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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국내 연주음반 가운데 'Le Petit Piano'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정재형.
 상반기 국내 연주음반 가운데 'Le Petit Piano'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정재형.
ⓒ 안테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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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로운 미디어들을 통해 '기능으로서 음악 듣기'가 대세를 이루는 요즘, 개인의 '여가로서의 음악 듣기'는 어느 순간 일종의 사치로 전락해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음악을 소중하게 듣는 사람들이 외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여가로서의 음악듣기의 행복감을 아는 이라면, 굳이 최근의 음악적 트렌드를 억지로 따라갈 필요가 없고 여러 악기가 사용된 겉치레 가득한 음악을 들을 필요도 없다. 또한 잠시 귀만 휘어잡는 감각적인 멜로디가 섞여있는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으니, 어쩌면 그렇게 소중히 음악을 듣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즐겁게 음악을 듣는 층일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이렇게 집중해서 '음악을 위해 음악을 듣는' 청자들은 대개 조용한 소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악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이 소리를 통해 전하고, 혹은 받아들이고자 하는 주제는 사실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들에게 일상의 명상과 새로운 행복을 제공할 만한 소리들. 2010년 상반기에 발표된 음반 가운데 기계소리 없이 피아노 한 대, 혹은 비파 한 대로만 연주된 주목할 만한 어쿠스틱 음반들을 살펴본다.

정재형의 <르 쁘띠 피아노(Le Petit Piano)>

정재형의 [Le Petit Piano]
 정재형의 [Le Petit Piano]
ⓒ 안테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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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베이시스' 출신이자 유희열, 페퍼톤스, 루시드 폴이 소속된 <안테나 뮤직>의 뮤지션이기도 한 정재형이 발매한 그의 네 번째 음반이자 피아노 솔로 음반이다.

올해 4월 발매이후, 교보문고 클래식-뉴에이지 차트에서 8주가 넘게 정상을 차지한 이 음반은, 그가 파리 유학시절에 배운 그만의 피아니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음반이기도 하다.

우선 음반에 실린 그의 자작곡 8곡은 대부분이 감성적이고도 대중적인 터치로 이루어져있어 감상하기에 전혀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묻어나는 그의 과거 음악적 행보를 상기하며 이번 음반에 조금은 실험적인 연주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와 우려는 애초에 품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는 이번 음반의 목표를 음악을 듣는 청자에게 집중시켰다. 그만큼 <르 쁘띠 피아노(Le Petit Piano)>는 대중 친화적인 피아노 연주 음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의 코드 진행이나 구성이 단순한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이번 4집에 실린 그의 연주곡들을 감상한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그가 <르 쁘띠 피아노(Le Petit Piano)>에서 연주하는 곡들은 절대 쉽게 만들어진 곡들이 아니다. 다만, 듣는 이에게 단순하고 편안하게 들릴 뿐이다. 어찌 보면 꽤나 녹록치 않은 시험문제의 풀이과정을 굉장히 친절하고도 일상적인 어휘로 학생들에게 능숙하게 설명해 주는 그것과 닮아있다.

그의 이러한 뛰어난 작곡자적인 면모는 바로 이러한 표현력에서 발휘된다. 작곡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려운 곡일지라도, 대중들에게는 쉽게 다가가도록 유도하는 것. 전위적 표현능력을 절제하고 한정하는 것. 알다시피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의 그러한 능력이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까지 귀결되거나 연주 음반 전체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단계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감성은, 이러한 그의 작곡가적 능력으로 인해 더욱 더 깨끗하고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그가 들려주는 소리들 역시 청자에게 쉽게 흡수되는 것이다.

즉 정재형의 <르 쁘띠 피아노(Le Petit Piano)>는 티보데나 파스칼 로제와 같은 연주자의 숨소리는 없을지언정, 정재형만의 프랑스, 그리고 드뷔시와 같은 작곡가의 온전함이 대신 묻어있는 훌륭한 연주 음반이라 할 수 있겠다.   

김광석의 <구름위에서 놀다>

긴 세월 기타연주를 통해 엄청난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했던 기타리스트 김광석.
 긴 세월 기타연주를 통해 엄청난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했던 기타리스트 김광석.
ⓒ Blue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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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와 연을 맺은 지 40년이 넘는 베테랑 연주자. 그 누구보다도 국내에서 오랫동안 기타를 만져온 그가 새롭게 발표한 음반인 <구름위에서 놀다>. 그의 이 4집 음반은, '김광석'이란 이름 석 자가 짧은 삶을 마감하여 우리에게 전설로 기억되는 한 포크음악 가수의 것만이 아님을 증명한다.

특히나 이번 음반에선 전통악기인 비파와 기타를 합해서 만든 '비타'라는 악기와 그가 직접 만들어낸 악기인 '현판'을 통해서 앨범 전체를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가 언제나 추구했던 '세상에 없는 소리'의 개념은 이번 음반에서 이러한 새로운 악기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김광석의 [구름위에서 놀다]
 김광석의 [구름위에서 놀다]
ⓒ Blue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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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굳이 멀리 있는 것을 끌어다 소리 실험에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 <구름위에서 놀다>에서 들리는 소리들은 우리 내면의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리꾼 장사익, 대금명인 이생강, 북소리 김대환, 춤꾼 하용부 선생과의 협연에서 그가 말하는 새로운 소리라는 것의 실체는, 결국 우리에게 가려져 있던 우리 스스로의 소리다.

특히 김광석은 그러한 소리를 번잡하게 내지르지 않고 한 공간에 집중시킴으로써 그 소리를 더욱 극대화 시키는 능력을 이번 음반에서도 여지없이 발휘한다.

실제로 우리는 무언가가 바삐 움직이는 것에 집중하기란 어렵다. 보고자 하는 것이 바쁜 움직임을 멈추고 어느 시점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물체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음악도 어느 한 시점 그리고 한 공간에 머물러 우리가 그의 소리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어찌 보면 요즘과 같이 빠른 시대에는 참으로 고마운 음악들이다.

음반은 총 8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선 정재형의 음반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대중친화적인 음반이라 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특히 그의 3집인 <은하수>의 연주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이번 음반이 조금 낯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가 이번 음반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인 '선비정신'에 입각해 찬찬히, 그리고 조용히 그의 연주를 곱씹어 보면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음악이 주는 새로운 즐거움에 눈뜨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강신태의 <피아노 리트(Piano Lied)>

강신태의 [Piano Lied]
 강신태의 [Piano Lied]
ⓒ 오디오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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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오디오 가이>라는 크지 않은 레이블은,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늘 뛰어난 음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들이 레이블 탄생 1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음반이 바로 현재 대전 시립 교향악단에 상임 피아니스트로 있는 강신태가 연주한 <피아노 리트(Piano Lied)>다.

음반은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 가운데 '꽃의 이중창'이나 드뷔시의 '조각배', 그리고 보로딘 현악 4중주 가운데의 '녹턴'과 같이, 우리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클래식 곡들을 새롭게 편곡해 부제를 달고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적으로는 클래식을 어렵게 받아들였던 청자들을 위해 상당히 친절하게 표현된 연주와 라이너노트의 설명이 특징인 음반이다. 그리고 이 음반이 꾸준히 말하는 너무나 친절한 라르고 피아니즘, 바로 그 점에서 클래식 마니아들과 대중들 사이에 호불호가 나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시 이 음반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음질'이다. 누군가 <오디오 가이>를 통해 발매된 피아노 솔로 음반 가운데서는 최고의 음질을 자랑한다고 표현할 만큼 이 음반은 '바로 내 옆에서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그 음질에 집중하고 있다. 달라붙는 인위적인 소리를 최대한 배제하고, 피아노 그 자체에 집중하는데 온 힘을 쏟아 부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울러 그러한 소리들은 음반의 편곡자인 한창욱이 만든 거부감 없는 곡의 진행으로 인해 청자에게 굉장히 천천히, 그리고 그 어떤 음악보다 편안하게 흡수된다.  

<오디오 가이>의 HQCD(Hi-Quality CD)의 음질을 직접 느끼면서 아름답고도 맑은 피아노의 소리를 감상하고 싶다면, 이 <피아노 리트(Piano Lied)>가 최적의 음반이 될 것이다.


태그:#정재형, #김광석, #강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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