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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주리봉 가는 길에 용서마을 입구에는 느티나무 그늘이 좋은 광장이 있다.
 둥주리봉 가는 길에 용서마을 입구에는 느티나무 그늘이 좋은 광장이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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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거처하는 곳 용서폭포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구례에서 섬진강과 만난다. 섬진강은 구례를 가로지르며 흘러가고, 강 건너편에는 사성암으로 유명한 오산이 우뚝 섰다.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죽연마을에서 오산으로 올라 둥주리봉까지 능선을 탄다. 둥주리봉에서 용서마을이나 동해마을로 내려서면 산행이 끝난다. 산행의 가장 정점은 오산 아래 사성암에서 굽이치는 섬진강을 내려 보는 것.

오늘 산행은 둥주리봉으로 바로 오르기로 한다. 오랜만에 애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다. 둥주리봉 아랫마을인 용서마을로 향한다. 국도에서 벗어나 마을로 찾아들어가는 길이 복잡하다. 자칫하면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와야 한다. 철길 밑 터널을 지나고 작은 다리를 건너면 느티나무 서너 그루가 서있는 마을이 나온다.

마을은 평온하다. 큰 도로변에 용두마을이 있더니, 용서마을도 용과 관계있는 이름인가 보다. 용서마을 뒤에는 용서폭포가 있다. 용이 거처하는 곳(龍棲)이라는 의미가 있다. 폭포를 이루는 암벽은 큰 도로에서 보일 정도로 웅장하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없다는 게 흠이다.

용서폭포 가는 길에는 카페가 있다. 밥도 먹을 수 있고 차도 마실 수 있다. 뒤로 보이는 바위벽이 용서폭포
 용서폭포 가는 길에는 카페가 있다. 밥도 먹을 수 있고 차도 마실 수 있다. 뒤로 보이는 바위벽이 용서폭포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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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용서폭포. 움푹 들어간 곳에서 비가오면 큰 물줄기를 흘러 내린다.
 용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용서폭포. 움푹 들어간 곳에서 비가오면 큰 물줄기를 흘러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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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물줄기를 흘러 내리는 용서폭포
 가는 물줄기를 흘러 내리는 용서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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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광장을 지나 개천을 따라 올라간다. 집집마다 용서길이라는 주소가 붙었다. 이름이 아름답다. 모든 게 용서가 되는 길? 마을은 10여 가구 정도. 마을이 끝나면 카페가 있고 뒤로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작은 계곡을 건너 청량감이 넘쳐나는 오솔길을 200m 정도 걸으면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웅장한 용서폭포 암벽과 마주친다. 암벽 높이는 50여m 정도? 병풍처럼 둘러친 암벽 가운데로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아쉽다. 수량이 많으면 장관일 텐데. 폭포 아래 넓은 광장은 아늑한 느낌이다. 바위벽에는 몇 분이서 암벽타기를 즐긴다. 바위에 앉아 올려다보면서 아찔한 즐거움을 느낀다.

산을 얕잡아 보다가 숲속에서 길을 잃다

"폭포 뒤로 등산로 있어요?"
"아마 다시 돌아와야 할 건데."
"등산지도에 보면 폭포 뒤로 올라가는 길이 있던데요?"

암벽타기를 즐기는 분들의 불안한 눈빛을 뒤로하면서 폭포 옆으로 난 산길을 찾아 올라간다. 길은 급하게 오르더니, 점점 좁아지고, 수풀이 우거졌다. 길이 험해지자 애들이 돌아가잔다. 내 생각에는 조금만 오르면 산 능선으로 올라서서 등산로와 만날 것 같다. 기껏해야 600m 정도데.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니 조금만 오르면 좋은 길이 나올거야." 애들을 달래며 산길을 재촉한다.

산길을 가다보면 정상이 나오겠지? 요즘 산들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산속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는다. 그럴 경우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다.
 산길을 가다보면 정상이 나오겠지? 요즘 산들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산속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는다. 그럴 경우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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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산은 생각만큼 그리 만만하지가 않았다. 숲은 점점 깊어지고 산길이 없어진지는 오래다. 이제 너무 많이 올라와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가시덩굴과 작은 잡목들을 헤치고서 위로 올라가기만 할 뿐이다.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고, 쓰러진 나무는 밟기만 하여도 부서질 정도다. 위만 보면서 한참을 올라가지만 길은 나오지 않는다. 야생동물의 흔적은 불안한 마음만 키운다. 큰애는 돌아가자며 투덜댄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지 않느냐. 길을 잃어 힘든 상황에 처했으면 힘을 합쳐서 빨리 빠져나올 노력을 해야지. 되돌아갈 생각만 하면 되겠니."

산 속을 헤매다 노란리본을 만났을 때 기분

미안하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거친 산을 헤집고 올라간 작은 봉우리에서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가야할 산은 저 너머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지친다. 등산로를 벗어나 산속을 헤매는 것은 많은 체력과 고통을 수반한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지 1시간이 넘은 것 같다. 점심시간을 넘긴 지도 이미 오래다. 자리를 펴고 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더듬는다. 작은 봉우리를 빙 둘러도 내려갈 길은 없다. "무조건 환한 곳으로 내려가는 거다." 그렇게 수풀을 헤치고 내려서다 나무에 걸린 노란리본을 만난다. 너무나 반갑다. 리본 아래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반질반질한 등산로가 가로질러 간다. 이 길을 찾지 못하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산속에서 헤맸던가. 만약 반대쪽으로 길을 잡았다면 아직도 산속에서 길을 더듬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능괭이 삼거리. 이길을 찾지 못해 숲속을 헤매고 다녔다. 다음부터 절대 등산로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능괭이 삼거리. 이길을 찾지 못해 숲속을 헤매고 다녔다. 다음부터 절대 등산로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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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밝은 표정과 가벼운 걸음으로 산길을 걷는다. '능괭이' 이정표를 만난다. 삼거리다. 위로는 둥주리봉 정상, 아래로는 동해마을과 용서마을로 가는 길이다. 쭉 내려가면 용서마을이라니…. 이 길을 못 찾고 참 먼 길을 돌아왔다. 정상까지 1.3㎞ 남았다고 알려준다. 지금쯤 정상을 지나 능선을 타고 있어야 할 건데. 잠시 쉬면서 애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길을 잃었을 때 기분이 어때? 힘들었지? 길이 없는 곳을 간다는 것 그 자체가 힘들었던 거야. 좋은 길이 있는데도 조금 돌아가는 게 싫어서,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들어선 길이 힘들게 했잖아. 가끔은 모험도 할 필요가 있겠지만, 가야할 목표가 정해져 있다면 예측이 가능한 길을 가는 게 좋겠지. 너희들은 어떤 길을 갈래? 가야할 길을 가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야. 너희들은 학생이니 가야할 길이 어디겠니?"

꽃은 스스로 이름을 표현한다

산길은 너무나 좋다. 험한 길을 빠져나와선지 더욱 기분이 좋다. 산길 옆으로 군데군데 여름 꽃들이 피었다. 애들과 꽃 이름 맞추기를 한다.

"이 꽃을 보면 생각나는 건" "바람개비꽃" "베 짜는 것과 관계있는데" "……" "도자기 만들 때" "아! 물레" "그래 물레나물이야"

"이 꽃은 비 오는 날이 생각나는데" "우산?" "그래. 우산나물이야. 잎 모양이 우산처럼 생겼지?"

산길에서 만난 여름 꽃. 위에서부터 물레나물, 우산나물, 일월비비추, 패랭이꽃
 산길에서 만난 여름 꽃. 위에서부터 물레나물, 우산나물, 일월비비추, 패랭이꽃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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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하나주면 안 잡아먹지. 이 꽃은 이름이 길어." "호랑이꽃?" "햇님과달님?" "비슷한데 뒤에가 비비추야" "해달비비추?" "조금 어렵지? 일월비비추야?"

"이 꽃 보면 생각나는 거" "카네이션?" "비슷한데, 머리에 쓰는 것과 관계있는데" "아! 알았다. 패랭이꽃"

꽃 이름 맞추기를 하면서 산길을 가니 힘든지 모르게 올라간다.

복분자딸기는 검은색에 새콤달콤

산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몇 번 하다 보니 정상에 올라선다. 표지석은 둥주리봉이 690m라고 알려준다. 정상에 올라서니 오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호남정맥이 흘러간다. 산 아래로 섬진강이 내려다보인다. 산행계획은 능선을 타고 사성암까지 가기로 했었는데, 산길을 헤매느라 시간이 너무 흘러 버렸다. 이미 3시가 넘었다. 별 수 없이 용서마을로 다시 내려가야겠다. 올라왔던 길은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둥주리봉을 아래 전망바위에서. 산너울과 어울린 경치가 일품이다.
 둥주리봉을 아래 전망바위에서. 산너울과 어울린 경치가 일품이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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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익어가는 복분자딸기. 통통하게 잘 익은 딸기는 새콤달콤
 까맣게 익어가는 복분자딸기. 통통하게 잘 익은 딸기는 새콤달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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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마을 이정표를 보고 내려가다 삼거리에서 용서마을로 내려선다. 산길은 완만하게 흘러내리듯 걷는다. 산길이 길다. 발가락이 따갑다. 물집이 생긴 것 같다. 산속을 헤매다 보니 조금씩 미끄러진 게 발가락에 무리가 갔나 보다. 한참을 내려서니 임도와 만난다. 하늘을 가린 숲속에서만 있다가 환한 하늘을 만나니 너무나 좋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에 하얀 딸기나무를 만난다. 복분자딸기다. "어! 빨간색에서 검은색으로 익네." 빨간 열매와 검은 열매가 같이 달린 게 신기하다. 까맣게 익은 딸기를 따서 입에 넣는다. 새콤달콤하다. 가시덩굴을 헤쳐 가며 딸기를 따서 먹는다. 복분자딸기 따 먹는 맛에 힘들었던 산행이 즐거워졌다.

구례 사성암과 오산 등산지도

벼랑에 세운 사성암 약사전과 사성암에서 내려다본 섬진강과 구례읍
 벼랑에 세운 사성암 약사전과 사성암에서 내려다본 섬진강과 구례읍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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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서 둥주리봉까지 이어지는 등산로
 오산에서 둥주리봉까지 이어지는 등산로
ⓒ 구례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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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둥주리봉, #사성암, #용서폭포, #오산,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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