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성산포항에서 소섬으로 가는 연락선
 성산포항에서 소섬으로 가는 연락선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저기 학교건물 보이지요? 저 곳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유치원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책임자는 한 사람입니다. 그분의 직함을 뭐라고 부르겠어요?"

제주도에 딸린 가장 큰 섬, 모양이 소가 드러누워 있는 것 같다하여 '우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섬에 들어가 우두봉(쇠머리 오름)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였다. 버스를 타자마자 마이크를 잡고 안내를 하던 운전기사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아, 그야 교장선생님이겠지요, 비록 학생 수는 많지 않겠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모두 맡은 교장선생님이니까. 안 그래요?"
일행 중 한 사람이 자신 있게 대답하는 말이다.

"땡~! 아닙니다. 삼장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유치원까지 세 곳 모두의 책임자니까요. 우리 우도에선 모두 삼장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허허허~ 거참, 이상한 직함도 다 있네."
차에 탄 여행객들이 모두 웃음보를 터뜨린다.

우도는 제주도 성산포항에서 뱃길로 20여분 거리에 있었다. 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1,2배로 해안선 길이가 17킬로미터, 650여 세대에 상주인구 1700여 명으로 행정구역상 제주시 우도면에 속하는 제법 큰 섬이다. 우도 선착장에 도착하여 쇠머리 오름으로 가는 길가에는 돌담에 둘러싸인 밭들과 지붕이 낮은 집들이 올망졸망한 모습이다.

"이곳 우도는 제주본도와는 많이 다릅니다. 우선 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감귤을 재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 특산물은 감귤이 아니라, 흙속에서 자라 바람의 피해를 덜 받는 마늘과 땅콩입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우도, 오른편 높은 지대가 소머리 오름
 점점 가까워지는 우도, 오른편 높은 지대가 소머리 오름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우도 선착장 풍경
 우도 선착장 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정말 그랬다. 길가의 어느 집 뜰이나 밭에서도 감귤나무는 볼 수 없었다. 바람이 많고, 돌이 많고, 여자가 많다는 제주도, 그런데 마라도처럼 이곳 소섬도 제주도 본도와는 또 다른 열악한 환경이 바로 더욱 거센 바람이었다. 모든 밭들을 에워싸고 있는 돌담의 모습도 제주 본섬보다 더욱 두드러진 풍경이다.

운전기사가 들려주는 우도의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들

"저기 앞쪽에 돌담으로 둘러싸인 무덤 하나 보이지요? 저건 죽은 사람의 단독주택입니다. 우도 사람들은 죽어서도 저렇게 단독주택을 한 채씩 소유하고 있습니다. 어때요? 행복한 모습이지요? 그럼 이곳 우도의 공동묘지는 뭐라고 부를까요?"
이번에도 운전기사의 질문이었다.

"그야~ 아파트겠지요."
버스에 처음 탔을 때부터 운전기사의 재치 있는 안내멘트에 관심을 보이던 여행객이 선뜻 대답을 한다.

"맞습니다. 이번에는 똑바로 알아맞히셨네요. 이곳에선 공동묘지를 아파트라고 합니다."
모처럼 운전기사로부터 칭찬을 받은 여행객이 기분 좋은 허허허 너털웃음을 웃는다.

"저기 앞에 3층 건물 보이지요? 저 건물이 우리 우도에서 가장 높은 고층건물입니다, 무슨 건물일까요? 우체국입니다. 그럼 3층 건물 우체국에 몇 사람이 근무할까요? 세 명입니다."
운전기사가 이번에는 자문자답을 하여 승객들을 웃긴다.

돌담에 둘러싸인 우도의 밭풍경
 돌담에 둘러싸인 우도의 밭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우도 승마장 풍경, 뒤쪽에 바라보이는 곳이 소머리 오름과 등대
 우도 승마장 풍경, 뒤쪽에 바라보이는 곳이 소머리 오름과 등대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자~ 이번에는 1시 방향을 보십시오?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바위절벽이 보이지요? 저 바위가 조금 더 올라가 바라보면 사자의 얼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자바위라고 하지요."

재미있는 운전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착한 곳은 섬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우두봉(소머리 오름) 바로 아래 주차장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위쪽으로 오르는 길에 바라본 바닷가 바위절벽은 정말 사자의 얼굴 옆모습처럼 보였다.

소머리 오름 아래쪽은 말을 탈 수 있는 승마장이다. 조랑말이 아니라 커다란 경주말 몇 마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이곳 우도와 깊은 연관이 있는 동물이다. 우도엔 본래 사람이 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조선 숙종 때 말을 기르는 국유목장이 이 섬에 설치되면서 말을 돌보기 위해 사람들이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길은 오른편 해안을 따라 올라가도록 열려 있었다. 사자바위 바로 위쪽에 오르자 표지석 두 개가 나타난다. 하나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기 위해 세운 초소 자리였다는 표지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화 '화엄경' 촬영장소 표지석이었다.

이곳에서부터 해발 132미터인 우두봉 정상까지 이어진 완만한 오르막길은 바다에 면한 까마득한 절벽 윗길이어서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우두봉엔 러일전쟁 직후에 일제군부가 최초로 세웠다는 등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우두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풍경이라니, 그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도 사자바위 절벽
 우도 사자바위 절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옛 일본군 초소 표지석과 영화 화엄경 촬영지 표지석
 옛 일본군 초소 표지석과 영화 화엄경 촬영지 표지석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풍경에 취해 있다가 내리막길로 나섰다. 여행객 몇 사람이 말을 타고 초원을 시원하게 달리는 모습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주차장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검멀레 동굴과 해수욕장이 있는 동쪽지역으로 달렸다. 검멀레라는 말은 검은 모래라는 제주도 방언이다.

"저기 앞에 작은 이발소 보이죠? 이곳 우도에 하나밖에 없는 이발소지요. 저 이발소 이발사아저씨가 이곳에서만 35년 동안 같은 스타일로 이발을 해왔기 때문에 이곳 남자들의 머리스타일은 모두 똑같습니다."

운전기사는 우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며 여행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 섬에서 만난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은 하나같이 스포츠형이었다. 60대인 이발사가 이 섬에 사는 모든 남자들을 이발해 줄 때 똑같이 스포형으로만 해준다는 말이 사실인 듯 했다. 어쩌다 다른 헤어스타일인 사람은 제주 본섬에서 이발 하고 들어온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남자들 헤어스타일이 모두 같은 이유와 검고 새하얀 모래의 신비경

운전기사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버스는 검멀레 해수욕장과 동굴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도착했다. 바닷가 언덕 위에서는 포물선을 그으며 달리는 고속보트와 검은 모래로 뒤덮인 골 깊은 짧은 해안선, 그리고 역시 검게 보이는 동굴이 아스라하게 내려다보인다. 좁은 바다협곡 건너편 아스라한 절벽 위는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우두봉이었다.

검멀리해수욕장과 바다협곡 풍경
 검멀리해수욕장과 바다협곡 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홍조단괴 서빈백사 해수욕장 풍경
 홍조단괴 서빈백사 해수욕장 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서 잠깐 머물며 주변을 돌아본 우리일행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 해안선을 따라 달리며 검은 돌과 검은색 바위로 뒤덮인 해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 우도에서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색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이곳 해변과 검멀레 해수욕장의 검은 돌과 모래, 그리고 지금 가고 있는 서빈백사 서광리 해수욕장의 새하얀 모래입니다. 서빈백사 해수욕장의 새하얀 모래는 전 세계에서 이곳 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것이라고 합니다."

버스는 돌담길과 바닷가 길을 돌고 돌아 성산포에서 배를 타고 우도로 들어올 때 멀리서 바라보았던 바로 그 바닷가로 들어섰다.

"자~ 보십시오, 저 새하얀 모래밭을, 저 모래들은 일반 모래와는 아주 다릅니다. 손으로 한 번 만져보십시오, 얼마나 가벼운지. 저 모래를 처음에는 산호초 가루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동물성 산호초가 아니라 식물인 홍조류 가루로 밝혀졌습니다. 세계에서 오직 이곳에만 있는 아주 특별한 모래지요, 그래서 누구나 단 한 줌도 가지고 나갈 수 없는 모래이기도 합니다."

우도의 해안절벽풍경
 우도의 해안절벽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버스에서 내린 일행들과 여행객들이 우루루 바닷가로 몰려간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모래였다. 손에 한 줌 들고 바라보니 너무 가벼울 뿐만 아니라 정말 새하얀 빛깔이 여느 모래와는 전혀 달랐다.

"히야~ 놀랍다, 정말 특별한 모래네, 어쩜 이렇게 새하얄 수가 있지?"

모두들 놀라워하며 탄성을 지른다. 모래밭 근처 바위들과 돌들 위에는 새파란 바다 식물들이 아주 깨끗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마침 기울어진 석양빛에 바다가 은빛 물결로 반짝이고 있는 모습도 아름답다. 제주도에 딸린 가장 큰 섬인 우도에는 제주 섬과는 또 다른 특별한 풍경과 생태계가 모처럼 이곳을 찾은 뭍사람들에게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태그:#우도, #소머리 오름, #검멀레 해수욕장, #이승철, #삼장선생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