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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바로 오늘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다. 150만의 사상자, 360만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전쟁. 상대방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양민들까지도 수없이 희생된 전쟁. 3년간의 전쟁으로 한반도 전체가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갔다는 어느 미국 신문의 보도처럼 철저히 파괴되었던 전쟁.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전쟁.

<붉은 밤을 날아서> 12세 소년의 눈으로 본 과테말라 내전 이야기. 6.25 전쟁 당시 12세였던 아버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책.
▲ 표지 <붉은 밤을 날아서> 12세 소년의 눈으로 본 과테말라 내전 이야기. 6.25 전쟁 당시 12세였던 아버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책.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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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앙아메리카에서 군인들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있었다. 과테말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450개가 넘는 마을이 불에 타서 사라졌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죽었다. 남자들이 가장 먼저 살해되었다. 그다음엔 여자들이 그리고 마지막엔 아이들이 죽어갔다. 많은 아이들이 이 잔혹한 전쟁을 목격했고, 살아남은 아이들에 의해 과테말라의 전쟁이 세상에 알려졌다.

6·25 전쟁 때 나의 아버지도 <붉은 밤을 날아서>(벤 마이켈슨, 양철북)의 주인공 산티아고처럼 12살이었다. 피난 길에서 수도 없이 죽어 널브러진 시신을 보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6·25 전쟁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결과 12세였던 아버지는 가족 생계라는 커다란 짐을 떠안았다.

12살 소년 산티아고의 가족은 과테말라 내전에서 모두 죽는다. 남동생도 여동생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소년의 눈앞에서 강간과 고문을 당하고 총살당했다. 소년 이외에 살아남은 가족은 네 살짜리 여동생 안젤리나뿐이었다.

소년은 여동생을 안고 필사적으로 뛰고 또 뛰었다. 살아남기 위해. 총을 맞아 죽어가면서 남긴 라모스 삼촌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삼촌은 말했다.

"최대한 과테말라에서 멀리 떠나라고. 오늘 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전쟁 속에서 영문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

<붉은 밤을 날아서>는 소년의 시선으로 전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년은 칠흑의 어두운 밤을 붉게 물들이는 포연의 전장에서 탈출해 카유코(카약)을 타고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간다. 언제든지 맞닥트리면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군인, 해적, 폭풍우, 거센 파도를 헤치며 필사적으로 노를 젓는다.

군인이 오면 군인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고, 게릴라가 오면 게릴라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부모님과 이웃들은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눈앞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부모와 형제들을 보면서도 12세 소년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6·25 전쟁도 그랬다. 이념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이념의 잣대에 의해 어느 한 쪽 편을 강요당하며 죽임을 당한 사람이 많았다.  자신이 판 구덩이 앞에서 이유도 모른 채 총 맞아 죽어간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산티아고처럼 12세의 나이에 전쟁에 휩쓸린 내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장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어른들 틈새에 끼어 온갖 노동을 다해 동생들을 길렀다. 그렇게 기른 동생들이 다 결혼하고 아들 낳고 딸 낳고, 그 아들과 딸들이 다시 결혼해서 또 아들과 딸을 낳아 도란도란 살고 있다.

과테말라 내전에서 부모, 형제를 잃고 23일간 카약에 몸을 싣고 죽을 힘 다해 미국으로 갔던 산티야고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난한 사람들도 입을 옷과 자동차와 음식을 누릴 수 있다던 미국에 대한 환상은 깨졌을까. 아무도 가난한 이들의 땅을 빼앗지 않는 좋은 나라 미국이 아닌 수많은 국제 분쟁에 개입한 미국의 실체를 깨달았을까. 결혼은 했을까. 네 살짜리 동생 안젤리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6·25 전쟁 60주년이 되는 오늘.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전쟁을 경험한 산티야고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휴전 상태에서 주저앉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더욱 그렇다. 전쟁 아닌 평화의 땅에 살고 싶은 마음이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 벤 마에켈슨/문세원 옮김/양철북/2010.6.17/9,000원



붉은 밤을 날아서

벤 마이켈슨 지음, 문세원 옮김, 양철북(2010)


태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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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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