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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빈집수양

 

일 년 만에 대면한 야초스님의 변화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1년간 전국의 빈 집을 도량으로 삼아 만행萬行하면서 철저하게 식탐을 다스려서 체중을 수십 kg이나 줄인 모습이었습니다.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수행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야초스님은 비구승으로서 모자람이 없는 범행梵行을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비구比丘는 팔리어語 비쿠bhikkhu의 음역으로서 그 원래의 뜻은 '음식을 빌어먹는 걸사乞士'라고 합니다.

 

비구가 지켜야할 5가지 덕을, 걸식하여 사유재산을 모으지 않고, 번뇌와 망상을 타파하며, 탐욕과 분노와 무지의 집에서 나와 해탈의 자리에 머물며, 계율을 청정淸淨하게 지키고, 외도外道와 악마를 두렵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야초스님은 집을 나와 걸식하며, 번뇌를 깨뜨리기 위해 정진하고 있습니다. 수행보다 경전을 듣고 외는 데 힘쓰는 다문비구多聞比丘가 아닌, 경전經典보다 수행修行에 힘쓰는 과천비구寡淺比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지난 1년간 영월과 울진, 청송에서 지냈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간혹 전국의 사찰이나 암자에서 기식寄食하기도 하지만 주로는 빈 집을 도량으로 삼습니다. 길을 가다가 머물고 싶으면 주변의 빈 집을 찾습니다. 저는 스님의 '빈집수양'이 참 흥미로운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체가 반쪽으로 변한 체중의 변화가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1년 만에 만난 스님께 몰렴沒廉의 태도로 저의 호기심을 충족시켰습니다.

 

집주인을 하인 삼다

 

- 스님이 머물고자하는 곳 어디에나 빈 집이 있습니까?

"제 눈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보다 비어있는 집이 더 잘 보입니다. 도회지에서는 좁은 아파트라도 차지하기위해 애쓰지만, 도회지만 벗어나면 도처에 빈 집입니다."

 

- 빈 집이지만 주인이 있지 않겠어요?

"하루 이틀 지내다 보면 주인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한 달이 지나도 주인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누군가가 자기 집을 점유하면 나중에 소유권에 시비가 일까 걱정을 해서 나가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는 제가 원하는 언제든지 집을 비워주겠다는 종이 한장(각서)을 써주면 계속 머물도록 허락하는 경우가 많고 간혹은 당장 떠나라고 하면 당장 떠나면 탈이 날 일이 없습니다."

 

-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집이면 손보아야할 곳도 많지 않나요?

"비가 새면 다른 빈 집으로 옮겨가면 그만입니다. 멀지 않는 도회지에 주인이 있는 경우는 그 집을 관리하기위해 주인이 정기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휴일에 와서는 마당 쓸고, 풀 뽑고 집을 치우고 돌아가곤 합니다. 저는 그저 지내기만 하면 됩니다. 집 없는 제가 주인이고 주인이 도리어 종이 된듯해서 때론 미안하기도 합니다만 가진 것 없는 자의 자적自適이지요. 이렇듯 집주인을 하인 삼을 수 있는, 소유하지 않는 것의 안온과 쾌락을 모두가 알까 걱정입니다."

 

- 구태여 빈 집을 도량으로 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재가불자인 유마힐거사와 문수보살의 문답을 기록한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유마경)에 유마힐이 부처님 제자들을 문병 오게 하여 담론하기위해 꾀병을 앓습니다. 부처님이 여러 제자들께 문병을 권하지만 세속의 거사居士인 그의 법력法力이 두려워 모두 꺼려합니다. 광엄동자光嚴童子도 그 전에 유마힐을 만났던 에피소드를 고백하면서 거절합니다.

 

광엄동자는 수행에 정진할 고요한 장소를 찾기 위해 번잡한 비야리대성浚耶離大城의 문을 나설 때 유마거사와 마주쳤습니다. 그 때 광엄동자가 인사차 유마거사께 '어디에서 오십니까?'라고 물었고 유마거사는 '도량에서 온다'라고 답합니다. 그 말뜻을 납득하지 못한 동자가 거듭 어디에 있는 도량인지를 묻자 유마힐이 그 도량에 대해 설합니다.

 

'정직한 마음直心이 도량道場이다.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정하고 수행하는 것도 도량이다. 능히 사물을 판별하기 때문이다.'라고……. 중국의 혜능대사의 어록집 '육조단경'에서도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데서 늘 하나의 곧은 마음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곧은 마음이 바로 도량이다(直心是道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도량은 어떤 물리적 공간을 말함이 아닙니다. 직심도량 즉 그 자리가 바로 도량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저는 도량을 사찰로 한정하지 않을 뿐이지 빈 집만을 고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비어있는 곳을 재활용하는 것이지요. 요즘은 빈 집을 나가라 하더라도 다른 빈 집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버려진 텐트를 하나 주웠거든요. 어디든 그것을 펼치면 도량입니다. 언제 도사님(스님이 저를 호칭하는 애칭입니다)과 모래알 반짝이는 곳에서 캠핑을 한 번 해야 될 텐데……."

 

정신을 담은 옷에 집착치 말라

 

- 저는 텐트가 필요치 않습니다. 야초스님의 남루襤褸 자락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도사님이 저의 누더기를 탐하다니……. 저는 항상 도사님의 옷이 부러웠습니다."

 

- 제 옷은 항상 재활용입니다. 아들이나 딸, 혹은 처가 입든 옷이나 이웃이 주는 옷을 입고 더 낡아지면 걸레로 사용하기 때문에 스님께 드릴만 하지 않습니다.

"도사님의 육신의 옷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국에 와 계시던 달마대사께서 급히 서역을 다녀오실 일이 생겼습니다. 먼 길에 육신이 거추장스러우니 자신의 육신을 벗어두고 갔습니다. 되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돌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고, 달마대사의 육신을 본 한 도력이 높은 이가 달마대사의 육신을 입고가 버렸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달마대사께서는 갓 죽은, 싱싱한 남의 옷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대사가 얼굴이 험상궂은 모습이 된 것이지 본래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용모가 수려했던 분입니다. 저는 도사님의 머리카락이 없고, 수염이 덥수룩한 그 모습이 부럽습니다. 저의 머리는 늘 밀어주어야 되니 차라리 머리카락이 없는 것이 편하고 수염이 있기를 원했는데 아시다시피 제 수염은 몇 가닥 되지 않아 길을 만하지 못합니다. 도사님의 옷을 입으면 저의 익스테리어exterior도 좀 폼이 나지 않겠습니까?"

 

 

- 제 옷을 탐내는 분도 계시니, 오늘 부터 제 모습에도 자부심을 갖겠습니다. 혹 스님보다 제가 먼저 옷을 벗을 날이 온다면 급히 연락드리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것도 욕심일 뿐입니다. 도사님이 열반하시면 도사님 가까이 계시는 분이 그 옷을 취하겠지, 멀리 있는 저에게 까지 순서가 오겠습니까."

 

- 언젠가 벗어버릴 그 옷에 집착할 일이 아니군요. 이즘은 특히 정신이나 심지心地보다 그것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육신을 가꾸는데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1년 만에 스님의 옷맵시가 완전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달마대사처럼 마치 다른 분의 옷으로 갈아입은 듯싶습니다. 체중이 얼마나 준 것입니까?

"저는 체중을 달아본 적이 없으므로 몇 Kg이나 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허리가 36~8인치쯤은 되었을 텐데 지금은 29인치쯤 되지 싶습니다."

 

통밀로 허리를 9인치 줄이다

 

- 영양 과잉인 시절을 사는 이즘, 아름다운 체형을 만들기 위한 다이어트는 세속의 큰 화젯거리입니다. 스님의 그 놀라운 변화에 대한 비방을 듣고 싶습니다.

"다이어트도 역시 마음이 문제입니다. 식탐을 다스리는 마음 훈련을 먼저하지 않으면 물리적인 노력이 곧 허사가 되고 맙니다. 인간의 여러 욕구 중에 탐식은 으뜸 되는 욕구입니다. 남자의 성욕이 지나친다한들 며칠 굶겨보세요. 성욕이 발동할 수 있는지……. 여자의 재물욕이 아무리 지나쳐도 하루 이틀 굶으면 먹는 것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탐식을 다스리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 범부가 바로 식탐을 다스릴 수 없다곤 하드라도 스님의 식습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작년에 청송에서 기거하다가 모든 농작물에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하는 한 처사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우리 밀을 재배하는데 제게 그것을 주었습니다. 사실 현미보다 좋은 게 통밀입니다. 하지만 단지 껍질만 벗긴 통밀을 주식으로 먹기에는 많이 거칩니다. 저는 그 통밀에 현미와 율무, 보리 등을 섞어서 먹었습니다. 오래지않아 숙변이 제거되고 내장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선식의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찬은 주로 어떤 것을 드십니까?

"발효식품입니다. 예컨대 된장과 김치, 장아찌 등입니다. 저는 오가다가 더덕이나 도라지는 물론 산나물을 뜯거나 누군가로부터 야채를 얻으면 무조건 간장에 담급니다. 그리고 보름쯤 지나 꺼내먹으면 다른 찬이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보통은 간장을 끓여서 사용하는데 저는 간장을 끓이는 대신 매실액기스를 조금 넣습니다. 이것은 효소이므로 간장을 끓이지 않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 냉장을 할 필요가 없으니 전기나 냉장고가 있을 리 없는 스님에게는 더없이 좋은 방법 같습니다. 동물성 찬을 드시는 것은 전혀 없습니까?

"동물성 식품을 취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만 이웃의 처사께서 유정란을 주시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것을 몽땅 삶아 역시 간장에 담가둡니다. 계란장조림처럼 아주 맛난 반찬이 됩니다. 계란 노른자도 젤리처럼 변하여 전혀 퍽퍽하지가 않아 목이 멜 일도 없습니다."

 

- 속가에 계실 때도 특별식을 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속가를 떠나기 전에도 한 8년간 산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초자연식을 했습니다. 완전히 야생동물과 똑같은 방식으로 먹을거리를 해결했습니다. 개구리, 뱀, 메뚜기, 지렁이, 민물고기, 잠자리 등 주변의 모든 것을 잡아 생으로 먹었습니다. 이 생식에 익숙해지면 그 맛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생피는 우유처럼 뒷맛이 고소합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피맛을 즐기게 되는데 육회를 먹는 것도 그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초자연식이란 이름은 짐승처럼 먹는 저의 식사법을 딱히 호칭할 말이 없어서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

 

- 이런 생식은 기생충과 같은 여러 균에 노출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동물들이 기생충 약을 먹지는 않습니다. 참외 씨가 기생충을 박멸하는 효과가 있다고도 합니다. 동물들은 상충되는 효과로 충이 생기면 자연에서 자연 소멸됩니다. 8년 동안 저는 동물식을 하면서도 기생충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없습니다."

 

가공되지 않은 것이 진짜다

 

- 화식을 해온 도시민이 초자연식을 따라 해서는 안될 일 같습니다. 육신의 옷을 좀 더 오랫동안 입고 계시고자하는 분들에게는 특히…….

"모든 것은 가공되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이번에 모티프원 앞의 오현광물박물관에 들렀을 때 진열된 광물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굳혔습니다. 저는 원석을 좋아합니다. 가공되는 순간 그 상품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깁니다. 그 자연보석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에 의해 가공되는 순간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잃게 되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가공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 사회는 가공된 인물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교육도 그 가공과정이며 그것을 통해 더욱 사회적 직위와 신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좀 더 문명화된 인간으로 여기는 풍토인데 저는 사람도 가공인물보다 원석을 좋아합니다."

 

- 저는 얼마나 가공된 사람 같습니까?

"도사님은 가공하다가 포기한 것 같아요. 아직 자연석의 요소가 남아있으니까요. 다행스럽게도 완전히 가공된 사람보다 제가 도사님을 찾는 이유입니다.

 

- 간혹 불교종단에서도 직위와 직책을 다투는 모습을 보이드라구요. 저는 구족계 수계승보다도 이처럼 완전한 자유를 구가하시는 운수승雲水僧, 야초스님을 뵙고 나면 법력 높은 고승을 뵌 것처럼 카타르시스를 경험합니다. 스님의 만행을 보면 경허스님이 생각납니다. 한국근대 선종의 중흥조이신 경허스님께서는 나중에 환속을 하셔서 무애행無碍行을 하셨드라구요? '길 위의 큰 스님'이라는 정의도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만…….

"경허선사께서는 돌연 주장자柱杖子를 꺾어 던지고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불태운 다음 산문 밖으로 나오셨지요. 술과 고기를 가리지 않고 먹고, 여인을 희롱하다가 뭇매를 맞는 등 기행을 보이셨습니다. 환속 후에는 박난주로 개명하고 유관을 쓰고 서당의 훈장을 하다가 입적하셨지요. 이처럼 깨달은 분에게는 승속僧俗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원융무애圓融無礙의 경지에서 승려와 속인의 구분이 무엇이며, 남과 나의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아직 웃자고 하는 얘기 외에는 어떤 말도 두렵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 생각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어렵고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은 웃자고 하는 말에도 싸우자고 대드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청소만을 하다가 깨달음을 이룬 주리반특

 

- 저는 지금 오리구이와 기름진 삼겹살로 포만감을 누리고 있습니다만 이 맛난 것 앞에서도 된장국 하나와 밥 반공기만으로 저녁공양을 대신하신 분에게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게 했으니 저의 결례가 적지 않습니다. 야초스님을 뵈면 불경스럽게도 운수납자雲水衲子가 자꾸 낭만스럽게 여겨져요. 제가 '여행'이라는 운수행각의 집착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것도 행운유수行雲流水의 스님들이 제 병을 깊게 했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흰 구름 흘러가는 것을 보아도, 흐르는 물을 보아도 스님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저는 다음번 스님을 뵐 때까지 열심히 모티프원을 청소하고 있겠습니다.

"직심도량입니다. 도사님 말씀처럼 모티프원을 청소하시면서 도를 닦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16성 제자 중에 주다반탁가注茶半托迦가 있습니다. 주리반특周利槃特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형인 반탁가半託迦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우는 형과는 달리 품성이 우둔하여 무엇을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는 통해 놀림을 당하곤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일러준 '불진제구(拂塵除垢 먼지를 쓸고 때를 닦으라)'을 끝없이 암송하며 비구들의 신발을 닦고 먼지를 털어주는 수행에 매진하여 마침내 모든 업業이 소멸하고 활연개오(豁然開悟 중간에 거치적거리는 것이 전혀 없이 확 뚫려서 마음이 활짝 열리듯이 의심스러운 것이 전혀 없는 깨달음을 얻는 것)하여 아라한의 과위 [果位]를 증득證得하신 분입니다. "

 

- 스님의 말씀처럼 모티프원을 열심히 쓸고 닦으면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에도 힘쓰겠습니다.

"부디, 신통력을 구족具足하여 아라한이 되십시오."

 

야초스님에 대해 더 보기

 

금곡스님과의 선연善緣 | http://blog.naver.com/motif_1/30039219080

스님의 재활용 명함 | http://blog.naver.com/motif_1/30037616194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야초스님#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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