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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다.

비가 오려면 억수같이 내렸으면 좋겠다. 오락가락 내리는 비에 짜증이 난다. 해님 얼굴을 볼 수 있어 마음을 말리려하면 하늘이 어떻게 알았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한바탕 쏟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 사이로 해님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마음만 피곤해진다. 마음 둘 곳을 찾기가 어렵다. 이럴 때에는 가슴을 뻥 뚫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전주의 맛
▲ 반찬 전주의 맛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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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몰고 신나게 달리기라도 한다면 좋을 것인데, 하늘을 믿을 수 없어 그럴 수도 없다. 물론 빗속을 달리는 기분도 나쁘지 않지만, 2%가 부족하다.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없다. 이런 때에는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가서 미각을 즐기는 방법이 최고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대안이다. 시외로 나가는 것은 날씨가 협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도심의 식당이다.

갈치탕.
장마철에 적정한 음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갈치에 감자를 넣고 끓이는 갈치 탕은 별미다. 계절과 상관없이 미각을 돋울 수 있는 음식이다. 1차로 주방 안에서 끓여 나오는 탕은 2차로 다시 끓여야 제 맛이 난다. 신선한 채소를 곁들이게 되면 바다와 산의 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좋다. 갈치는 바다의 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여기에 곁들이게 되는 산나물은 산의 향이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맛이어서 그런지 푹 젖게 된다.

음식은 제일 먼저 눈으로 즐긴다. 시각적으로 맛을 보는 즐거움은 미각의 세계에 들어가는 입문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눈으로 즐길 수 없다면 그 음식은 제대로 된 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갈치 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입안에서는 침이 샘솟는다. 시각적으로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눈으로 맛을 충분히 즐기게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다.

다음으로는 손으로 음식의 맛을 즐기게 된다. 끓고 있는 탕을 좀 더 맛있게 혼합하는 즐거움이다. 젓가락을 사용하여 음식이 골고루 섞이게 만드는 즐거움 또한 아주 크다. 미각의 독특한 매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나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더함으로서 맛에 일조하였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이런 긍정적인 마음이 맛을 더욱 더 특별하게 만든다. 손으로 맛의 탑을 쌓음으로서 맛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독특한 미각의 세계
▲ 갈치 탕 독특한 미각의 세계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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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계는 맛의 세계를 탐닉하면 된다. 미각의 절정을 담당하는 기관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혀다. 혀에 전해지는 예민한 미각을 즐기고 있노라면 행복해진다. 일상의 근심걱정은 범접할 수 없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세상의 일들은 잠시 뒤로 밀쳐진다. 맛의 세계에 들어서서 푹 젖어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맛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오늘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독특한 맛의 세계에 취해 있으면, 모든 것이 잊을 수 있다. 비가 내리면 묵은 때가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것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많은 것들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 그 무엇도 문제로 남아 있지 않다. 미각에 젖어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 행복해진다. 나를 무겁게 잡고 놓아주질 않던 그 많은 문제들도 여기에서는 그 어떤 작용도 할 수 없다. 얼큰한 국물의 맛에 취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살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일어난다.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짐작도 하지 못하였던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발목을 잡아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 파동의 효과는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파동이 심해지면 당황하고 그 것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그 것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럴 때 미각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면 어렵지 않게 해결되기도 한다.

문제로 인해 애가 탄다. 안타까운 마음이 산이 되면 주체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 고춧가루가 가미된 갈치 탕을 먹게 되면 말끔하게 씻어 낼 수 있다. 내리는 빗물에 흘러내려 가듯이 개운해질 수 있다. 갈치탕을 먹음으로써 왜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 것은 입안에 진하게 전해지는 갈치탕의 독특한 맛의 효과다. 특별한 맛을 통해 나 자신을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효과다.

낭만이 살아나는
▲ 미각의 세계 낭만이 살아나는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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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바라보는 것.
잊고 있던 나의 세계를 되찾는 일이다. 얼큰한 갈치 탕의 맛을 통해 놓아버리고 살았던 자아를 되찾을 수 있다. 나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깊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 고통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고, 문제의 뿌리를 알 수 있게 된다. 고통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고, 괘감을 느낄 수 있다.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얻을 수 있는 쾌감을 누릴 수 있다.

얼큰한 갈치탕의 맛의 세계에 젖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장마로 인해 가라앉아 있던 기분을 완전히 되살려낼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 식당 주인이 고맙기만 하다. 더군다나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맛을 세계에 흠뻑 누릴 수 있었으니,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식당을 나오면서 기분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장마의 덫에서 가뿐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구름조차 낭만적으로 다가왔다.<春城>

덧붙이는 글 | 단독



태그:#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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