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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지역 골재원노동자들이 9일 명동성당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골재원노동자들이 9일 명동성당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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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한국의 월드컵은 이미 끝났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경기마다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도 4년마다 꺼내 입던 붉은 티셔츠를 다시 옷장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8일 오후 7시, 서울 명동 한복판에 붉은 옷을 맞춰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월드컵 응원전 때 많이 볼 수 있었던 젊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깊게 팬 눈, 햇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 얼굴에는 여기저기 주름이 갔고 '쩍쩍' 갈라질 만큼 거친 손에는 촛불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파이팅 코리아' 대신 '4대강 파괴, 민생파탄'이라고 적힌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대신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대구경북골재원노조원 50여 명이 명동성당 앞을 붉게 물들이며 집회를 시작할 때쯤 거리에는 빗방울이 떨어졌다. 노조원들이 지난해 투쟁을 시작하면서 단체로 맞춘 붉은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들은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유역에서 골재채취를 할 수 없게 돼 일자리를 잃었고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

4대강 사업으로 대구경북지역의 골재채취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낙동강 인근에서 20~30년간 골재업을 해온 약 60여 개의 골재채취업체가 있지만 정부는 4대강 사업이 시작된 이후 이들 기업에 골재채취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지난 5월에는 4대강 사업으로 더 이상 골재 채취를 할 수 없게 된 한 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그는 "정부가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 사업을 추진해 원망스럽다"며 "사업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힘들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노동자들의 심경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일을 할 수 없게 된 골재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도 골재장비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4대강 사업은 단 2년 만에 앞으로 약 34년간 이용할 수 있는 골재를 한꺼번에 준설하고 있어 4대강 공사가 끝나도 이들은 생계가 막막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의 생계를 위한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집회현장에서 만난 진학근(56)씨는 두 딸은 물론 조카 세 명까지 함께 살고 있다. 진씨는 "스물세 살부터 33년간 낙동강에서 골재채취 장비만 운전해서 먹고 살았다"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가장으로서 가족들 보기 부끄럽다"고 괴로워했다.

"큰애는 대학교 4학년이고 작은애는 2학년이다. 큰애는 작년에 졸업을 해야 하는데 등록금을 낼 돈이 없어 휴학을 했고 둘 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은 가족끼리 외식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꿈도 못 꾼다. 이렇게 서울로 올라와 투쟁하는 것도 돈이 드는데 그 경비도 아깝다. 돈이 없어 카드로 긁다보니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이다."

진씨가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목소리가 커서 잘 들렸지만 말을 할수록 점점 작아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묻혀가고 있었다. 음악소리가 커진 것이 아니라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그는 "30년 넘게 골재업만 하던 사람이어서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없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 구하기 힘든데 나이 먹은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라고 울먹이며 눈시울을 적셨다.

명동성당 촛불집회에서 만난 진학근씨. 그의 얼굴에는 가족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명동성당 촛불집회에서 만난 진학근씨. 그의 얼굴에는 가족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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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대책 없는 정부... 골재원노조, 매주 상경투쟁

대구경북지역의 골재노동자들이 생존권 투쟁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그때부터 매달 한두 차례 서울로 올라와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서울시내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3보1배를 진행했고 4대강 사업 반대 집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고 있다.

2008년 12월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시작하면서 골재노동자들에게 '공사가 시작돼도 일정 기간 골재채취를 할 수 있으니 이후 대책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마련하자'라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을 시행한 지 2년이 다 돼가는 현재, 정부는 '보상을 해줄 법적 기준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날도 골재원 노동자들은 국토해양부를 찾아가 담당자와 면담을 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자"라는 공허한 답변만 들어야 했다. 그 후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을 하겠다며 청와대로 향했지만 50여 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길을 꽉 메운 경찰을 뚫을 수는 없었다.

골재원노조 권태완 고문은 "4대강 사업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일하는 사람이나 쫓아내지 말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한 업체의 사장은 나에게 배에 불을 붙여 강 위에 떠 있는 (4대강 사업) 준설선을 들이받아 불태워 버리라고 할 정도로 현지의 상황은 정말 안 좋다"고 설명했다.

이날 빗속에서 진행된 집회에는 홍희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자리해 노동자들을 격려했다. 홍 의원은 집회 연설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정부를 규탄한다"며 "골재원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함께 들고일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골재원노조는 앞으로 매주 한 번씩 상경투쟁을 벌이며 그때마다 명동성당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태그:#4대강, #이명박, #골재원,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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