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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치매로 고생하시던 장모님이 한 달 전 쯤 쓰러지셨어요. 물론 그동안에도 식구들하고 전혀 의사소통은 안되셨어요. 가족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마음준비를 하고 있는데, 의사는 장모님 병세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도 해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되지요?"

"오래도록 투석을 해오신 아버지께 정밀 검진 한번 해보시자고 설득해 입원을 했는데, 뭐가 잘못 됐는지 상태가 나빠진 거예요. 검사 과정에서 감염이 된 건지, 의사는 냉랭하기만 하고, 괜한 짓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힘들어요. 어제는 글쎄 의사가 아버지께서 못 일어나실 것 같다고 1인실로 옮기면 어떠냐고 해서 엉겁결에 옮겼는데, 마음이 무겁네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예요. 요양원에 5년 넘게 계시던 시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해서 급히 병원으로 옮기고 친척들한테도 연락해서 다들 마지막 병문안을 했는데, 일주일만에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가셨어요. 회생하신 거지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일을 겪게 될지 모르겠어요."

"몇 달 못 넘기겠다고 했는데 노인전문병원에서 잘 돌봐드리는 덕에 거뜬히 일어나 움직이세요. 정신은 좀 오락가락하시지만, 그래도 몸은 거의 다 회복이 되셨어요. 이 상태로 몇 년이고 갈 거 같아요!"

최근 전화로 혹은 직접 얼굴을 마주한 채 나눈 어르신 관련 이야기들이다. 동년배 어르신들께 이 이야기를 전해드리니 다들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차신다. 걱정이라고, 다들 너무 오래 살아서 걱정이라고.

<헬프맨> 1권 표지
▲ 만화 <헬프맨> <헬프맨> 1권 표지
ⓒ (주)학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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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오래 살고, 오래 사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이제는 그 누구도 노인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하며 건성으로 넘기는 듯 하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노인과 관련된 문제와 어려움으로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만화 <헬프맨>은 우연히 노인을 돌보는 일에 발을 들여놓게 된 청년 '모모타로'를 주인공으로 한 노인 관련 만화다. 제도를 알리거나 현실을 고발하는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노인과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요양보호사 혹은 사회복지사)을 중심에 놓고 요양보험제도와 요양원, 케어 매니저, 방문 요양, 치매, 노인가족, 독거노인, 고독사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천방지축인 '모모타로'는 제도의 허점 속에서 인간 중심의 돌봄(care)에 눈을 떠 때로는 제도를 깨뜨리려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감을 견딜 수 없어 현장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모모타로'를 끝까지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괴팍한 성정으로 사람을 괴롭히거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모타로'의 진심에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을 보는 일은 즐겁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제도의 틀 안에서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복지활동과 돌봄노동은 정당한 대가는커녕 낮은 월급과 과도한 업무로 인해, 한 때는 각광받는 직업 영역이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높은 이직율과 지원자 감소로 이어지고 만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하고 일을 하지만,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생활비조차 되지 않는 저임금의 덫은 일에 대한 긍지나 기쁨까지 갉아먹고 만다. 그래서 '모모타로'는 여전히 고민 중이고 방황 중이다.

<헬프맨) 13권 표지
▲ 만화 <헬프맨> <헬프맨) 13권 표지
ⓒ (주)학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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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타로'가 이 길로 들어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친구 '진'과 현장 동료들, 가족들의 면면이 만화의 칸칸을 재미있게 채우고 있다. 더욱이 '모모타로'가 만나 관계를 맺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에서 만화의 즐거움은 정점에 이른다.

특히 노년의 성(性) 문제(제4권 [고령자 성문제 편])나 고독사(제10권 [간호복지사 학생 편]), 치매(제 11, 12권 [치매 편])를 다룬 부분을 읽다 보면 만화이기에 가능한 표현들을 만날 수 있다. 현실을 보다 더 현실답게 표현할 수 있는 만화의 기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만화의 강점은 노인문제를 나열하고 그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예측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 있다. 고등학생 '모모타로'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청년 '모모타로'로 이어지면서 일과 직업, 공부, 가족관계, 연애, 우정 등등을 그리면서 청춘들의 성장기로도 손색이 없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간호복지사' 같은 용어의 원어(영어 혹은 일본어)가 표기되어 있지 않아 우리 식으로 하면 어떤 것에 해당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다.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번역할 때 조금 더 세심하게 신경 써 주었더라면 노인복지 현장의 교재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인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어르신이 집안에 계신 가족들, 부모님 부양과 수발 문제로 고민인 사람들이 다함께 읽어볼만 하다. 나는 특히 노인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선후배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 노년의 문제를 이렇게 만화로 꼼꼼하게 다룬 저자가 놀랍다는 이야기와 함께 '모모타로'의 고민이 지금 한국의 노인복지 현장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의 고민과 별다를 게 없다면서.

만화 속 노인들은 자신들을 돌봐주는 젊은 사람들에게 표현하든 표현하지 않든 자기만의 뜻과 소리를 가지고 있다. 나이 듦에 대한, 늙어가는 것에 대한, 이미 늙어 어쩔 수 없게 된 자신에 대한 할 이야기가 많다. 이 부분이야말로 만화를 읽어나가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누구도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화 속 할머니 한 분이 독백을 한다.

'한 명씩 한 명씩 모두 사라져가는 거야...마지막에 남는 건 움직이지 않게 된 이 몸뚱이 하나...그게 나이를 먹는다는 거야...알고는 있지만 견뎌낼 수 없을 때도 있어...그야, 나도 처음 겪는 일이니까...'

그러고보니 개개인에게 나이 듦이란 처음 겪는 일. 그러니 당황스럽고 힘들고 견디기 어렵고 부담스럽고 벗어나고 싶고...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응을 하기 위한 시간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리라. 나이 듦이 모두에게 처음 경험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어르신들을 대할 때 기다려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나이 오십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는 나이이므로...

덧붙이는 글 | 만화 <헬프맨> (저자 : Riki Kusaka, 번역 : 이주련, 손희정 / 학산문화사)



헬프맨! 1 - 노후보험제도

쿠사카 리키 지음, 학산문화사(만화)(2004)


태그:#헬프맨, #노인장기요양보험, #요양보호사, #노인복지,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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