커로 대신 하였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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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학교 현장의 압박감은 더 높아졌다. 이러니 학교별로 점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교사들의 지상과제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시험지옥이란 말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결국 교육과정 파행 정도가 가장 심한 충북에서 시험부정 사례가 나타난 셈이다. 올해는 다른 지역에서도 교육과정 파행이 심해졌으니 이러한 시험부정 사례도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일제고사야!

교과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할까? 임실의 일제고사 성적 조작 사건 이후 교과부는 감독을 강화하겠다며 지역별로 답안지를 모아 채점을 하게 했다. 그래도 시험이 이틀동안 실시되면서 학교에 답안지를 하루 묵히니 답안지를 고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광범위한 부정사례가 나온 전례가 있다. 

7월 13 14일에 본 초등 일제고사 시험지와 OMR카드 입니다. 교과부는 책상 크기에 맞게 A4로 크기를 줄이는 등 많이 신경을 썼지만, 결국 시험부정으로 일제고사는 또 다시 폐지논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7월 13 14일에 본 초등 일제고사 시험지와 OMR카드 입니다. 교과부는 책상 크기에 맞게 A4로 크기를 줄이는 등 많이 신경을 썼지만, 결국 시험부정으로 일제고사는 또 다시 폐지논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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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보기에는 일제고사 자체가 문제인데 시험의 공정성을 높인다고 교과부가 학부모 감독이란 편법을 쓰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혹자는 수능수준의 시험이라면 아예 고사장 정해서 따로따로 치루자고 말하기도 한다.
일제고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학교만징계하고 꼬리자르기 식으로 외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또 다른 부정행위 방지책을 발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급 수준에서 파악하고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학습 부진 문제를 전국적인 시험으로 골라내고 점수를 공개해서 학교간에 경쟁을 시키는 일제고사 체제 자체에 있다.

일제고사는 이제 이틀동안 보는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초등학교 교육과정 전반을 시험점수 올리기에 매진하게 하고 문제풀이로 획일화시키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러고도 일제고사가 부진한 학생들 성적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교과부는 하루빨리 문제투성이에 예산낭비인 전국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이전처럼 표집평가로 환원해야 한다.


태그:#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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