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4강 진출을 알리는 남아공월드컵 공식 홈페이지

독일의 4강 진출을 알리는 남아공월드컵 공식 홈페이지 ⓒ FIFA


'게르만 전차군단' 독일은 단기전의 영원한 강자다. 통산 월드컵 3회 우승, 유럽선수권 3회 우승의 화려한 경력을 비롯해 지난 2002 한일월드컵 이후 3회 연속 4강 이상을 기록했고 지난 유로 2008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최근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띈다. 숙적으로 꼽히는 '축구종가' 잉글랜드를 16강전에서 4-1로 꺾은 데 이어 8강전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인 아르헨티나마저 4-0으로 대파하고 4강에 올랐다.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호주전(4-0)까지 포함하면, 4골 이상 넣은 것만 3경기째다. 독일은 이번 대회에서 총 13골을 기록하며 출전국 전체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실점은 단 2골 뿐이다. 공수 양면에서 가장 균형잡힌 전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

사실 독일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적지 않은 전력누수가 예상됐다. 유럽 지역예선에서 주전 수문장이었던 로베르트 엔케가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두고는 독일의 '심장'으로 꼽히던 간판스타 미하엘 발락이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는 불운을 겪어야했다.

간판 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지난해 최악의 부진을 겪으면서 최종엔트리 발탁 때까지 독일 언론들 사이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선수다. 여기에 가나, 세르비아, 호주와 한조가 된 대진운은 이번 월드컵 '죽음의 조' 중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여서 '조별리그 통과도 쉽지 않으리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본 독일의 모습은 달랐다. 대표팀은 오히려 4년 전 안방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때보다 전력이 더욱 안정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첫 경기에서 복병 호주를 4골차로 완파한데 이어, 세르비아전에서 클로제의 퇴장 악재와 판정 불운속에서 0-1로 덜미를 잡혔지만, 최종전에서 가나를 1-0으로 제압하고 조 1위를 확정지었다. 토너먼트에서는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같은 우승후보들을 연이어 만나는 불운속에서도 오히려 2경기 연속 4골을 집어넣는 폭발력을 과시하며 정면돌파에 성공했다.

'힘의 축구'하던 독일, 기술 축구로 회귀하다

독일의 최대강점은 무엇보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바탕으로 한 신구조화다. 2002 월드컵에서부터 주역으로 활약했던 클로제를 비롯해 4년 전 독일월드컵에서 발굴해낸 루카스 포돌스키, 필림 람, 페어 메르테사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등이 착실하게 성장하며 팀의 중추를 담당하게 되었다. 여기에  토마스 뮐러, 제롬 보아텡, 메수트 외질 등 기술과 패기 를 겸비한 20대 초반의 신예들이 가세하며 전력이 더욱 탄탄해졌다.

이번 대회에서 눈에 띄는 독일축구의 변화는 바로 기술축구로의 회귀다. 독일은 90년대 이후로는 압도적인 체격조건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힘의 축구'를 구사하는 팀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만큼 재미는 없지만 실리적인 축구를 구사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독일은 외질과 슈바인슈타이거가 같이 기술력과 스피드를 겸비한 미드필더들을 중심으로 한 창의적인 패싱게임 위주의 축구를 펼치고 있다. 외질, 보아텡 등은 모두 이민자 출신으로 독일축구의 약점이던 순혈주의와 폐쇄성을 깨고 경직되어었던 독일축구에 새로운 창의성과 활기를 불어넣었다. 현역시절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독일축구에 정통한 차범근 위원도 독일대표팀의 선전 원인을 전통적 파워축구에 '기술축구'를 결합한 것으로 정의내렸을 정도다. 

이러한 게르만 돌풍의 중심에는 바로 사령탑 요아힘 뢰브 감독이 자리하고 있다. 독일은 유로 2004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은 이후 곧바로 대대적인 세대교체에 돌입했는데, 뢰브 감독은 당시 수석코치로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브레인 역할을 담당하며 독일축구 변화의 초석을 닦았다. 클린스만 감독의 실질적인 전술이 모두 뢰브 감독의 두뇌에서 나왔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독일월드컵 3위로 준수한 성적표를 거둔 이후 안정적으로 대표팀을 물려받은 뢰브 감독은 유로 2008 준우승에 이어 다시 이번 남아공월드컵 4강으로 다시 한 번 지도력을 인정받으며 독일축구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꽃중년스러운 외모와 뛰어난 패션감각 등으로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 감독으로 떠오르고 있다.

19회째 월드컵에서 본선에 오른 것만 17번

독일의 돌풍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표선수들이 가지는 국가관과 마인드의 차이다. 개인주의가 특히 발달한 유럽에서 독일은 드물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자부심, 단체의식에 대한 사명감이 높은 편이다. 사실상 대표팀보다 소속클럽을 중시하는 경우도 많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독일 선수들은 국가를 대표하여 참여한다는 것을 더 우선적인 명예로 여긴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유럽 3대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보다 다소 뒤질지 몰라도, '팀으로서의 독일'이 메이저대회에서 다른 경쟁 국가들보다 더 높은 파괴력을 가지는 이유다.

독일 대표 선수들의 국가대표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은 세계 어느나라 못지 않다. 단기전이 결국 조직력과 수비에서 결판이 난다고 했을 때 남다른 국가관과 목표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독일이 국제대회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일 축구의 모태인 분데스리가는 70~80년대 전성기를 누린 이후 한동안 쇠퇴기를 맞이했다. 유럽축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조금씩 밀려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독일축구가 객관적인 전력이나 수준면에서 하향세를 걷던 시절에도 국제무대에서 올린 성과는 꾸준했다는 점이다. 독일은 월드컵과 유럽선수권대회 등 메이저대회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해오며 '토너먼트 대회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왔다. 올해로 19회째를 맞는 월드컵에서 본선에서 오른 것만도 17차례나 되고 우승 3회, 준우승 4회를 차지했다. 결승 진출 횟수만 놓고보면 브라질과 함께 공동1위다.

분데스리가는 여전히 유럽 5대 리그에 속해있지만, 냉정히 말해 시장규모나 선수층에서 빅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보다는 다소 떨어진다는 취급을 받는 게 사실이다. 대신 독일은 빅리거들을 보유한 다른 어느 나라 대표팀과 견줘도 우위에 있는 '조직력'이 있다.

독일 대표팀 23명은 모두 자국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과 함께 자국 리그 출신으로만 대표팀을 꾸린 잉글랜드(16강), 이탈리아(조별리그 탈락)와 비교해도 독일은 분명 우위에 있다. 이번 대회에서 비난의 중심에 놓였던 프랑스, 잉글랜드, 이탈리아의 스타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서 보여준 충성심이나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분데스리가는 최근 유럽 리그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챔피언스리그 등 국제대회에서의 연이은 선전을 통하여 유럽의 중심으로 회귀하고 있다. 강한 자생력을 갖춘 리그와 선수들의 투철한 국가관, 협회의 장기적인 비전과 안정적인 신구조화 등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부활의 길을 걷고있는 독일축구의 상승세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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