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갤러리현대강남 입구 황주리전 대형포스터. '식물학'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0
 갤러리현대강남 입구 황주리전 대형포스터. '식물학'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위트 넘치는 언어와 풍부한 상상력을 그림에 담아온 황주리 작가의 <꽃보다 사람> 전이 갤러리현대강남(대표 도형태)에서 7월 11일(일)까지 열린다. 2008년 이후 신작 중심으로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오브제와 레디메이드 방식이 많이 도입된 작품을 선보인다.

황주리는 삭막한 현실에서 묻히기 쉬운 이야기를 정겨운 풍경화로 풀어낸다. 토우, 민화, 가면극에서 보는 듯한 그런 다양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표정들이 너무 흥미롭다.

문학성이 풍부한 그의 회화세계
 
'식물학'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17cm 2008
 '식물학'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91×117cm 2008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황주리는 1957년 광화문(내수동)에서 신태양출판사를 경영하던 황준성 대표와 문학도였던 송연호 여사 사이에 태어났다. 그가 처음 본 건 원고지였고 잡지, 단행본, 전집류 등 책이었다. 10대부터 릴케, 포크너 등 독서 이력도 상당하다. 그는 이미 3권의 수필집을 냈고 뛰어난 산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오는 9월에는 웹진에 연재 중인 그림소설도 나온다.

어려서 국내외 사생대회 등에서 상을 독차지하여 '그림 영재'라는 말을 들었으나 다양한 독서 때문인지 결코 어떤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성을 찾았다. 그의 그림은 러시아 미술에 문학성이 풍부하듯 도시 사람들의 일상사가 담긴 서사성이 풍부하다. 마치 우리시대의 풍속화처럼 말이다.

기존회화를 거부한 신구상의 기수

'그리고 삶이 계속된다'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44×368cm 2003
 '그리고 삶이 계속된다'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44×368cm 2003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황주리는 80년대 데뷔한 셈인데 그때 미국에서는 슈나벨 등 신구상(New Painting)이 나올 때다. 그런 영향인지 그는 70년대 추상단색화에 벗어나 신구상화를 들고 나온다. 이건 70년대 미국에서 난해한 개념미술이나 미니멀리즘에 반발해 신구상이 나온 것과 맥락이 비슷하다. 독일의 신표현주의나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드도 유사한 사조다.

그는 70년대 대학시절 카프카, 카뮈, 사르트르 등 부조리 문학과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으로 인간에 관심이 많다. 80년대 초 암흑기에는 인간을 괴물이나 해골로 변장시켜 반항적이고 파격적인 화풍을 선보인다. 그러다가 1987년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다. 뉴욕대 대학원을 마치고는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작품을 하다 9·11테러 이후 완전히 서울에 정착한다.

그가 뉴욕에 가기 전 홍대대학원에서 바슐라르 기호학적 상상력에 대한 석사학위를 쓴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칸막이(grid) 형식의 신구상화에는 위에서 보듯이 수수께끼 같은 기호들이 수두룩하다.

수집품, 오브제, 사진 등을 작품에 적극 도입

'의자에 관한 명상' 22개 의자 아크릴물감 2004. 뒷면의 그림은 어려서 그린 흔적과 작가가 되어 만든 그림이 합쳐져 전혀 새로운 작품이 되었다. '자화상' 종이에 복합매체 120×80cm 2009(왼쪽아래)
 '의자에 관한 명상' 22개 의자 아크릴물감 2004. 뒷면의 그림은 어려서 그린 흔적과 작가가 되어 만든 그림이 합쳐져 전혀 새로운 작품이 되었다. '자화상' 종이에 복합매체 120×80cm 2009(왼쪽아래)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황주리는 어려서부터 수집가 기질이 농후했다. 어려서는 우표를 모으기도 했고 작가가 된 후에도 작품의 오브제로 원고지, 안경, 공구, 의자, 그림엽서, 조약돌까지 도입한다. 위 작품은 초등학교 시절의 교실을 연상시킨다. 뒤에 그림 중 황주리가 초등학교 시절 그림도 있다. 그의 어머니가 보관한 것이다.

80년대 오브제에 이어 90년대부터 사진도 작품에 많이 도입한다. 2009년 작품 위에 '자화상(왼쪽 아래)'은 시뮬레이션을 도입하여 사진을 그림으로 다시 사진으로 확대하고 마지막으로 원화는 버리는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사진처럼 에디션이 있다. 

고독도 낭만으로 바꾸는 삶의 애호가

'식물학'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22×153cm 2009
 '식물학'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22×153cm 2009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황폐한 도시에서 솔직히 낭만과 소통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통해 시와 사랑을 도시에 불어넣는다. 그의 그림기호 중 연인들의 뜨거운 입맞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고 또한 삭막한 도심에서도 사랑이 가능하다는 믿음과 그런 꿈에 대한 염원 때문이리라. 하긴 그건 돈, 명예, 권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그는 흔히 일상에서 접하는 고독마저도 축제로 만든다. 그는 고독하지만 외로울 틈이 없다. 사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고독은 외부의 압력에서 벗어난 시공간이자 영혼의 자유라면 외로움은 군중 속에 느끼는 소외감이다.

그에게 고독이 많기에 독서와 여행과 영화와 수집 등에 몰입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는 세상과 우주와 자연과 인간을 꿰뚫어보고 소통하는 자로 살아간다. 삶을 그림처럼 만들어가며 삶을 배우처럼 연출해 가는 것이 아닌가. 이번 전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열정적으로 창작에 몰입해왔는지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일상이 예술이 되는 결정적 순간들

'그대 안의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0
 '그대 안의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그가 그렇게 수없이 국내외여행을 하는 것은 풍경에 대한 욕심 때문인가 그걸 머리창고 속에 담아두었다가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다는 뜻인가. 그의 작품에는 낯선 돈황사막 풍경도 나오고 낯익은 도시의 뒷골목이나 우리네 섬 마을풍경도 나온다.

위 장면은 박수근 그림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한국인의 숨겨진 심정을 건드린다. 작가 말로는 청산도에 찍은 사진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것이다. 어린 시절의 모습이 재현되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선 일상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식물학'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0
 '식물학'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번엔 학교 수도꼭지가 그림에 나온다. 학창시절 더운 여름 날 물이 꽉꽉 쏟아지는 수돗가에서 머리 감고 물을 울컥울컥 마시던 때가 생각난다. 아주 흔히 이런 사진 한 장 위에 아름다운 해바라기 꽃으로 피어난다. 황주리는 이렇게 소소한 풍경에 예술의 옷을 입힌다.

아무리 누추한 삶의 언저리라도 언젠가는 해바라기가 무더기로 피어날 수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무뎌진 우리의 감수성을 찾아주면서 지난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소통을 속달우편처럼 빠르게 하는 유머감각

'그대 안의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0
 '그대 안의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여기는 어린이놀이터, 그런데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 모스크바다. 시소모양이 좀 색다르다. 하지만 크게 다르진 않다. 거기에 한국적 풍경을 이입시킨다. 거기에서 특히 눈길을 잡는 건 아래에 그려진 "요놈 고추가 얼마나 자랐나보자" 하는 그림이다. 볼수록 웃음이 터지게 한다. 요즘은 세상이 하도 삭막해 성추행범이 될지는 몰라도 천진난만한 분위기가 즐겁다. 유머는 이렇게 속달우편처럼 소통이 빠르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를 묻는 그림

'식물학' 종이에 복합매체 80×120cm 2009
 '식물학' 종이에 복합매체 80×120cm 2009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황주리는 그림을 통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가를 묻는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도 변하고 있다. 경제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졌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걸 사부아르 비브르'(savoir vivre/know how to live' 살 줄 아는 노하우)라고 부른다. 그동안 우리는 '삶의 멋'보다는 '돈'을 보고 거꾸로 살았다.

위 식물학 연작은 담벼락에 그린 그림이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꽃보다 사람'인데 사람의 잔인성과 이중성에도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뜻인지 모른다.

"나,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해"

'자화상' 종이에 복합매체 80×100cm 2010. 황주리는 '내'가 중요하기에 자화상은 많이 그린 것 같다
 '자화상' 종이에 복합매체 80×100cm 2010. 황주리는 '내'가 중요하기에 자화상은 많이 그린 것 같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전시장에서 박수근 화백의 장남 박성남씨를 우연히 만났다. 황 작가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예술이란 결국 '나, 지금, 여기'가 중요하단다. 부친은 결국 양구라는 고향 '여기'와 빨래하는 아낙의 '지금'과 가장 한국적 소재로 '나'를 그렸기에 감동을 준다는 결론이다. 황 작가도 최근 박수근 회화의 바래지 않는 현대성을 새삼 놀랐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박성남씨는 우리 존재가 날로 칩이 되어 간다고 꼬집는다. 우린 문명의 쓰나미(?)를 맞았고 '해체'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나마 순수한 인간성을 유지하게 하는 데는 예술이 최고라는 요진데 이런 예리한 문명비평은 황주리 작품에도 여러 곳 나온다.

하여간 일상을 소풍처럼 보낸 천상병 시인도 있지만 삼라만상을 생명체로 보는 작가의 남다른 의지와 시선은 이렇듯 삶과 일상을 예술과 축제로 만든다. 그는 이런 소신 속에서 스쳐가는 매순간 속에서 행복을 붙잡고 아름다움을 캐낸다. 그의 이런 몰입은 앞으로 계속되겠지만 어떻게 변모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강남 강남구 신사동 640-6 아트타워 0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무료



태그:#황주리, #박수근, #박성남, #신구상, #슈나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