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을 보기 위해 자동차 극장으로

영화 <방자전>의 포스터 김대우 감독의 작품

▲ 영화 <방자전>의 포스터 김대우 감독의 작품 ⓒ 바른손

적지 않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내가 영화 <방자전>을 처음 접한 것은 주연배우 조여정에 대한 기사에서였다. '청순 글래머 조여정이 드디어 벗었다'는 황색언론의 빤한 낚시질에 덜컥 걸려 기사를 클릭해버린 한심한 네티즌 중의 한 명.

그러나 막상 <방자전> 선전을 보고나니 속았다는 생각보다는 영화를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조여정의 노출도 노출이었지만 그 외 김주혁과 류승범, 그리고 오달수가 믿음직스러웠고, 무엇보다 감독이 영화 <음란서생>을 연출했던 바로 그 김대우 감독이 영화를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음란서생>이 어떤 영화이던가. 비록 결말이 흐리멍텅했던 까닭에 소위 '진 맛'은 부족했지만, 어쨌든 '음란'이란 키워드로 우리가 알고 있던 조선시대를 아주 간단하게 전복시켰던 바로 그 <음란서생>이 아니던가. 전작에 대한 기억이 이러하니 이번 영화 역시 기대를 할 수밖에.

과연 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을 어떻게 뒤틀어서 조선 시대의 속살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영화 속 조선 시대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조선 시대와 얼마나 판이하게 다를까? 그리고 감독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방자와 춘향의 사랑 충분히 개연성 있는 관계

▲ 방자와 춘향의 사랑 충분히 개연성 있는 관계 ⓒ 바른손


하지만 이와같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난 <방자전>을 개봉과 동시에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출산 이후 극장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아내가 마음에 걸렸던 탓이다. 혼자 영화 보러 갔다가 듣게 될 잔소리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찾아낸 것이 자동차 극장. 그것은 어떻게든 <방자전>을 보고싶어 하는 남편을 위해 마음씨 착한 아내(!)가 떠올린 고육지책이었다.

지난 일요일 오후, 7개월 된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대학로에서 일을 마친 아내를 픽업한 뒤 자유로 끝머리에 위치한 자동차 극장을 향했다. 날이 길어진 탓에 저녁 8시가 돼도 주위는 깜깜하지 않았다. 자동차 극장에는 생각 외로 많은 차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드디어 영화 시작.

방자와 춘향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밋밋했다. 조여정은 과감하다고 생각할 만큼 벗었고, 김주혁과 류승범은 그럭저럭 배역을 소화했으며, 오달수는 기대대로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뭔가 2% 부족해 보였다. 감독의 전작 <음란서생>이 그랬던 것처럼 그 소재는 재기 발랄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뒷심이 아쉬웠던 탓이다.

영화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춘향전>의 인물관계를 뒤틂으로써 그 첫 번째 재미를 선사한다. 춘향을 사랑하는 방자와, 출세를 위해서 춘향을 이용하는 이몽룡과, 그리고 방자를 사랑하지만 신분상승을 위해 어떻게든 이몽룡을 꼬시려는 춘향이.

<방자전>의 주인공 방자 조선의 보통 사람들

▲ <방자전>의 주인공 방자 조선의 보통 사람들 ⓒ 바른손


이와 같은 설정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영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방자라는 인물이다. 고전을 보면 춘향과 이몽룡 사이에서 사랑의 메신저로써 그 역할을 다 하던 방자가 영화 속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오히려 춘향과의 사랑을 연결시키려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감독의 상상대로 방자가 춘향을 연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원의 모든 남정네가 춘향을 흠모했다고 하는 바, 남자인 방자 역시 춘향에게 빠지지 않았겠는가. 사랑은 계급마저 초월한다고 하는데 춘향은 기생의 딸로서 양반도 아니요, 게다가 당시는 이미 신분질서가 반쯤은 허물어진 조선 중후기이지 않은가!

선망의 대상 춘향 모든 남정네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춘향

▲ 선망의 대상 춘향 모든 남정네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춘향 ⓒ 바른손


따라서 많은 관객들이 방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드라마 <추노>가 그랬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저 조선시대로 돌아간다면 이몽룡이 될 가능성 보다는 방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만큼 영화 속 방자가 갖는 현실성은 부각된다. 방자처럼 사랑하고, 방자처럼 생각하고, 방자처럼 행동했을 그때 그 사람들. 어쩌면 <춘향전>이 리메이크 된다면 방자가 주인공인 것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에 반해 영화 속 춘향의 매력은 비교적 떨어진다. 비록 언론에서는 조여정이 벗었다며 가장 요염한 춘향을 운운하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신한 방자, 이몽룡과 비교해 볼 때 춘향은 우리가 알던 춘향과 가장 근접한 인물이다.

<방자전>의 춘향 생각보다 평면적인 인물

▲ <방자전>의 춘향 생각보다 평면적인 인물 ⓒ 바른손


물론 고전 속 춘향과 달리 영화 속 춘향은 사랑보다 신분상승을 위해 이몽룡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고전 <춘향전>을 배우면서 이미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지 않은가. 이데올로기를 품을 수밖에 없는 고전은 여성의 정절을 거론하지만, 그 이면에는 신분상승을 갈망하던 당시 민중들의 욕망이 서려 있다던 교과서적인 바로 그 이야기.

영화를 보는 내내 춘향이란 캐릭터가 불편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영화 속 춘향이는 등장인물 중 가장 평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감독이 기존 인물의 '전복'이라는 명제에 간절히 매달린 나머지 영화의 마지막 춘향과 관련된 억지스러운 설정을 집어넣었지만(직접 보시라!), 이것이 영화 속 춘향의 밋밋함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이몽룡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영화 <방자전>이 고전의 인물들을 재창조하여 재미를 창출했다면 이몽룡의 변신은 화룡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은 이몽룡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조선시대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고전에서는 마냥 순정적이고 정의로운 모범생이었던 이몽룡이 영화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야비하고 비열한 인물로 묘사됐다. 류승범이라는 배우가 이몽룡을 연기한 것은 그만큼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몽룡 조선시대의 속살을 보여주는 캐릭터

▲ 이몽룡 조선시대의 속살을 보여주는 캐릭터 ⓒ 바른손


이몽룡을 통해서 바라본 조선 시대 중·후기는 그야말로 아비귀환시대다. 국가를 대표하는 관리의 위엄은 암행어사의 상징 마패가 시중에서 사고 팔리는 만큼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이며, 지방의 관리들은 자신들의 직위를 이용하여 백성들을 착취한다.

중앙에서는 이와 같은 지방의 탐관오리들의 부패를 막기 위해 신임관리와 암행어사까지 내려 보내지만 이들 역시 썩어 문드러져 있는 건 매한가지. 중앙에서 파견 돼 온 관리는 지방 실정도 모르는 채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지방의 중간관리는 그에 부화뇌동하여 백성들을 함께 착취한다. 게다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아름다운 미화 하나쯤 만들어 언론 플레이를 펼치려 드는 암행어사까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변학도와 이몽룡이 과거급제 동기로서 자신의 탐욕을 채울 생각만 한다는 영화 속 설정은 충분한 개연성을 지닌다. 당시도 학연과 지연은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을 것이며, 위정자들은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착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자전>의 변학도 구조적인 부패의 상징

▲ <방자전>의 변학도 구조적인 부패의 상징 ⓒ 바른손


요컨대 고전에서는 변학도 한 명만이 나쁜 놈이요, 죽일 놈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이는 우리가 그 행간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후기 탐관오리들의 폭정은 이미 구조화된 문제요, 사회 전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은 이와 같은 난세의 모습을 야비한 이몽룡을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몽룡을 통해서 본 그 당시 어지러운 사회상.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영화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방자전>이 행하고 있는 풍자와 비판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풍자와 해학이 필요한 시기가 또 있을까. 그러나 전체적으로 영화는 작금의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조금만 더 정치적이었더라면 재미있었을 거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현재 <방자전>은 순항 중이다. 고전을 비틀어 우리가 아는 편견을 전복시키는 쾌감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위 영화를 추천한다.

방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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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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